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품에 안고]
우리들의 할머니 이야기라 한다.
게다가 또렷한 어조로 전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바칩니다'라고
그 많은 수식어를 뒤로 한 채 그렇게 저자는 우리네를 그 품으로
안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표제에 드러난 강아지는 일곱 고개를 넘을때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또는 넋을 잃은 것이 아닌 품에서 놓질 못하는 애석함이 굽이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게다.
불러도 불러도 지치지 아니 할 그 이름 앞에서 우리네는 한없이 아이가 된다.
그래야해서가 아닌 어둠을 좋아하는 모태 본능으로 웅숭 그려지면서 그 품이
우리네의 최초의 집이기에.
요즘 아이들에게 있어 할아버지,할머니의 존재감은 그저 엄마,아빠의 부모님
혹은 집안의 경조사나 명절에나 몇 시간 걸리면서 이동하며 갈 수 있는 곳에
가면 계시는 분들이라는 정도 그것이 아니라면 확장가족의 구성형태를 띈
경우라면 이전의 의식과 달리 노인공경이 바탕이 된 효(孝)를 몸소 배우고
익힌 바 그 소중함을 알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것은 때를 기다려서 행하는 것이 아닌
지금 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미덥지 못한
그 다음을 기약하는 어리석은 오류를 범하곤 한다.
실상 부모가 베풀어 주신 그 깊고도 넓은 은혜를 모른다면 우리의 평생
돌아갈 품은 혹은 우리의 평생 친구가 되어줄 그들은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다.
옛 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했다.
이 많은 자식들 위해 내 몸 하나 어찌되든간에 오로지 사랑의 위대한 힘과
희생이라는 깊은 힘이 하나가 되어 우리를 위해 그림자 되시길 한치도
두려워 하지 않는 꺼려 하지 않던 그들의 이름이 곧 부모이자 할머니인 것이다.
내 부모의 최초의 품이자 집은
바로 '할머니'당신인 것이다.
그 품에서 늘 안전하게 따사로운 햇살이라도 내리쬐면 그 햇살 충만히 받게
해 주시고 비가 오면 그 비바람 피해 덮어주시고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 품에서만큼은 편하게 쉼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없이 품어 주셨기에
우리는 그 품을 잊지 못하면서 늘 그리워한다.
'유모차를 탄 개'에서 할머니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불구인 강아지를 버림받은
강아지를 할머니의 품으로 파고드는 그 강아지를 모른 척 할 수 없었고 할머니
뒤를 졸졸 따르는 그 강아지를 친구처럼 자식처럼 품으며 서로 의지하며 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렇듯 일곱 고개를 다 넘고 보니 그 가는 길은 달랐으나 마지막 이르는 길은
하나같이 하나의 마음으로 어우러지며 소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들이 걷는 이 길은 곧 우리네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처럼 사회에서도 독거노인들을 위한 복지제도나 사회적 제도가 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시간이었음을.
그 이름을 부를 수 있을때
마음껏 부르고 싶을때 부를 수 있을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우리는
진정 알면서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 어둡게 드리워진 그림자 밟기를 하면서 그리움만
토하는 어리석음은 안할 것이라 다짐을 하며 내 깊은 속내를
뒤흔들어본다.
결코 그리운 이름이 아닌 맘껏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는 지금
잘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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