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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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요즘 유행하는 스*K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젊은 엄마.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진한 화장. 쇼핑몰에서 마주친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을 저 정도 꾸민다는 '사실' 앞에 두가지 시선이 충돌한다. '매우 부지런하다' 와 '저렇게 꾸밀 시간에 아이랑 눈 한번 더 맞추는게 나은데' 라는 두 가지 상반된 시선의 교차. 내가 느낀 약간 불쾌한 감정은 당연히 두번째에 기인한다. 아름다움이 졸지에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다. 너무 편협한 시각이라고, 그래도 이왕이면 아기 엄마라 할지라도 예쁘게 하고 다니면 좋지 않냐 할 수도 있다.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르게 받아 들이는 것은 인식과 사유의 차이일 것이다.

"암컷은 기본적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을 담당해야 하기 때무에 그렇게 외양을 멋들어지게 꾸밀 수가 없는 법이다."

이 한 줄의 글로 두 아이를 낳아 축처진 내 뱃살, 잃어버린 패션 감각과 파마끼 없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큰 위로의 온천에 추운 몸을 녹인다. 아, 시원해.

 

식당에서 엄마가 밥을 먹기 위해 6살도 안 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들려준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저건 아니야. 차라리 장난감이나 책을 쥐어주면 될텐데, 조금 편하겠다고 저게 무슨 ..." 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도 편하게 밥을 먹긴해야겠지. 왜 아이들에게 안 좋은가 하는 점에서  "눈도 나빠지고 아무래도 안 좋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더 명확한 이유와 근거로 판단이 가능해진다! 양기 덩어리인 아기로부터 스마트폰이 양기를 몽땅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아기는 움직여야 사는 존재인데 정지상태로 한 곳만 멍하게 응시한다. 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인문학은 마치 만병통치약  같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대한 학문이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역시 고미숙! 이라고 감탄했다. 이 책에는 통쾌, 상쾌, 유쾌가 있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든다. 특히 재미있게 읽은 장은 '몸과 여성'이다. 무의식적인 교감능력을 가지고 있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통해 우주적 생성의 과정에 참여하는, 원초적으로 생명의 매트릭스와 연동되어 있는 존재. 바로 여성이다. 현대 사회는 여성에게 자유, 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는 혜택도 줬지만 역설적이게도 원시적이고 위대한 여성의 힘을 점점 약화시키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지닌 계절감, 자연에 대한 지식은 가방끈 더 길다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지혜의 보고다. 그렇지 못한 자신을 보며 두려움마져 느낀다. 세월이 조금이라도 이 간극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 참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럼 아기를 업게 되면? 왠지 촌스럽고 덜떨어져 보인다. 그렇다. 포인트는 거기에 있었다. 미적 욕구가 모성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생명의 이치상 아기는 무조건 업어야 한다."

아기띠를 선호하는 우리 어머니 세대를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아파트에도 손자 손주를 봐주시는 부모님이 많다. 대부분은 아이를 포대기로 업는다. 젊은 엄마가 아이를 업고 쇼핑몰이나 백화점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나는 주로 업고 다녔는데 솔직히 폼이 안나긴 했다. 그래도 한번 업어보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알게 된다. 더군다나 생명의 이치상 아기는 무조건 업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역시 내가 잘했어 하는 안도감마저 든다. 스*K 유모차가 훨씬 폼나지만 젊은 엄마들은 자본주의와 디지털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아이를 원초적 생명으로써 마주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 인상깊은 구절 > 

P.14 아기들에게 스마트폰을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빛의 명멸을 탐닉하느라 주변의 모든 것에 무관심해진다. 스마트폰이 양기를 몽땅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건 혁신이 아니라, 중독이다. 생명이 원하는 건 오직 순환과 운동뿐이다.

P.20 TV 프로그램에 나와 전신성형을 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못생겨서 무시당했다고. 그래서 자신감을 얻고 싶었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자신을 무시한 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이미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데 남들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

P.22 "요절할 사람은 장수하게 하고 장수할 사람은 신선이 되게 한다" 이것이 <동의보감>의 의학적 목표다

P.24 "우리 몸의 각종 장기와 조직 속에 있는 탄소, 뼈 안에 있는 칼슘, 피에 들어 있는 철분, 몸의 수분 속에 들어 있는 산소 등과 같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원소들은 모두 별에서 만들어졌다." - 하인츠 오버훔머, <4시간만에 끝내는 우주의 모든 것>

P.29 거짓말과 음모는 단지 윤리적 사항이 아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일이다. 당연히 뇌파도 교란된다. 거짓말 탐지기가 가능한 것도 그 때문이다. .. 소위 '운명적 사랑'을 하려면 '정, 기, 신'이 엄청 소모될뿐더러, 무의식까지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P.34 공부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 질을 결정짓는 건 집중력이고, 집중력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몸이다.

P.37 중년 이후에도 젊게 보인다는 건 연륜 속에 활력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P.37 자본주의는 오직 '청춘'만을 삶의 정점으로 간주한다.

P.44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서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을 불사할 정도의 치열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주 멀리까지 도보여행을 하거나 숲에서 명상을 하거나 혹은 장기간 단식을 하거나

P.44 여성들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교감능력을 지니고 있으면, 또 그것은 일상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감으로써 얼마든지 구편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자체가 훌륭한 통과의례에 다른 아니라며 말이다. - <대칭성 인류학>

P.44 여성에게 일상 자체가 자연이고, 곧 '자연의 비밀지'를 터득하는 과정이다. 일본의 애니매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는 미래의 문명을 구할 두 여성이 나온다.

