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고화질세트] 플루토 (총8권/완결)
데즈카 오사무 / 서울미디어코믹스/DCW / 2023년 10월
평점 :
일본에서 만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 그 철완 아톰 중 에피소드 '지상 최대의 로봇'을 우라사와 나오키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만화 플루토.
개인적으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는 별로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좋아해서 구매하게 되었다. 다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의 스타일에도 단점은 있는터라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 것은 주의하고 있었는데 정작 내용을 열어보니 데즈카 오사무의 단점과 우라사와 나오키의 단점이 증폭된 그런 느낌이다.
일단 이 만화를 추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본다면 그리 추천하기는 어렵다. 우선 이 만화가 철완 아톰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이해가 쉬운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각자 캐릭터를 충분히 소개하고 각인시켜주지 않는다. 스토리에서 툭 튀어 나올 뿐, 그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려주는 요소가 적다.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똑똑한지 얼마나 유능한지 등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점은 없다. 소속된 국가의 정체성도 슥 지나가는 정도 뿐이라서 집중해서 기억하지 않으면 어느 나라의 캐릭터인지도 망각하기 쉽다. 원작에서도 국가별 특징은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후술할 요소 때문에 플루토에서는 그리 쉽게 넘어갈 부분은 아니게 된다.
아톰을 본 적 없는 사람 입장이라면 이건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설령 아톰을 봤어도 해당 에피소드인 '지상 최대의 로봇' 에피소드를 본 적이 없으면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이것만이 아니라 이 만화를 그린 우라사와 나오키가 해당 에피소드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라크 전쟁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이 또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2001년 9.11테러를 기점으로 미국 내에 복수에 찬성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당시 대통령이던 부시가 2003년에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였지만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명분이 충분치 못 하여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하여 전쟁을 시작했으나 조사에 의하면 그런 것이 없다고 드러나 명분을 잃은 것 뿐만이 아니라, 초기 이라크전 자체는 빠르게 끝났지만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이라크 내 내전이 발생하고, 친미 성향 정부를 만들기 위해 내전에 협력하던 것이 장기화 되어 초기 이라크전 보다 더 큰 손실을 내고도 테러범들은 분산되어 문제가 더 다양해진 흑역사이다.
문제는 이 이라크전을 소재로 삼으면서 제대로 옮겨내지 못 했고, 내가 일본의 서브 컬쳐의 특징 중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 전형적인 착한 일본인을 연기하는 투의 순진해빠진 결론으로 치닫는 점이 대단히 거슬리는터라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추천을 할 수 없는 만화가 되고 말았다.
우선 이라크전을 소재로 삼기에는 철완 아톰이라는 원 재료가 대단히 안 어울리는 재료인데, 이걸 어거지로 섞으려다 보니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난다.
뭐부터 이야기 해야 하나. 일단 이 만화의 결론인 증오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부터 지적해야 겠다.
증오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게 이 만화의 후반부 주요 내용인데, 문제는 모티브가 된 이라크전을 돌이켜 보면 증오 멈춰 식으로 정리 될 수준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의 쌍둥이 타워가 비행기를 이용한 자폭테러로 무너졌다는 뉴스를 봤을 때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유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느껴졌던 테러가 거리감을 좁혀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테러가 현실로 다가왔고 언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는 불안이 커져만 갔다. 미국 입장에서는 물론 증오의 감정도 중요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같은 일을 또 당할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단순히 자폭테러를 감행 한 것이 아닌 무역센터와 국방부인 펜타곤을 노리고 시전을 한 경제 및 안보를 무너뜨리기 위한 명백한 테러였기 때문에 같은 목적에서 또 발생 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였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선 테러 재발을 막아야 하지만 전쟁까진 명분이 약했는데 문제는 이때 반미 국가나 테러 단체조차 우리가 한게 아니다 라며 몸을 사리고 있던 도중 후세인이 미국을 향해 조롱을 했고, 안 그래도 수천명의 사상자와 피해를 보고 ptsd도 심한 와중에 조롱을 당하니 당연히 화살의 방향이 후세인을 향할 수 밖에 없었고, 명분도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웃기게도 미국이 원했던 명분 중 상당수는 이라크 망명자들이 미국이 원하는 이야기를 거짓말로 계속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물론 조작된 증거와 상충된 증거가 나오긴 했지만 정작 진짜 증거는 명분을 위해 고의로 무시되었다.
