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란 무엇인가』와 『책 사용법』을 읽고 있습니다. 『2010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과 『만만한 출판제작』도 곧 읽을 예정입니다. 모두 공부하려고 산 책들이에요. 참, 읽다가 내팽개친 『편집초보 이대리 책만들기 달인되다』도 거두어 읽어야 합니다.
직장을 나온 지 일 년 만에 취업을 했고, 또 넉 달 만에 그만두어야 할 상황을 맞았습니다. 나란 인간은 사회생활에 소질이 없나, 사회가 나한테 우호적이지 않은가, 이제야말로 작정하고 글을 쓸 때일까 등, 별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자신감을 잃은 만큼 두려움은 자라났습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습니다.

실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습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을 하든지 가슴 속 한쪽 나무에 매달려 있던 빨간 사과이니까요. 종이와 연필로 삶을 채우고픈 욕구가 짙게 피어올랐습니다. 몽글몽글.
스물세 살 때였나요. 대학을 졸업한 뒤 여섯 달간 글쓰기만 했었지요.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하실 때였습니다. 내 방에 틀어박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연필로 종이에 글을 쓰고 쓴 글은 노트북에 옮겨 담는 일과를 반복했습니다. 친구들과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동호회에 가입하지도, 블로그를 꾸미지도 않았습니다. 사회적 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그 이전에 교류 같은 걸 할 짬이 없이 바쁘기도 했습니다. 읽기와 쓰기로 분주했던 나날. 지난하면서도 행복했던 시절. 그 시간이 계속된다면, 그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면, 나는 글로써 무언가를 이루어 스스로를 증명하게 되리라 믿었었습니다.

그 유연하고 발칙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아니, 다시 창조해 내야 한다고 여겼지요. 한데 상황은 그때와 많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아버지의 퇴직, 이사, 고물이 된 노트북, 적지 않은 나이… 상황을 탓하는 건 얼마나 비겁하고 볼품없는 짓인가요. 그럼에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창작(픽션)에 재능이 없음을 알면서 책임감 있게(?) 몰입할 수 있을까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지요. 서류전형을 통과했으니 면접에 응시하겠냐는 출판사 전화들이 걸려 왔습니다. 무더위 속에 시험들을 치렀고, 생각을 채 정리하기 전에 첫 출근 날짜를 잡게 되었습니다. 맞아요. 다시 직장인이, 아니 편집자가 된 것입니다.
어린이책을 만들던 시간, 어른책을 만들던 시간, 『편집자 분투기』를 읽던 시간이 뭉쳐진 실타래에서 한 가닥 실이 풀려 나옵니다. 그 끝을 잡습니다. 그래, 더 할 때인가 봐, 아직 덜 했으니까 더 해 보라고 기회가 주어지는 거야, 하면서.

편집자로 산다는 것과 작가로 산다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어쩌면, 완전히. 그러나 역량과 열망에 따라서 양쪽 끝을 이어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솔직히 말해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꿔 왔습니다. 훌륭한 편집자보다는 탁월한 작가가 되길 소망한 적이 훨씬 많았지요. 한데 지금은 괜찮은 ‘편집자’가 되고 싶군요. 열심히 공부해서 부끄럽지 않은 책들을 만들고 싶어요. 작가가 되려는 꿈을 버리는 건 아닙니다. 무작정 유보하는 것도 아니고요. 글쓰기에 대한 과장된 판타지와 독선적인 골방에서 벗어나, 그때그때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을 찾아 쓸 겁니다. 그것은 몰랑몰랑하지 않고, 잘 여물어 단단하면서도 선명한 글이 될 테지요.
쓴 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편집자이자 작가로서, 책과 글과 함께, 또다시 분주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숟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