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의 환희
김은정 지음 / SISO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 국어, 문학 시간에 접하던 시를 나이를 먹고 나서 접하게 되니 새로운 느낌이 든다.

학창시절에 접한 시가 인생의 마지막 시가 될 줄 알았다. 나이를 먹고 시를 다시 접하니 마음이 조금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시에 적힌 글귀가 공감이 가서 그런걸까? 시를 읽는 것이 소설책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와는 다른 섬세하게 감정을 터치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김은정 시인님이 쓴 ‘13월의 환호’라는 시집에 담긴 글은 주로 그리움 혹은 절망,고독에 대한 독백, 그리고 희망과 위로의 감정 등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를 읽다 보니 어떤 풍경들이 머릿속에 시각화되어 떠오르기도 했는데, 자연 속에 우드 느낌의 집 안에서 창밖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그곳에 혼자 앉아 쏟아지는 비와 빗소리를 들으면서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어떤 이의 모습이 떠오르게 한다던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맑은 날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절망스럽고 외로운 감정을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으며 슬픔을 삼키는 아무개의 모습도 그려졌다.

시집에 있는 구절을 곱씹을 때마다 함축적인 표현에서 더 큰 감정을 느끼게 되거나,

머릿속에 시각화되는 경험도 하게 됐는데 아마 이것이 시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유튜브, 인스타 등 소셜미디어가 부흥하는 시기라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것을 선호하고 짧고 빠르게 정보를 볼 수 있는 매체를 선호한다.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 들고, 제공되어지는 정보를 생각없이 보고 끝내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책에서는 상상하는 힘이나 창의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실은 스마트폰을 손에 놓지 않고 릴스나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좋은 정보를 얻고, 실제로 현실에 적용하면서 지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재미와 흥미 위주로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거나 취미 위주로 보는 것 같다.

그 행위에는 창의적인 생각에 상상력을 더하거나 사유하는 힘은 부족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시집은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상상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특정 장면이 연출되고 자연스럽게 상상력을 동원하게 된다. 함축적인 표현이나 새로운 표현에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준다.

시를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를 색다르게 표현한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그런 표현들이 주는 재미가 있는 것 같고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시에서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매력이랄까?

예를 들어, <촉촉한 언어(비)>라는 시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를 ‘빗줄기 그물’이라고 표현한 부분이나 <만추>라는 시에서 ’낙엽‘을 ’겸손볼모의 포로인 듯‘이라고 표현한 것 등 예상하지 못했던 표현으로 인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할까? 갇혀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런 시의 세계에 잠시 한번 빠져 보시기를 바란다.


본문 내용 중 좋았던 내용 일부를 발췌 하였다.

촉촉한 언어(비)

P16

새벽을 지나는

새하얀

빗줄기 그물

‘또닥또닥’

그들만의

다정한 언어로

‘타닥타닥’

초록 잎새 위에

음표를 매달은 듯

은밀히 습기 머금어

잔잔하게 스며드는 그리움

‘두근두근’

보고픔 먼 사람아

‘자작자작’

내 창가에 단비로 다가와

시린 이내 마음도

‘촉촉’ 부드럽게

흠뻑 적시어주오

가을 단상

P20

나의 밤은

무너짐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질 않는다

흘려보낸

배재된 시간들

진실 밖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그에 말미암을 뿐이지라

자조로운 위로에

더 이상

마음을 부리는 건

절망보다 더 지독한 사치

뒤 놓아

텅 빈 마음으로

주륵

비가 내린다

나는 다시

구멍 난 우산을 쓴다

더 이상

절망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희망이라 믿었던

소중한 시간들을 위해

가을…

소리 없이

바래져 간다.