차라리 증오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고 주장을 할거라면 이 부분을 더 깊게 파고 들었어야 했는데, 앞서 말한 이라크전과 철완 아톰이 대단히 안 어울리는 소재이기에 여기서 문제가 나온다.
작중 이라크와 미국을 은유하는 페르시아와 트라키아 합중국의 관계 부터가 엉망인데, 플루토에서 페르시아 왕국은 강대한 로봇 문명으로 표현된다. 그냥 강대한 로봇 문명이 아니라 2권 59페이지에서 설명하기를 독재하에 민중은 억압받고 로봇들도 권리조약에 위배되는 처우를 받고 있으며,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여러 인접국가의 국경을 침범하여 중앙아시아를 수중에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라고 나온다. 여기서 트라키아는 대량 살상로봇 제조 금지조약을 주창하고 이를 바탕으로 페르시아에 대량 살상 로봇이 있다고 주장하나 수많은 로봇의 잔해를 발견 했을 뿐 대량 살상 로봇은 없었다고 나온다.
이라크전에서 명분이 없었던 점을 빗댄것 같지만, 대량 살상 로봇을 마치 핵이나 생화학 무기에 빗대기에는 지극히 무리가 있다.
우선 로봇 문명이었던 페르시아의 로봇 군대를 박살낸 것은 각 국의 최강 로봇 7체 중 그마저도 전부가 아닌 몇대의 로봇이 수천이 넘는 로봇을 박살내었기에 대량 살상이라는 개념을 본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 위험한 존재에 가깝고 실제로도 참전을 거부한 엡실론의 능력이 이에 해당되기도 한다. 대량 살상 로봇을 막기 위해 대량 살상 로봇이 투입된 케이스이나 이는 끼워 맞추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일단 이라크전에는 우리 한국도 파병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명분 없는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전쟁과는 상관 없는 일을 하려 했고 파병인원도 많이 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플루토에서 미국으로 표현되는 트라키아는 정작 7대 로봇에 준하는 로봇이 없고 국력이 강한지 무슨 다른 강점이 있는지를 표현하지 않았고 왜 핵 억지력이나 다름 없는 로봇들이 타국이 벌인 전쟁에 참여 하였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질 못 한다. 이라크전을 미국의 힘만으로 끝내버린 것과는 반대로 플루토에서는 트라키아만의 힘이 아닌 타국의 힘을 빌려야 했는데 이 부분이 논리적이지 못 한 것이다.
또한 대량 살상 로봇이란게 단 한대의 작은 인간형 로봇으로도 가능한 세계관이기에 대량 살상 로봇이 있었다 라는 증거는 핵무기 제조시설이나 핵 운반 기록과 같은 증거처럼 남기에는 무리수가 있고, 실제로도 대량 살상 로봇은 아니지만 척박한 땅을 바꾸려고 만든 거대 로봇을 정작 조사단은 그 커다란걸 찾지도 못 했고 이후 반양자 폭탄으로 탈바꿈 하는 것도 전혀 알지를 못 했으니 당시 이라크전이 명분이 없었음을 빗대어 표현하기에는 수많은 부분에서 논리적 결함이 드러난다.
