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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슬 수집사, 묘연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3년 8월
평점 :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곳, 대저택 미다스. 이곳은 이슬 집사들의 우두머리 묘연 수집사가 머무는 곳이다. 집사가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지만, 이안은 느닷없이 나타난 할아버지 빽으로 3개월의 단기 집사가 될 자격이 주어졌다. 돈이 없어서 돌아가신 엄마의 장례도 치뤄주지 못해 아무런 희망도 없이 목숨을 끊으려던 참에 나타난 할아버지라는 사람이 3개월만 자신 대신 집사일을 대리해주면 30억을 주겠다는 제안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완전히 믿지도,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던 이안은 할아버지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가 거대한 저택을 보고 놀라고 만다. 하지만 미다스의 주인이라는 아가씨가 자신과 동갑이라는 것, 낮이면 고양이로 변하는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수집, 관리하고 있다는 이슬에 관한 것은 거대한 저택에 대한 놀라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슬 : 사람들이 끝이라 생각한 순간,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후회의 눈물.
루인 : 눈물 '루', 사람 '인'. 눈물을 흘리는 사람.
죽음을 앞둔 이들을 찾아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결국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며 이슬을 수집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숭고했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이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얼결에 집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사건마다 최선을 다해 루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이슬을 수집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이안도 깨닫는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집사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애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분명 30억을 위한 3개월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집사의 일 그 자체에 보람을 느꼈다. 이 뿌듯함을 함께 나눌 사람, 그건 바로 할아버지였지만 이상하게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뒤쫓다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매번 이렇게 죽음과 삶을 마주하게 될 거야. 그 경계선에서 삶을 선택하든, 죽음을 선택하든, 그건 오롯이 루인의 몫이다. 모든 사람을 우리가 살릴 순 없어. 사자들의 업무를 우리가 가로채는 건 저승과 이승의 암묵적인 합의를 깨는 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집사들은 더 이상 이슬 수집 임무를 할 수 없게 된다. - P. 88

천수록의 기록 : 임종 전에 유언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천수 신선이 기록해 둔 것.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밤이슬 수집사, 밤이슬 집사, 루인, 천수 신선, 비운의 구슬 등 독특한 설정과 신선한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이야기 중 천수 신선과 천수록에 관한 부분이 가장 눈에 박혔다. 왜냐하면 나 역시 아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입원한 아빠의 면회도 가보지 못한채 몇일이 흐른 뒤에야 사망선고가 내려진 아빠를 마주해야 했다. 아직 어렸던 우리 자매는 하루 아침에 아빠와 이별을 해야했다. 그래서 만일 정말 천수록이 있다면.. 하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보니 이 부분이 가장 가슴에 남는 부분이 되었다. 실제 있을 법한 사연들 덕분에 공감대 형성과 감정 이입이 쉽게 이루어졌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늦은 저녁 아이들을 재우면서 간단히 훑어봐야지 하고 펼쳤다가 다 읽고 말았던 이 소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