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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 - 연쇄살인범의 딸이 써 내려간 잔혹한 진실
에이프릴 발라시오 지음, 최윤영 옮김 / 반타 / 2025년 6월
평점 :

소설인 줄 알았던 이 책, 알고 보니 연쇄 살인마의 딸로 살아가야 했던 저자의 에세이였다. 책에는 연쇄 살인마였던 아버지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던 아버지를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심적 고통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만큼 배신감과 실망도 컸을터였고, 미안함과 죄스러움 등 여러 복합적인 감정으로 힘들었을 그녀의 용기있는 선택과 고백은 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끝까지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아버지 대신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그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어느 누가 연쇄 살인마의 딸이라고 스스로 밝힐 수 있겠는가. 손가락질 받을 수 있는,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족쇄와도 같은 사실을 말이다.

에이프릴. 그녀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21살이던 그녀의 엄마를 차지한 아빠는 35살에 세 번의 결혼 전적이 있는데다 교도소를 들락거린 범죄자 이력을 가진 남자였다. 그럼에도 온갖 달콤한 말로 어렸던 여자와의 결혼에 성공한 남자는 에이프릴을 포함해 5남매를 낳는다. 그리고 이들은 수없이 이사를 다니며 거처를 옮겨다녔고, 폭력적이며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아빠의 난폭함에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다. 그럼에도 에이프릴은 분명 그들 남매는 사랑 받았음을 강조한다. 엄마를 비롯해 수없이 폭력에 노출 되었음에도 말이다. 자식으로 사랑을 받았다기보다 단순하게 소유물로서 아낌을 받았던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형을 선고 받은 그녀의 아빠가 사형을 앞두고 지병으로 교도소에서 사망을 했다고 한다. 에이프릴은 아빠의 사망 이후에도 타임라인을 만들어 이사를 한 시기와 장소, 그때 당시의 실종이나 미제사건들을 정리해 둔 것들을 토대로 그녀의 아빠가 저질렀을 것이라 추정되는 사건들을 여전히 정리하고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이런 그녀를 가족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멀어진 듯 보여 안타까웠다. 남편과도 이혼을 앞두고 있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조금 어색해 진 듯하다. 또, 형제자매들과의 사이도 틀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난 동생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고, 에이프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동생들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쇄 살인마의 가족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진실은 밝혀져야 맞는 일이지만, 그녀의 동생들 입장에선 드러난 진실도 경악스럽지만 그들 자신의 입장도,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날벼락이었을거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신고를 한 에이프릴 덕분에 미제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은 범인을 알았고, 드디어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 분명 에이프릴의 선택은 옳았지만,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들은 결고 옳았다고 해주지 않는다. 온갖 구설수와 비난, 소원해진 가족 관계가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가해자 가족들도 그저 가족이었을 뿐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 더 꽁꽁 뭉쳐야 할 형제자매들이 흩어져 버렸으니, 앞으로의 그녀의 행보가 조금 걱정이 된다. 끝까지 잘 해내길.. 그녀의 발걸음이 결국 가벼워 질 수 있도록 사건이 모두 마무리가 될 수 있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