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소철나무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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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00%라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자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양육자가 누구인지, 어떤 양육 환경에 놓여있는지, 어떤 것을 보고 자라느냐는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고 있는 지금, 가장 많이 느끼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내가 만든 환경이 아이에게 얼마나 적합할지 고민하는 것은 부모이기에 당연한 일일거다. 그런데 만일 엄마를 일찍 잃은 아이 양육에 대한 책임감보다 매일 여자를 집에 끌어들이기 바쁜, 통칭 난봉꾼 집에서 아이가 자라야했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그냥 생각해 봤을 때, 보고 자란 것이 그러하니 아이도 똑같이 자랄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면, 반대로 그 모습들에 너무 질려서 어른들을 닮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꼿꼿하고 반듯하게 행동하거나. 주인공 마사유키는 일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여자를 집안에 끌어들이는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다. 13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또한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가며 끌어들이던 두 어른 사이에서 자라야 했지만, 마사유키는 정 반대의 남자로 자랐다. 성실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어엿한 성인으로 말이다. 다만, 환경이 환경이다보니 그만의 공포증을 하나 가지게 되었지만.


마사유키의 직업은 정원사다. 얼굴을 제외한 온 몸에 큰 화장자국을 가지고 있어 움직임에 조금 제약을 받는 그로서는 조금 무리가 되긴해도 적합한 직업인 셈이다. (직업 특성상 한여름에도 긴팔의 유니폼을 입어야 하니까.) 그 몸으로 성실하게 일하며 13년간 부모가 없는 소년 료헤이를 돌보고 있다. 그의 할머니 후미에로부터 모욕에 가까운 굴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료헤이를 돌보는 것은 그만의 속죄였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속죄. 이제 곧 모든 것을 료헤이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마사유키가 1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렸던 일의 준비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료헤이는 자꾸 삐딱하게 굴었고, 이야기는 자꾸 미뤄졌다. 그러다 갑작스레 후미에가 뇌출혈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마사유키는 13년간 계획했던 일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돌봐줄 누군가가 없는 료헤이를 혼자 놔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료헤이가 과거의 사건을 알아버렸다. 료헤이는 온몸으로 마사유키에게 원망을 내뿜는다.


읽으면서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마사유키도 그저 피해자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싶어서 말이다. 그것도 13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결같이.. 반면에 그만큼 우직하고 성실한 그의 모습은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마사유키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사람을 그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다니. 후미에도 어떤 면에선 대단하다. 물론 그녀 입장에서는 마사유키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맞다. 하지만, 진짜 그녀가 원망해야 하는 사람은 마사유키가 아니지 않은가. 가만 생각하니 이래저래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평범하지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채 성장한 료헤이만 빼고. 읽다보니 손에서 놓아지질 않아 새벽내내 읽고 쪽잠을 자고 일어났더랬다. 덕분에 이날 하루가 어마무사하게 피곤했지만, 책을 재미있게 읽고 얻은 피곤함이라 그런지 기분만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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