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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 길가의 후지이 01 ㅣ 길가의 후지이 1
Nabekurao 지음 / 학산문화사/DCW / 2026년 9월
평점 :
평범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무시 당하기 쉬운 후지이씨를 여러 등장 인물의 시선과 가치관으로 그려내는 이야기.
독특한 형태의 인간 드라마. 후지이는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중심 화자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이 각기 1인칭 화자로 접근하며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1인칭 독백으로 드러나지만, 후지이씨의 생각은 대화를 먼저 시도하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며 타자와 자신을 비교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은 사람과 만나는 일이 많아지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 확산이 빨라진 요즘 시대에선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나치게 정보가 넘쳐나고 자신을 주장 할 일도, 숨기고 싶은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타인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는 후지이를 통해 나 자신을 위한 방향을 찾는 것을 그린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후지이가 옳다는 것도 아니라, 후지이에 감명 받고 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후지이와는 다른 삶이 자신에게 맞다 생각하여 고수하는 사람도 있다. 주관이 강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을 통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며, 다른 사람들이 후지이를 통해 깨닫기는 해도 후지이처럼 되려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후지이씨에 대입하여 이야기를 풀지만, 좀 미묘하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후지이씨는 인생을 달관한 모습을 보인다. 집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고, 상대가 필요로 하면 돕지만 필요로 하지 않으면 자리를 뜨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타인에게 과하게 맞추려고 하지도 않으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한다.
캐릭터적으로 보면 인간 관계에 지친 사람이 원하는 이상적인 형태다. 방황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고, 적절히 맺고 끊고, 자기 자신의 가치관으로 움직이고.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너무 이상적이라 이질적이다. 후지이씨와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후지이씨의 모든 점을 모아 놓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는 후지이씨의 자기 감정을 독자가 알 수 없고, 그저 타자의 시선으로 후지이씨를 판단하기 때문에 후지이씨를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크다.
비록 후지이가 타인에게 쉽게 무시당하고 뚜렷하게 눈에 띄는 캐릭터가 아니어서 성공을 한다거나 엄청나게 영향력이 있거나 한것은 아니지만, 후지이 같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 남아야 하는 캐릭터로는 과할 정도로 완벽한 캐릭터성이다. 그리고 너무 완벽한 캐릭터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 만화는 이 문제를 완벽하지 않은 제 3자의 시선으로 풀려 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의 메인은 후지이씨다. 아무리 제 3자들이 다소 결함이 있고, 완벽하지 않고, 이를 통해 독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거나, 경험이나 성장, 깨달음을 주려 해도, 후지이는 불변하다. 그는 변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고, 결점도 없고, 위기도 없다. 인간미는 사람마다 느끼는게 다르겠지만, 후지이씨는 맺고 끊는게 명확하기도 해서 더더욱 제3자의 화자를 여러번 투입해도 본질적으로 그와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기도 힘들어, 인간미도 떨어진다.
독특한 방식의 이야기 진행이지만, 후지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완벽하고, 거리감을 어느 정도는 허용하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불필요하게 허용하지는 않는, 철벽의 느낌도 있어,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후지이지만, 그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아니어서, 더더욱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느낌은 안 든다. 후지이가 가진 결점이라고는 그가 항상 불만스런듯한 뚱한 표정을 짓는 점인데, 이는 후지이의 인격이나 캐릭터성과는 맞지가 않아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강조하고 연결시키는 것도 아니어서 매우 어색하다.
삶의 교훈이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푸는 만화는 개인적으로는 보노보노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결점이나 특징이 있는 인물들이 실수를 하거나, 다양한 상황을 접하면서 풀어내는 방식이 더 흥미롭고 교훈적이며, 크게 와 닿았다.
이 만화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건 있지만, 다 보고 남는게 없다. 특정한 삶의 형태가 옳다고 주장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뭐가 좋은지도 주장하지 않는 모호함으로 일관하기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에서 교묘하게 선타기를 한다. 그래서 남는 것도 없고, 남기려 하지도 않는다.
여태껏 결말이 모호하거나, 메세지가 불분명한 만화는 여럿 봐 왔지만, 이처럼 자기색을 죽이고 애매한 입장을 고수하려는 만화는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주관과 색이 없어 좋아하지도 추천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