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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요시노 마리코 지음, 박귀영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추억을 맡기고 돈을 받는다. 20살이 되기 전에 돈을 갚으면 다시 추억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추억은 영영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이런 조건의 아이들만 이용 가능한 전당포가 존재한다면, 아이들 중 이용하지 않을 아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추억을 찾으려는 아이는 또 얼마나 될까? 마법사의 말에 의하면 기껏해야 100명 중 한두명만 추억을 되찾으러 온다고 했다. 그럼 오래도록 찾지 않는 기억은 어떻게 될까? 찾아가지 않는 추억들은 마법사가 불가사리로 만들어 바다 속에 넣어둔다고 한다. 그럼 그 불가사리는 차차 작아져 결국엔 별모양의 모래가 된다고 했다. 혹시 우리가 밟는 바닷가 모래 중에 이렇게 추억이 작아져 만들어진 모래가 섞여 있는건 아닐까?
만일 정말 내 어린 시절, 저런 추억 전당포가 있었다면 분명히 안 좋은 추억과 기억하기 싫은 추억 모두 가져다 맡겼을 것 같다. 기억에서 사리져 버리면 그 감정을 다시 떠올릴 일은 없을테니 괜찮은 전당포 아닌가. 게다가 돈도 벌고! 다만.. 그 싫고 기억하기 싫은 추억으로 얻은 교훈 또한 얻지 못할거고 때문에 그 싫거나 기억하기 싫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문제다. 물론 어린 나는 이런 부분까진 생각하지 않을테지만. 그저 용돈을 번다는 생각에 하루토처럼 단골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성인이 되기 전, 기억을 찾을까? 찾을만한 기억을 맡기게 될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지만 쉬이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은근 복잡한 문제구나 싶다.

어느 한 해안가 절벽. 그곳은 아이들의 아지트라 여겨져 어른들은 찾지 않는 곳이다. 때문에 마법사의 추억 전당포가 자리잡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물론 어른들이 해안가 절벽을 찾는다 한들, 추억 전당포가 보일리 없다. 마법사가 그렇게 정해두었으니까. 오늘은 형 야마토가 추억을 맡기고 게임기를 산 것을 알게된 하루토가 마법사를 찾아왔다. 한번 해보고 좋았는지 단골이 되어버린 하루토는 툭하면 자신을 혼내는 엄마와의 추억을 맡기고 돈을 받아갔다. 리카는 마법사를 인터뷰 하기 위해 추억전당포를 찾았다. 자신이 상상했던 마법사의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인터뷰 이후 아이들이 추억을 맡기고 돈을 받아가는 것이 못마땅함에도 왠지 추억전당포가 마음에 든 리카는 추억을 맡기지 않으면서도 추억전당포를 빈번하게 드나들게 되었다.
유키나리는 뺑소니를 당한 할머니의 기억을 엿보고 범인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유키나리의 부탁을 거절한다. 잠시 보인 유키나리의 미래가 좋지 않았던 탓이다. 리카는 마법사로부터 유키나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유키나리와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커플이 된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리카. 리카는 우연히 같은반 메이가 학폭을 당하고 있고, 매일 그 괴로운 기억을 맡기러 추억 전당포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가해자들의 약점을 단단히 쥔 리카는 그들과 메이와의 악연을 끊어냈고, 메이와 친구가 된다. 한편, 중학교 입학을 앞둔 하루토는 모처럼 옷을 사고 외식을 하기로 하지만, 엄마와 다투게 된다. 그런데.. 이날이 엄마와의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뛰쳐나간 하루토의 뒤를 쫓아갔던 엄마가 뺑소니 차에 의해 두번이나 치여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은 하루토. 곧바로 돈을 쥐고 추억 전당포를 찾아간다.
마법사가 제일 쓸쓸하고 고독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원히 살며 인간의 감정에 무감각하다고 나오지만,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살다보니 감정이 무뎌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감정을 지닌 아이들의 추억을 맡아주는 전당포를 시작한게 아니었을까? 수많은 감정이 녹아있는 추억들을 보며 무뎌진 감정을 되돌리려 애를 썼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라도 이용할 수 있다면, 불행한 기억들 중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떠올릴 필요가 없는 기억들은 죄다 맡기고 싶다. 그런 추억들은 없어져도 살아가는게 큰 문제가 되진 않을테니까. 정말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 힐링 애니메이션 한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의 소설이었다.
괴롭힘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니까. 한 번 싫어졌다 하면 다른 건 보지도 않고 오히려 폭주할 뿐이야. - p.142
인간의 쇠퇴는 어쩌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 p.166
내가 인간을 재미있어하는 까닭은 서로 마주 보면서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야. 갖가지 오해를 해. - p.210
"진정한 상대를 찾는 법."
"간단하다니요?"
"추억으로 변하지 않는 사람. 그가 운명의 상대야."
"추억으로, 변하지 않는다?"
"'좋아했어'로 변하지 않는 사람. 그 시절에는 좋았는데 하고 여겨지지 않는 상대. 몇 년이 지나도 좋아. 줄곧 현재진행형.
그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 - p.269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