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느릿하게 머물고, 촘촘하게 배우고, 섬세하게 여행하는

지상에서 가장 농밀한 여행의 기술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이 문장 그대로 여행을 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여행 스타일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여행에 가장 닮아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러기 위해서 그곳에서 그 장소만의 무언가를 꼭 배워오리라 생각했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핀란드, 벨기에, 독일, 프랑스, 일본 등등의 나라에서 배워오고 싶은 걸 정해 놓고 있다.

 

어쩌면 그 장소를 좀 더 강인하게 각인시키고 싶었던 소망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벨기에에서 배우고 싶은 것은 초콜릿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어느 지친 오후에 느릿하게 초콜릿을 녹인다면

 

그 기분 좋은 초콜릿 향에 분명히 벨기에의 거리가 떠오를 것이고

 

그와 함께 잊고 있었던 세세하고, 별거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별거였던 일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규모 작게 상영되면서 기분이 활짝 개일 것 같다.

 

그러니까 여행을 일상에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면 일상이 곧 여행이 될테니까.

 

그렇다면 지금보다 좀 더 풍부한 표정을 지으면서, 관대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는 것 같다.

 

뭐...이동수단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서가 결단코 아니다.

 

게을러서 여행 가서 변변한 노트 한 권 만들어오지 못하는 성향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한군데 쭉 눌러앉아서 이웃동네 정도나 팔랑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여행을 선호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절대절대!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에서의 여행법은 내 취향이었다.

 

그녀는 참 많은 걸 배운다.

 

파리 리츠 호텔에서 쿠킹 클래스를 듣고,

 

양치기 개에게 무시의 눈빛 공격도 당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 꿋꿋하게 양떼를 쫓기도 하고

 

-가끔 양떼들에게 그녀가 쫓기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예술 강좌를 들으며 골목탐사를 한다.

 

영국 윈체스터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흔적을 따라 나서고

 

제인 오스틴의 추종자 세력으로부터 따돌림도 당한다.

 

일본 교토에서는 춤과 다도도 배우는데

 

다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춤은 기간 안에 마스터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글쓰기 교실에 참가하는데

 

비판은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다시는 이런 형식의 수업에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 여행지는 프랑스의 아비뇽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프로방스식 정원에 매료된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아직은 정원 가꾸기에 큰 흥미는 없지만,

 

프로방스식 정원을 꼭 한번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일성이 없는 장소과 수업에서 그녀는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그녀의 생각들이 다듬어지는 과정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녀의 친근하고 배려심 깊은 태도와 신중한 관찰력이 인상적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주관으로 자신과 대상을 선명하게 바라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유머러스하고 열정적인 모습도.

 

그녀의 그런 성향은 저널리스트로서 자질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오랜 여행을 통해서 키워진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녀의 여행 조언도 참 요긴했고 말이다.

 

단 한장의 사진도 없지만, 여행을 세세하게 옮겨놓은 멋진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러닝여행(learning travel)의 매력을 다시 한번 발견한 것 같다.  

 

언젠가 로망의 도시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생각하고 그리고 골목을 탐사하고 싶다.

 

오라는 곳이 지금은 없지만, 가고 싶은 곳은 참 많아서

 

이 책을 다 읽어낸 그날 밤 참 설레는 상상을 하면서 잠들지 못했던 것 같다.

 

기분 좋은 뒤척임을 계속하면서, 여러가지를 계획하고 수정했다.

 

이 책은 분명히 여행을 부추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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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 only 2009-07-2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앨리스 님(이 책 작가랑 이름이 같네요^^)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안 그래도 이 책 읽고 싶던 것인데 페이지가 많아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저도 이런 러닝여행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지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