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와는 결별을 선언 당했다. 맛있게 밥을 먹는 중이었다. 결혼을 코 앞에 두고 있었고,
신혼집도 계약했고 커튼이니 가구니 발품팔아 골라놓은 상태였다. 그랬었는데 눈 앞의
유즈루는 헤어지자고 말한다. 게다가 괜찮냐고 묻는다. 저런 녀석 정말 싫다. 괜찮지 않은 게
당연하지 않은가. 괜찮지 않을 짓을 해놓고 괜찮냐고 묻는 것은 뻔뻔스럽다.
식사를 하기 전에, 그러니까 이별을 고하기 이전에 유즈루는 물었었다.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면 식사 전이 좋겠는가, 식사 후가 좋겠는가. 아스와는 가볍게 식사 후가 좋다고
말했고, 유즈루는 식사 전이 오히려 낫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그랬었는데 난데없이
식사 중간에 폭탄을 툭 떨어뜨린거다. 그러면서 본인은 태연하다. 태연할 수 밖에...
그 녀석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식사 중에 이런 파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것이라는 것을.
어쨌든 아스와는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결혼을 약속한 사람에게 차인다. 생각해보니 이 책
조금 잔인하다. 이제까지 읽었던 그 어떤 연애소설에도 첫 장면에서 이별을 통보받고 의식이
저 너머로 달아난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었는데, 이 책은 그렇다. 그 여자가 아스와다.
그리고나서 이제부터 아스와의 치유기가 펼쳐진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매몰되고 있던
아스와를 ‘너 거기서 뭐하고 있니? 거기 별로지 않아?’라는 가벼운 느낌으로 들여다 봐 준
사람은 롯카 이모였다. 롯카 이모는 상당히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로, 굉장히 매력적이다.
대충 살지만 어떻게든 잘 살아가는 캐릭터라고 할까.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알고있는 멋진 인물이다. 그 이모가 아스와를 끄집어
내준다. 아니 아스와 스스로 그 늪에서 기어나올 의지와 용기의 씨앗을 건네준다. 롯카이모
다운 방식으로 말이다.
아스와는 굉장히 사랑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첫 페이지를 제외하고 그려진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최소한 결혼할만큼 사랑하지 않는 인물은 유즈루 뿐. 그녀의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로 넘친다. 각자의 방법으로 위로와 배려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가족, 범법 행위가
아니라면 무슨 짓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지켜봐줄 것만 같은 친구 교, 아스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해질 것만 같은 예감이 쾅하고 들었다는 이쿠...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 준 직장
선배, 그리고 아프다니 문병 딸기까지 선물해 준 단골 식당 주인...그들은 아스와를 아끼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만들어 준다. 참, 롯카 이모를 빼놓으면
안 된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아스와가 기어나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롯카 이모. 롯카 이모의 조언에 따라 드리프터즈 리스트를 만들고, 거기에 쓰여진 항목들을
성실하게 수행해 나가면서 아스와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혹독한 이별의 경험을 아프지
않게 떠올릴 정도로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매일 매일을 성실하게 꾸려나갈 기력을 얻게
된다. 그 과정이 이 책 한 권에 그려져 있다. 실연을 경험 중인데 주위에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줄 사람도 없고, 왕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안길 수 있는 사람도 없다면 몹시 쓸쓸할
것 같다. 어쩌겠는가. 혼자 우는 수 밖에. 실컷 울었다면 이 책 어떨까?
‘태양의 파스타, 콩수프’말이다. 치유소설 한 권을 읽고 기력 회복하는 건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약간의 기운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스와처럼 드리프터즈 리스트를 만들어보면,
내 마음의 바람이나 소망 같은 데 집중하다보면 실연도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아니면, 아니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보다.
유즈루가 없어지고 나니 잘 알겠다. 나란히 걷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은,
나란히 걷고 있다고 믿고 있던 길까지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으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다. 당연하지. 결혼에 의지해서 걷고 있었으니까.
몹시 인상적이었던 구절. 사람에 의지해서 내 길을 만들면 안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타일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