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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의 참모
신영란 지음 / 아이템비즈 / 2019년 12월
평점 :
역사는 시대를 관통하는 교훈을 주어 우리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동시에 당시 상황을 밝혀주는 등대 역할을 한다. 그러니 비전공자들을 위해 쉽게 풀어쓴 역사 교양서 역시 중요하다. 한정된 공간인 책에서, 글쓴이는 어떤 사건을 넣을지 말지, 이를 어떤 관점으로 쓸지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역사가 말하는 전체적인 줄기까지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 이 전체적인 줄기는 현재 역사학계가 대변하는데, 이것은 ‘현재까지는 제일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라고 전문가들이 검증한 것으로 보아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역사 교양서에는 현재 역사학계에서 주류인 관점으로 우선적으로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혹여 흥미롭지만 주류는 아닌 관점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면 일단 비주류임을 밝히고, 주류의 관점을 덧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가지며 책장을 넘겨본다.
책에서 오타 1번, 그리고 잘못된 공백을 사용한 문장이 꽤 나온다. 초판이라서 그런건가 싶다. 이에 대한 언급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딱히 불편하지는 않은 양이었다.
작가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책에서 나오는 사건들을 설명한다. 인물들이 서로 대화도록 설정하여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일종의 나레이션처럼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을 추가하여 설명하는 사건들에 대해 독자의 접근성을 향상시킨다. 이는 독자들에게 역사를 부드럽게 설명하는데 큰 도움을 주나, 독자들이 작가의 관점에 치우치는 것이 우려된다. 이는 후술하겠다.
책 표지에는 ‘기능직과 권력형 참모에게 배우는 난세의 처세학’이라고 써져 있다. 고려편을 시작하기 이전 짤막한 글에서는 작가가 역사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것은 무엇인지 질문하는 형식으로 쓰여있다. 하지만 이를 생각하며 책을 읽으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p.14 왕륭이 궁예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 일화를 소개한 점을 예로 들겠다. 작가는 ‘왜 왕륜은 이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이유를 말한다. 그런데 작가가 쓴 그 이유란 원래 왕건의 집안에서는 용왕의 계시가 있었다는 것과 도선대사의 풍수지리적 예언에 불과하다. 이뿐만 아니라 p.55 최지몽의 예언, p.104 서희의 아버지 서필이 태어난 배경에서 사슴에게 보답을 받은 느낌의 글 등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원체 알기 힘든 서술이 많다. 역사를 통해 예언의 경이로움을 느끼라는 것인가? 이는 단순한 소개에 그쳤어야 했는데 너무 비중을 두어 다루었다. 또한 역사서 내의 허구와 실제의 구분이 명확했어야 했다. 참모에게 배울만한 일화가 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생각보다 적었는데 이를 더 보완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진위가 의심스러운 내용도 존재한다. 책에서 황희를 두문동 72현의 유일한 생존자로 소개했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황희가 두문동에 은거한 설화가 전해지지만 역사적 사실이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나와있다. 또한 ‘72인의 성명이 모두 전하지는 않고, 임선미(林先味)·조의생(曺義生)·성사제(成思齊)·박문수(朴門壽)·민안부(閔安富)·김충한(金沖漢)·이의(李倚) 등의 성명만 전한다.’고도 나와있다(마지막에 링크 첨부). 종합해서 말하면, 진위가 불분명한 사실들은 불분명하다고 언급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일화가 존재한다.
대사 설정, 인물들의 속마음, 당시 상황에 대한 해석.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 반해 작가 자신의 해석이 어떤 역사서의 어느 부분에서 기인한건지 명확한 출처가 별로 없다. 이때문에 작가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것인지 의심된다. 예를 들어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을 소개할 때 소제목에 ‘불행한 시대의 지킴이’라고 묘사하는데, 나는 명성황후를 박하게 평가하고 있던 쪽이라 작가의 입장이 흥미로웠는데 정작 이런 의견을 뒷받침 하는 자료의 출처가 없다.
역사 교양서는 역사학계의 논문들과 달리 독자들이 일반인인 것에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내용’과 ‘전문성’의 무게감 역시 다른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교양서에서 쓰인 사실들의 ‘근거’의 무게 역시 가벼워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기위해 가볍게 쓰는 것은 이해하나 일반인은 역사 교양서에서 말해주는 역사적 사실 중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는 능력이 전공자보다 떨어진다. 따라서 작가는 일차적으로 신빙성을 겸한 상세한 해석을 해야 할 것이고, 만약 주류적인 의견이 아니라면 주류가 아님을 밝히고, 주류는 무엇인지, 자신은 왜 다르게 생각하는지 자세한 설명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이에 흥미를 가진 독자들을 위해 이러한 관점과 주장을 어떤 역사서의 어느 부분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 기록해야 한다. 또한 설화나 신화처럼 허구지만 의미가 있는 것을 언급할 때는 사실과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지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청개구리처럼 거의 반대로 나타났다. 일화를 설명하는 방식은 그런대로 좋았지만 논거와 근거가 너무 미흡하다. 또한 책에서 내세우는 ‘참모에게 배우는 난세의 처세학’에 어울리지 않는다. 참모들의 일화는 거들었을 뿐, 자세히 뜯어보면 적당한 일화에 작가의 개인적인 해석 조금을 곁들인 그저 그런 교양서이다. 작가가 그저 아주 얕은 조사만으로 대중이 재미있어할만한 일화를 모아쓴 듯한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참고자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D%99%A9%ED%9D%AC&ridx=0&tot=2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어 황희,‘생애’문단의 4번째 줄 참조. 검색일 2020.01.05.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700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어 두문동72현, '내용’문단의 첫번째 줄 참조. 검색일 2020.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