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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만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그런데 책 띠지에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얼굴은
그대로다. 음...저 사진의 그녀가 확실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저 사진을 쓰는 이유도 이해할
것도 같지만 왠지 어색하다. 뱀파이어도 아니고, 계속 같은 모습이라니...
‘반짝반짝 빛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도 저 사진이었는데 말이다. 나이 들어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이었다면 멋졌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 내가 나이를 먹었듯이 그녀 역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면. 그 시간의 흐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의 흔적조차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이었다면 이 책이 그 표지와 띠지만으로 훨씬 인상적이었을 거다.
그녀의 책을 읽어왔던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그리 생각하지 않으려나?
물론 띠지의 사진에 그녀의 어떤 의사도 개입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나는 띠지는 물론 책의 표지, 책의 제목을 포함해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을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당연히 영향을 받고, 받을 수 밖에 없다.
뭐...그래서 아쉬웠다는 거다. 그래서 싫었다는 건 아니고.
하지만 사진이 여전해서였을까? 무척 신기했던 부분은 이 소설을 읽는데 에쿠니 가오리는
참 한결같구나 싶었다는 것. 여전히, 여전히 감성이 풍부하고 그 감성에 맞는 단어와 표현을
찾아내는 센스가 탁월해서 감탄할 정도였다. 역시 에쿠니 가오리는 건재했다.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내 소녀 감성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애당초
있긴 있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며 밤하늘을 힐끗 바라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소녀감성의 정체를 직시해보는 게 어떨까. 소녀감성은 마냥 순수하고 파스텔 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 책의 소녀감성이 그러했고, 이 책을 읽고나서 떠올랐던 소녀였던
그때의 나와 내 친구들이 만들어냈던 어떤 장면들이 그러했다. 아이가 대체로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알지 않는가.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뿐.
순수하게 잔인해질 수 있었기에, 아직까지 배려라던지 최소한의 약속 같은 게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았기에 행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그런 일들을 거쳐서 우리들이 되었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소녀감성에 대한 환상은 결국은 소녀 시절을 망각하는 데에서부터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소녀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는 진정 소녀 감성을 가진 게
아닐까. 그런 감성을 가진 에쿠니 가오리씨이기에 여전히 사랑받는 것일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