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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 - 가치투자자로 거듭나다
가이 스파이어 지음, 이건 옮김 / 이레미디어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책의 저자, “가이 스파이어”다.
이 책은 탐욕자에서 투자자로 변모하는 나의 이야기를 적었다.
나는 하버드 MBA를 졸업하고 DH 블레어라는 투자회사에 입사했다.
나는 일반적으로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에서 첫 직장을 시작하는 동기들과는 달리 기업가 정신을 살려 스스로의 길을 개천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친구들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고집대을 꺾지 않았다. 비록 당시에는 ‘DH 블레어’는 악명 높은 주식 중개회사로 소문이 나긴 했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이니까...
사실 나는 투자자로서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다.
DH 블레어에서의 생활은 사회 경력을 막 쌓기 시작한 나에겐 정말로 완벽한 직장이었다.
비록 역설적이긴 의미에서 그랬지만 말이다.
DH 블레어는 윌스트리트의 온갖 잘못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회사였다.
윌스트리트에는 탐욕이 善(선), 그 자체라는 말이 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윌 스트리트’에서 주인공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쓰레기 주식을 멋지게 포장하여 고객에게 파는 사기꾼 주식중개인이었는데, 영화이기에 좀 과장되었다는 점을 빼면 DH 블레어라는 회사가 바로 그러했다.(영화의 내용은 사실이다.)
자신의 이익을 늘리려고 진실을 왜곡하고, 고객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실 나쁜 측면에서 보자면 골드만삭스나 JP모건 같은 일류 투자은행도 비슷하다. 다만 고객을 속일 때 훨씬 화려한 방법을 동원할 뿐이다.
나는 내가 처한 실제 환경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난 DH 블레어를 사직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DH 블레어를 떠나고 몇 년 뒤 증권중개업을 영위하던 DH 블레어 앤드 컴퍼니는 1998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이 증권중개회사와 임직원 15명이 증권 사기혐의 173건으로 기소당했던 것이다.
사회 정의가 조금 이루어 졌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 진 것은 아니다.
나는 DH 블레어를 그만두고서 일자리를 찾느라 고전했다. DH 블레어의 평판을 아는 윌스트리트 내부자들은 내가 현실을 모르는 멍청이거나 회색지대를 넘나드는 위험한 녀석이라고 보는 듯 했다. 어느 쪽으로 보든, 그들은 나를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방황했다.
방황의 시기에서 나는 내가 옥스퍼드에서 배운 이론과 하버드 MBA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배워 왔던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최소한 금융을 잘 알지 못하는 고객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 무렵 나는 지성과 도덕성을 갖춘 투자자들의 작은 상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DH 블레어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정반대인 사람들이었다. 과대선전을 삼가고, 주주들의 장기 이익을 높이는 일에 집중했다. 나는 이들의 세계에 합류하려는 욕망에 불타올랐다.
이 세계에 대해서 파고들기 시작했다.
초점이 한 인물로 집중 되었다.
워런 버핏이었다.
나는 버핏의 투자전략을 강도 높게 공부하고 싶었기에, 버크셔(버핏의 투자회사)에 전화해서 사업보고서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버크셔의 사업보고서를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사업보고서는 평범했으나 핵심요소를 솔직하게 설명했으나, 홍보성 글은 없었다.
버핏의 주주 서한은 이해하기 쉬웠다. 진실을 호도하려는 다른 보고서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가 진리를 터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버핏을 나의 스승으로 삼기로 했다.
그를 연구했고, ‘워런 버핏이라면 어떻게 결정했을까?’라며 모든 상황에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직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런던 집에서 아버지가 내게 전화해서, 자금을 운용해보라고 제안하셨다. 그때가 1996년이었다. 당시 내게는 DH 블레어 출신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으므로, 아버지 말고는 나를 믿어줄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약 100만 달러를 맡겼다. 1년 정도 지나 아버지가 회사 동료 두 사람과 함께 추가로 투자했다. 그 결과 펀드의 초기 자산규모가 약 1,500만 달러가 되었다.
나는 투자자산을 운영하면서 버핏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자산을 운영하는 절차와 방식을 모방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모든 것을 100% 따라할 수는 없었다. 탐욕과는 아무 상관없듯 행동하는 버핏은 당시 투자회사의 사회적 통념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통념과 싸우기란 매우 어려웠다. 물론 나중에는 그에 대한 응분의 댓가를 톡톡히 치뤘다.
어쨌건 버핏의 방식에 다가 갈수록 내 펀드는 안정되게 운용되었다.
오늘 그 버핏을 만났다.
사실 버핏과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첫 학기에 워런 버핏이 와서 연설했었다. 당시 무식하고 오만했던 나는 버핏이 단지 운 좋은 투기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과거에는 내가 옥스퍼드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므로 내 지능으로 버핏과 대적할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언젠가는 내 지능이 그와 맞먹게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직접 버핏을 대면하면서, 나는 도저히 그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낙담하는 대신, 이상하게도 속박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그가 내게 주는 교훈은 분명했다.
버핏과 경쟁하려 하지 말고 진정한 기회에 집중하라... 그럴려면 그것은 최고의 가이 스파이어가 되는 것이다.
버핏이 즐겨 말하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바비피셔(체스 선수)를 물리치는 방법은?”
“체스 이외의 게임을 하는 것이다.”
투자에서는 내가 버핏을 물리칠 수 없다. 그러나 그를 본받을 수는 있다.
이제 나의 목표는 워런 버핏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진실한 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