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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古宮
신영훈 지음, 김대벽 사진 / 한옥문화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한 이후로 종종 사진을 찍으러 다니곤 한다.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사진 대부분이 풍경 사진이다. 서울에 위치하고 있는 몇몇 대학들을 돌아다녀 봤고 상암 월드컵 경기장, 서대문 형무소 등 카메라로 인해 이전 같았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많은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고궁들만큼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곳도 드문 듯하다. 겹겹이 에워싼 고층 건물들, 차들이 내뿜는 숨쉬기 곤란할 정도의 매연, 고궁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단지 문 하나만 통과해 들어갔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그와 같은 한적함을 사랑했다. 비싸지 않은 입장료와 적당히 많은 사람들, 어느 각도에서 셔터를 눌러도 하나 하나가 저절로 작품이 되어버리는... 그것은 우리나라의 궁들이 가진 멋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는 건축이나 사진, 역사 관련 학문 등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지라 사진을 찍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건물이 똑같아 보이곤 한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모든 궁을 방문했었고, 모든 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그때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시달렸었다. 이 책을 미리 읽었더라도 그랬을까? 사진을 찍기 위해선 단지 셔터를 누르는 것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난 알지 못했다. 그저 시간이 생기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무작정 궁으로 향했었던 나는 어쩌면 그저 사진을 찍는데 중독이 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보다는 큼직큼직한 사진들이 시원스레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지난 날 몇 번 방문했던 곳이라고 반가움을 절로 느끼게 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초라한 것도 아닌, 모든 궁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또 하나의 자연이었다. 월대와 층계석, 담장의 무늬 등 얼핏 보면 똑같은 듯 해 보이던 것들도 이렇게 사진으로 확인하니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음에 감탄하게 된다. 밖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기에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근정전 천장 중앙의 무늬들의 화려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러한 화려함은, 단아해 보이는 경복궁 강녕전 내부의 모습하며, 고급스러운 맛을 풍기는 창덕궁 사랑채 내부의 모습 등과 어울리지 않을 듯 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 컷에 좀처럼 잡을 수 없었던 종묘의 정전과 영년전의 웅대함이 나를 깨웠다. 지난 늦가을 찬란한 단풍과 함께 나를 맞이해주었던 후원의 화려함도 여전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지난 날 내가 찍었던 사진들과 그 곳에서의 추억들을 이 책과 함께 다시 꺼내보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들이기에 숱한 화재로 소실되고 그 때마다 재건축 되어야만 했던 궁들은 우리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대변해준다. 왜 그리도 외침이 많았으며, 그 때마다 궁은 불에 탔던 것인지... 이미 오래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조선'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니 조지훈 님의 '봉황수'라는 시가 절로 떠오른다. 숱하게 행해진 복원공사들이 궁들의 거대함을 되찾는데 일조했을진 모르지만 사람 사는 냄새까지 불어넣진 못한,... 어쩌면 이는 시대가 낳은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리라. 하지만 그 어떤 수난도 지난 식민 역사만 하겠는가. 왕이 거처하던 곳이 동물원이 되었던 지난 역사의 아픔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궁의 곳곳이 일인들에 의하여 변형된 체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나마 변형된 상태로라도 남아있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 책의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몇몇 건물들은 그렇게 시간과 함께 너무도 멀리, 우리로부터 멀어져간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