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일기 - 바닷가 시골 마을 수녀들의 폭소만발 닭장 드라마
최명순 필립네리 지음 / 라온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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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바닷가 시골마을에 위치한 ‘진동 요셉의 집’에서 살아가는 수녀님들에 관한 이야기로 최명순 필립네리 수녀님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닭장 속 이야기가 그 주된 테마이다. 



     한낱 미물이라 할 수 있는 닭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작은 닭장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소동들을 읽다보면 그것이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렇게 다른 삶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20.6.4.


냉장고에 있었던 찰떡 세 개가 쉰 맛이 나서 손으로 잘라 던져주니, 큰 닭들과 병아리들이 우우 몰려들었다. 그것이 맛이 있는지 너도나도 먹기 위해 떡을 물고 도망을 가고 난리다. 병아리들도 합세하여 몰려다녔다. 그런데 대장 수탉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 서서 암탉과 병아리들이 경쟁적으로 떡을 먹으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양이 너무 신기해서 1번 대장에게 떡을 따로 떼어서 부리 가까이에 던져 주었지만 한 번도 자기가 먹지 않았다. 당당히 서서 사랑하는 암탉들과 병아리들이 먹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컷의 사랑은 철저하게 희생적이어서 동물로서의 본능을 뛰어넘는 행동이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가지인가 보다.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 본능의 근본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세상이 점점 험악해져서 때로는 사람 부모가 짐승만도 못한 경우를 볼 때가 있다. 생각하는 지성이란 인간이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2020.07.18.


어제 저녁 닭들을 풀어주어 풀을 먹도록 한 후 종을 치고 닭들을 불러 모은 다음 먹이를 주고 문을 잠글 때였다. 2인자인 수탉이 우리의 애를 태우며 닭장으로 들어오지 않으려 했다. 다니엘 수녀님과 나는 열이 받아 그냥 문을 닫고 내려왔었다. ‘짐승들에게 먹히든지 살아 돌아오든지 모르겠다. 너도 고생 좀 해 봐라’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 닭장으로 올라가니 닭장 문을 열어 닭들을 밖으로 내보낼 때 그 닭이 잽싸게 닭장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닭들은 밖으로 나가는데, 보나마다 밤새 추운 밖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떨었을 것이다. 일탈의 대가를 치른 셈이다. 


   자유와 방종에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 하룻밤 고생을 하는 것으로 끝난 것은 아주 양호하다. 잘못하다가는 목숨과 바꿀 수도 있다. 닭에게 닭장 안의 감금은 안전함과 먹이가 보장된 것이다. 그러나 탈출을 해보지 않은 닭들은 닭장 밖의 세계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잘하면 인간은 성큼 자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삶은 반드시 흑이다, 백이다 할 수만은 없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 경험을 통해 공부하고 조금씩 발전해 간다. 그러나 그 경험으로 인해 안주하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변화는 놀라운 힘을 만들어 내지만 누구나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2020.09.12.


우리 수녀원 주방에는 볼품없이 생겼지만 참 사용하기 쉽고 편리한 경질 양은솥이 하나 있다. 그 솥은 제법 긴 세월 동안 여러 수녀님들이 사용했음이 틀림없다. 솥 안은 찌그러지고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불 위에 얹어 두고 음식을 끓이다가 태우기도 여러번 한 것 같다. 언제 수명이 다할지 모를 정도로 낡았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그 솥의 마지막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중략>    우리 수도회 모토가 '주님 손안의 연장'이다.   <중략>





     "녹쓸어서 못쓰는 사람이 아니라 낡아서 못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모토로 살아가는 분이 있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그처럼 호기롭게 말할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갈 수록 몸이 삐끄덕 대면 그 호기로움은 사라진다.  그때서야 그 모토가 진심이었는지 호기로움이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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