만추

P28

어느새 바래져

길게 드리운 초침의 그림자

감나무 끝에 매달려

‘대롱대롱’

선홍빛으로 나부낀다

무단

획으로 날아드는

날카로운 한 줄 바람에도

‘사그락’

휘몰아 처연스레 구르는 낙엽

그 스산함마저도

더없이

쓸쓸한 고독

의미 부여치 않은

겸손볼모의

포로인 듯

저마다의 몸짓으로

더 깊게

짙어가는 가을은

다 내어준

느긋함을 품고

쌉싸래한 갈빛으로

숙연하게 물들어간다.

용서라는 이름으로

P56

이 소치를

용서하시오

아니,

용서치 마시오

나의 부덕을…

세상의

어느 한 모퉁이에

서 있는지도 모르는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빛바랜 꽃잎으로

훌훌 떨어지면

그뿐인 내가

감히

무엇을 탓할 것이며

그 무엇의 허물을 책망하리오

그건 결국

스스로를 향한

질책이었는지 모를 일이오

용서하시오

마음속 앙금에

지우개를 대어주시오

점차

약해져 갈 나의 기억은

수용의 깊이와

어긋난 믿음

그 옹이진 기억으로

살아질 것이리니…

혹여,

지나는 나의 바람에라도

생채기로 남겨진 마음

용서라는

속죄의 이름을 빌어

조용히

면죄부를 청하여 보는 밤

낡은 별이고픈

내 소박함은

왠지 모를 눈물이 되어

두 뺨으로 흐르고

오늘 달빛은

유난히 밝기도 하구려

마치

번뇌의 구름을 벗어난 듯하니…

한낱

p60

바람

바람일 뿐인 게지

그저

바람일 뿐일 게야

이 모든 것이…

한낱,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치는 세월 입고

무딘 듯

이냥

또 그렇게 가보는 게지

여백의 향기

p64

들꽃처럼

살아져도 좋으리라

화려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소박한 들꽃으로도

무겁지 않은 향기

충분하리니

그리 살아져도

나쁘지 않으리라

들꽃으로 살아간다는 건

열어놓은

마음의 자유

혹여,

비바람에 남루할지라도

변함없는 자리

홀씨로 남아

그만의 향기

여전할 터이니

너른 들판 여백의

넉넉한 마음으로

본연 그대로의

자유로움을 즐기리라

꽃 진 자리

p66

그대

꽃 진 자리 서글퍼 마오

꽃잎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라오

그대

꽃잎 내려온다 서글퍼 마오

화려했던 꽃

저마다의 향기 다하여

열매에게

꽃 진 그 자리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라오

그대

꽃잎 떨구는 향기 서글퍼 마오

꽃 진 그 자리

부푼 열매의 꿈

넘실

춤을 추듯

흥에 겨워 내려오는

기쁨의

가벼운 날갯짓이라오

목마른 희망

p82

깨어있어도

잠들지 않는 흐린 불빛

가슴을 짓누르는

저 무수히 갇힌

희망의 조각들

쉬지 않고

소리 없이 흘러넘쳐

잿빛 하늘 향해

울부짖는다

더 이상 갈 곳 잃은

이 벼랑 끝에서

찢어지듯 절규하는

가련한 희망이여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크게 품어

활짝 열어 제끼거라

삶의 더 이상

정처 모를

이방인의 것이 아니리니

끝끝내

살아 숨 쉬어

시퍼런 환희의

새벽을 맞이하리라

목마른 희망의

환한 웃음을…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깨어있어도

잠들지 않는 흐린 불빛



가슴을 짓누르는



저 무수히 갇힌

희망의 조각들



쉬지 않고

소리 없이 흘러넘쳐



잿빛 하늘 향해

울부짖는다



더 이상 갈 곳 잃은

이 벼랑 끝에서



찢어지듯 절규하는

가련한 희망이여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크게 품어

활짝 열어 제끼거라



삶의 더 이상



정처 모를

이방인의 것이 아니리니



끝끝내

살아 숨 쉬어



시퍼런 환희의

새벽을 맞이하리라



목마른 희망의

환한 웃음을… - P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