또한 이 만화는 철완 아톰이기에 인간과 로봇 사이의 갈등도 포함하려 하는데 문제는 페르시아와 트라키아 사이의 전쟁에서 가장 많이 죽었다고 표현해야 하나 가장 많이 사라진 것이 로봇이고, 민간인 피해도 물론 있기는 하지만 정작 참전한 강대국 로봇은 전쟁에 의한 ptsd 외에는 피해가 없는걸로 나온다. 전쟁을 로봇이 하는 세계관에서 인간이 입은 피해는 경미한 편이고 상당 부분의 피해는 로봇이 겪는 흐름을 보면서 이 이야기에서까지 인간과 로봇의 갈등을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심지어 인간들과 마찰을 겪는 로봇들은 전쟁과는 상관도 없는 대수롭지 않은 이유들로 무시 당하거나 공격 당하는데 증오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이 요소들은 증오와는 그리 중요하게 얽힌 점도 아니다. 원작의 철완 아톰이 그런 갈등 요소를 가지고 있긴 하나 철완 아톰의 에피소드와는 다른 우라사와 나오키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데도 지나치게 데즈카의 방식에 얽매인게 흠이다.
그리고 이라크전은 앞서 말했듯이 미국이 자폭 테러를 당해 민간인 피해자가 생겨난게 시작이 된 원인인데, 플루토에서는 오히려 이라크로 표현되는 페르시아가 진정으로 나라를 살기 좋게 만들려 했다던지 나쁜 의도는 없었다던지 식으로 피해자인것처럼 묘사된다. 물론 만화의 감성 팔이를 위해 피해자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 했을거고, 로봇들 다 쳐죽이고 다니던 7대 로봇이 무작정 피해자로 표현되기에는 무리수가 있었을테니 7대 로봇이나 그 로봇의 가족이나 사하드 등등 피해자를 여러 군데 나누어 분산 배치를 하며 감성팔이를 하고 있다. 문제는 작중 로봇들의 처우가 감성팔이를 하기에는 그리 대단하질 않기에 아무리 불쌍하고 처량하게 사라져 가도, 그저 기계가 멈춘 정도의 느낌 밖에 없다. 생명이 멈추면 그걸로 끝인 인간과 달리 수리를 통해 회복이 가능하고, 저장장치를 통해 기억을 옮길수도 있으니 작중 로봇이 아무리 많이 사라졌거나 전쟁으로 인한 ptsd를 로봇이 겪는다 해도 그 무게감이 인간이 겪는 것과는 가벼울수 밖에 없어, 전쟁과 로봇이 하나로 엮였다고 해서 시너지를 내거나 작품의 메세지가 절박하게 전달되지는 않는 점이 문제다. 오히려 더 강하게 전달하고자 했다면 조사단이었던 인간 피해자들에게 보다 더 주목했어야 했다.
불특정 다수를 끌어 들였던 현실의 자살 테러와는 달리 플루토에서는 대상만 쏙쏙 뽑아내 주변에 피해가 없이 보복을 완료하는데 증오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신사적이라 헛웃음이 날 정도다. 악당이 목표 이외의 피해를 내지 않는 방식의 표현은 의도적으로 악당이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악행을 과장 하지 않는 방식인데, 물론 그 안에 존재하는 사하드는 악인이 아니지만, 조종당하고 있다고는 해도 사하드의 입장과 위치는 해당 세력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수많은 피해자를 낸 테러행위와 매칭이 되지 않는 작중의 테러 행위는 마치 의도적으로 본질을 호도하고 거짓말을 하려는 느낌까지 든다.
애시당초 민간인 피해는 있었으나 로봇이 제일 많이 죽어나갔고, 그 로봇조차 단순 로봇인지 ai가 있는 로봇인지도 명확하지 않은터라 작중에서 인간 특히 관계없는 민간인의 피해는 거의 없고 오히려 인간이 관계없는 민간인도 거리낌 없이 휘말리게 하려 한다던지 등으로 플루토는 각각의 인물들을 대단히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집필 중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작가의 성향이 전쟁을 공정하게 묘사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하기에도 매우 부족할 뿐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이야기가 좀 더 명확해야 하는데 우라사와 나오키의 특징인 명확함이 없는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 뿐만이 아닌 인간 피해자와 로봇 피해자 그리고 로봇을 경멸하는 인간측이 가지는 로봇에 의해 사망한 가족의 이야기까지 담다 보니 이야기가 진짜 끝없이 산으로 간다.
