전출처 : 드팀전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딘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 독하게 쓴 시 아닙니까?  늦은 가을이 되면 이 시가 생각납니다.그리고 끝연 3행...부시.....죽었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그에게서 느끼는 것은 존경을 넘어선 두려움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고자 결심한 사람이라면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그의 책을 통해 난 하게 되었다. 평범한 듯 하지만 그 평범의 선을 이미 오래전에 넘어버린 이. 진정 책을 사랑하는 이. 다치바나 씨의 책 사랑에 대해 알 수 없는 경외감을 표시할 따름이다.
그것은, 책을 많이 읽어왔노라고 자부해왔던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가져다 줄 정도로 장황해 보였다. 책꽂이에 꽂아 놓으면 안 읽게 되는게 사람의 심보이기에 새로 구입한 책들은 책상 위에 일부러 쌓아놓는다는 그의 이야기. 책장 하나가득 채우고 있는 수 많은 책들 중에서 읽지 않은 책이 얼마나 될지, 그제서야 하나하나 헤아려보는 나의 손길은 바뻐졌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물론 그것 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가 평범의 수위를 넘어섰노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그의 다분야에 걸친 독서폭과 하나의 주제에 대해 파고듬에 있어서 끝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집착-그렇다, 그것은 집착 이외의 다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웠다-때문이었다. 서점을 4-5개 돌아다니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입문서들을 모두 섭렵하고, 그 목록을 작성해 그 중에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닌 그. 그것이 내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 해 보였기 때문이다.

독서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족하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죽는 그 순간까지도 부족함으로 다가가리라는 나의 생각은 그의 철저하고도 끊임없는 독서에 대한 열정 앞에서 무너졌다. 가벼운 소설류-그렇다고 소설이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와 한없이 입씨름 하며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나에게 책을 많이 읽었노라는 만족감을 가져다 줄 때, 한편에서는 픽션은 픽션 이상의 무엇이 없기에 흥미롭지 못하다며 현실을 즐기고 있었을 그. 그에게는 ‘전문가(specialist)’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듯 하다. 인터뷰를 위해 자신의 인터뷰 대상이 통달해있는 분야의 서적을 읽으며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가 되어버린 그. 그에게서 나는 언젠가 나의 전공(사회복지)계에서 논란이 되었던 specialist와 generalist의 논쟁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나의 방엔 한없이 많은 책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책장은 이미 책으로 가득차 더 이상의 공간을 허락하고 있지 않기에, 그래서 나는 책 구입하는 것을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불러일으킨 자만감. 좋아하는 분야의 서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난 그에게 고개숙여야 할 듯 싶다. 못 하는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어려워서 못 읽는다기 보다는 읽기 싫어서 안 읽는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은 특정 분야 서적을 향한 나의 편애. 이제는 버려야만 할 때가 온 것 같다. 한없이 부족하고, 그 부족은 끝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쓴 마르크스의 사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정진상 외 옮김 / 북막스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날 우리 사회는 반으로 갈린 국토로 인하여 체제, 이념에 대해서는 금기시 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또한,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지배로 인하여 하나의 위대한 사상가로서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는 '마르크스'에 대한 언급 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던게 현실이 아니었나 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에 대한, 그리고 그의 사상에 대한 왜곡을 풀고자 하는 수많은 책들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는 것 같고, 이 책 역시 그와 같은 책들 중 하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마르크스 한 개인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생애를 돌아봄으로써 그의 사상이 어떠한 배경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유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 한 개인만을 딱- 떼어놓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마르크스 이전의 사상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하여, 물론 그 이전의 철학, 사상에 대해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이 지니는 이전 사상들과의 독특한 차이점, 뛰어난 점등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기존 마르크스에 대해 다룬 책들의 대부분은 일방적으로 마르크스 주의에 대한 찬양, 혹은 비판에 급급하여 그 사상의 본질에 대해서는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강요하기 위해서 쓰여진 글은 아님을 알리고 싶다. 100% 객관적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음을 알지만, 마르크스의 엥겔스의 주요 저서들을 인용한 본문은 마르크스를 지금껏 잘 알지 못하던 이들에게 그에 대한, 그의 사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에서 부터 눈뜰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객관적 평가와 함께 마르크스가 범하고 있는 오류에 대한 언급들도 보여진다. 그것은 사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할 수 있는 독자들을 향한 배려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내용이 아닌가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후 10년 이후부터 계속적으로 이야기 되어지던 '마르크스주의 위기'는, 지난 날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과 함께 우리에게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와 같은 역사가 자본주의의 사회주의에 대한 승리로서 받아들여졌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의 소비에트 연방이 지니고 있는 체제가 결코 마르크스가 예언한 사회주의 체제였던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왔던게 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사회는 개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며 사람들 모두를 똑같이 취급한다는 식의 비판을 일삼았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와 같은 우리의 비판이 마르크스주의적 체제와 소련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체제를 혼동함으로써 비롯된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실패했노라고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한 번의 실패가 사회주의 전체의, 마르크스 사상 전체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 혁명을 통해 이루어진 사회는 결코 마르크스가 바라던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는 이야기 한다. 기존의 사회주의체제가 노동자계급의 착취에 기초하고 있기에 틀렸노라고,... 진정한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에 기초해야 하노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韓國의 古宮