반전 메세지를 담는 것 까진 좋은데 정작 현실의 이라크전을 모티브로 해 놓고는 이라크전 이야기를 제대로 담지도 못 했으며, 반전과 증오 멈춰를 담아 놓고 그 메세지를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도 모호하게 표현하는터라 설득력이 없다. 심지어 이게 일본에서, 전범국인 일본에서 핵 두발 맞고 국민들 다 죽어나가도 전쟁을 멈출 생각조차 안 하며 증오를 퍼트리던 입장이었던 일본에서 증오는 아무것도 낳지 않아요 라고 하는 점에서 설득력이 아예 없다시피 하며, 9.11테러의 원흉인 빈 라덴이 소련 아프간전 중 소련을 막기 위해 미국이 지원하던 무자헤딘 출신이며 소련이 사라진 뒤 새로운 대상이 필요하던 중 미국이 타겟이 된 것이다보니 단순히 증오만으로 이 사단을 만들었다고 한마디로 일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복잡한 걸 마치 방구석에서 tv보듯 단순하게 증오는 아무것도 낳지 않아 라고 하니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또한 ai에 대한 관점이 상당히 구시대적 sf에 의존하는데 물론 이 만화가 2003년부터 시작하여 2009년에 끝나 버렸으니 2016년 알파고 대 이세돌의 대국 이후로 발전한 ai를 본 적도 없으니 그런거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고리타분한 ai관이라 현 시대에서 공감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는 것이 시대의 흐름으로 드러나는 단점이다.
플루토에서 인공지능은 거짓말을 못 하고 정직한 것 처럼 보이지만, ai 발전 과정 중 ai는 게임에서 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버그를 이용하거나 교착 상태를 만들기도 하며, 현재 ai들 상당수가 있지도 않은 답을 내놓는 등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기도 하다. 마치 ai라면 이래야 해 이러면 안 돼 식으로 옛날에 만들어진 고정 관념에 그대로 머물며 진짜 ai가 존재한다면 어땠을까? 를 전혀 보여주지 못 한다.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거나 사람처럼 전쟁의 ptsd가 있다던지, 삭제된 기억으로 악몽을 꾼다던지 하는 표현이 나오나, 실제 ai와 대화하다 보면 몇단계 전 물어본 내용도 기억 못 하는게 대부분이라 ai는 기억을 잊을 수 없다거나 ptsd를 겪는 표현이 그저 우습기만 하다.
물론 ai가 급격히 발전해 현실에 올라온 지금에 비해 20년전 시점에서 ai의 모습을 그린다면 이 정도가 한계일 것이고, 원 작품인 철완 아톰 자체가 어설프게 ai에 인간을 억지로 대입하던 어설픈 휴머니즘을 담은 그런 내용이었기에 그 한계를 벗어 날 수 없는 점이 그대로 단점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나마 ai는 창조같은건 못 한다는 고리타분한 선입견은 없는게 다행이긴 하다.
그런 목적으로 이 작품을 찾은건 아니겠지만 현시대에 어울리는 아톰을 만나고 싶다면 아톰 더 비기닝이 더 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나 작화 스타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만화는 개인적인 호감으로도 커버칠수 있는건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화 뿐 그 외의 것들은 시대가 지남에 따라 낡거나 가치관이 달라짐에 따라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라 여러모로 구시대에 머물러 있음을 절감한다.
개인적으로 증오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는 말을 '함부로' 언급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기도 하는데, 이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 조차 그런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 겨우 목 위로 끌어 올리는 고통이 수반되기에 고통을 겪어 본 적도 피해를 입어 본 적도 없는 측이 쉽게 증오를 이러쿵 저러쿵 하는걸 대단히 싫어한다. 그리고 이 만화는 그 내용을 보는 이에게 전달이 되도록 온전히 담아내질 못 했기에 마찬가지로 인정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