신영훈 지음, 김대벽 사진 / 한옥문화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한 이후로 종종 사진을 찍으러 다니곤 한다.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사진 대부분이 풍경 사진이다. 서울에 위치하고 있는 몇몇 대학들을 돌아다녀 봤고 상암 월드컵 경기장, 서대문 형무소 등 카메라로 인해 이전 같았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많은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고궁들만큼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곳도 드문 듯하다. 겹겹이 에워싼 고층 건물들, 차들이 내뿜는 숨쉬기 곤란할 정도의 매연, 고궁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단지 문 하나만 통과해 들어갔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그와 같은 한적함을 사랑했다. 비싸지 않은 입장료와 적당히 많은 사람들, 어느 각도에서 셔터를 눌러도 하나 하나가 저절로 작품이 되어버리는... 그것은 우리나라의 궁들이 가진 멋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는 건축이나 사진, 역사 관련 학문 등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지라 사진을 찍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건물이 똑같아 보이곤 한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모든 궁을 방문했었고, 모든 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그때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시달렸었다. 이 책을 미리 읽었더라도 그랬을까? 사진을 찍기 위해선 단지 셔터를 누르는 것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난 알지 못했다. 그저 시간이 생기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무작정 궁으로 향했었던 나는 어쩌면 그저 사진을 찍는데 중독이 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보다는 큼직큼직한 사진들이 시원스레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지난 날 몇 번 방문했던 곳이라고 반가움을 절로 느끼게 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초라한 것도 아닌, 모든 궁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또 하나의 자연이었다. 월대와 층계석, 담장의 무늬 등 얼핏 보면 똑같은 듯 해 보이던 것들도 이렇게 사진으로 확인하니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음에 감탄하게 된다. 밖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기에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근정전 천장 중앙의 무늬들의 화려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러한 화려함은, 단아해 보이는 경복궁 강녕전 내부의 모습하며, 고급스러운 맛을 풍기는 창덕궁 사랑채 내부의 모습 등과 어울리지 않을 듯 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 컷에 좀처럼 잡을 수 없었던 종묘의 정전과 영년전의 웅대함이 나를 깨웠다. 지난 늦가을 찬란한 단풍과 함께 나를 맞이해주었던 후원의 화려함도 여전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지난 날 내가 찍었던 사진들과 그 곳에서의 추억들을 이 책과 함께 다시 꺼내보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들이기에 숱한 화재로 소실되고 그 때마다 재건축 되어야만 했던 궁들은 우리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대변해준다. 왜 그리도 외침이 많았으며, 그 때마다 궁은 불에 탔던 것인지... 이미 오래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조선'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니 조지훈 님의 '봉황수'라는 시가 절로 떠오른다. 숱하게 행해진 복원공사들이 궁들의 거대함을 되찾는데 일조했을진 모르지만 사람 사는 냄새까지 불어넣진 못한,... 어쩌면 이는 시대가 낳은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리라. 하지만 그 어떤 수난도 지난 식민 역사만 하겠는가. 왕이 거처하던 곳이 동물원이 되었던 지난 역사의 아픔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궁의 곳곳이 일인들에 의하여 변형된 체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나마 변형된 상태로라도 남아있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 책의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몇몇 건물들은 그렇게 시간과 함께 너무도 멀리, 우리로부터 멀어져간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체,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어 구입했던 책이었다. 가끔씩은 그런 충동구매로 인해 후회도 하곤 했지만, 이 책만큼은 잘 구입했노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일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동물들의 사진과 그에 어울리는 짧은 한 구절 한 구절의 말들이 조화를 이루어 내 마음속을 파고 든다. 내 자신에 대해 밉다 못해 혐오감을 느끼고, 그런 나로부터 벗어나고파 수없이 울어보지만 태양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마냥 내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그런 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나 자신 때문에 얼마나 많이 서글펐던가.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미워하고 한번 투정부리고 돌아서면 그만이겠지만, 내 자신을 향한 부정과 미움은 나를 버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난 늘 슬퍼했었던 것 같다. 어떤 선배는 나에게 넌 너무 복잡하다고, 세상을 조금만 단순하게 바라보면 모든게 행복하게 보일수도 있노라는 충고를 해주었었다. 어쩌면 나는 내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면서도 불행 상태에 안주하려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내 안에 깃들여져 있는 우울함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그 순간을, 늘 곁에 있던 엄마로부터 떨어지는 아기마냥 두려워했었던건 아닐지...

한 장 한 장, 처음엔 그저 아무 생각없이 사진 하나하나에 매료되어 책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끝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읽으면서 수없이 지었던 웃음은 결코 순간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나도 웃을 수 있노라는, 우울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노라는, 그것은 일종의 확신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책은 내 책상 위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하루 생활이 무료하거나, 이유없이 서글퍼지는 그 순간이면 난 변함없이 이 책을 펼쳐들곤 조용히 읽어나갔다. 그리고 책을 손에서 놓는 그 순간은 늘 웃음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책은 나에게 없다. 나에게 웃음을 가르쳐준, 삶이 즐거울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책은,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언니에게 가 있다. 당신에게 있어서 이 책은 그저 가벼운 화보집일수도 있겠지만, 전 제 모든 웃음을 당신에게 주었습니다. 삶이 지치고 힘겨울수록 씨익 웃고 말아버리는 당신에게 저는 제가 가진 모든 웃음을 드립니다. 당신이 이 책과 더불어 행복하길, 늘 그렇듯 앞으로도 영원히 웃을 수 있길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