P.48 마이클 잭슨이나 휘트니 휴스턴 등 세계쩍인 대스타들은 대체 왜 그토록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을까?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데도.

P.51 모든 생물체는 수컷이 더 화려하고 아름답자. 숫자자의 갈기, 공작새의 깃털 등을 떠올리면 된다. 암컷은 기본적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외양을 멋들어지게 꾸밀 수가 없는 법이다.

P.51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몸이 상품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하다. 하지만, 여성들이 남성들의 신체를 탐닉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P.52 대신 지적 영역과 직업의 영역에서 여성들이 훨씬 더 유리해지고 있다. 요컨대, 우리 시대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남성의 미적 잠재력의 폭발로 요약될 수 있겠다.

P.53 청춘 남녀가 짝짓기를 할 때의 기준은 무엇인가? 외모든 직업이든 무조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해야 한다.

P.58 상품과 서비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성성 혹은 생명의 주권을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

P.64 폐경이란 실로 축복이다. 임신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P.64 왜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성적욕구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 또 삶의 성취나 자존감의 기준을 왜 대부분 '남성의 구애'라는 틀에 묶어 두는 것일까.

P.64 원시문화에서 폐경기의 여성들은 '지혜의 피'를 보유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월경을 하는 여성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여겨졌다. ..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런 식의 문화는 사라지고 말았다. 여성성은 오직 가족과 성욕으로 '영토화'되었다. 그와 더불어 여성의 지혜는 침묵, 봉쇄되어 버렸다.

P.70 <해품달>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 역시 작품 자체가 아니라 남자주인공의 이미지였다. 부와 권력, 말끔한 외모에 지독한 순정, 그리고 남성적 카리스마까지.

P.70 학교에선 제댜로 된 성교육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금지 아니면 회피다. 당연히 대중문화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P.83 남성은 서열과 위계에 민첩하고, 여성은 공감과 유대에 민감하다. .. 디지털 문명이 여성성과 '궁합이 더 잘 맞는'이유도 거기에 있다. 디지털은 유동한다.

P.84 남성의 결단과 용기의 저력은 다름 아닌 지성이다. 지성이란 지신을 둘러싼 시공간적 배치, 그리고 존재의 좌표를 읽어 내는 명철함이다. .. 남성이 지적 탐구에 더 장기를 발휘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P.92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느닷없이 누군가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알 수 없는 힘, 그것은 아마도 자연(혹은 무의식)일 것이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다.

P.98 여성들은 왜 모든 시선이 아이로 향하는 것일까? 왜 가족(혹은 모성)이라는 프레임을 멋어나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을까?

P.116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 참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럼 아기를 업게 되면? 왠지 촌스럽고 덜떨어져 보인다. 그렇다. 포인트는 거기에 있었다. 미적 욕구가 모성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생명의 이치상 아기는 무조건 업어야 한다.

P.123 우리 사회에는 노년과 청년이 허심탄회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사회 전체가 오직 청년문화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데 있다.

P.124 노년은 그저 복지와 부양의 대상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그 지혜와 연륜을 순환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대중문화는 한술 더 떠 성형과 연애를 부추기면서 노인들에게 젊음을 흉내내도록 유도한다.

P.128 지혜의 전령사 혹은 동물해방운동가, 걷기의 달인 등을 꿈꾸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결국 꿈은 생명의 활동이 아니라 자본의 명령일 뿐이다.

P.130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 보니 열매가 달렸을 뿐이다. 삶 또한 그렇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 보니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뿐이다.

P.133 미국IT업계 엘리트들은 자녀들을 인터넷이 전혀 안 통하는 학교로 보낸다고 한다.

P.138 모든 고전은 필수적으로 낭송을 전제로 한다. 하여, 묵독을 통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P.149 우정이란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모든 능력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치열한 훈련이 필요하다.

P.162 "일본에 도서관 시찰을 갔는데, 겉에서 보면 아무 특징이 없는 거예요. 근데, 딱 하나 다른 게 거기에선 어른이건 아이건 책을 스스로 정리하더라고요. 몹시 부러웠죠."

P.175 중년남성들은 조직과 지위를 벗어나 타자들과 허심탄회하게 교류하는 데 몹시 서툴다

P.178 예전에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어떻게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어느 정도 생계 유지가 가능하다. 그래서 점점 더 고립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이것도 참 시대적 역설이다.

P.178 둘리네 집은 외계인에 동물까지 그야말로 타자들의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늘 활력이 넘친다.

P.180 직업이란 단지 경제활동일 뿐 아니라, 생명의 정기를 사회적으로 표현하고 순환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단순히 돈과 지위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가치들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P.181 현대과학의 전언에 따르면,우주의 에너지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물질은 단지 4퍼센트에 불과하다. 24퍼센트는 암흑물질이란다

P.206 제갈공명은 초야에서 책을 읽다가 유비를 만나 세상으로 나왔다. 이후 '얻지 못할 것이 없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지위'에 올랐건만 죽을 때까지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

P.211 전국 곳곳에 도서관과 문화센터, 시민공원 등이 즐비하다. 이 시설들을 잘 활용하면 최고의 문화생활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요즘은 이런 곳에서 인문학 특강도 자주 열린다. 역시 거의 무료다.

P.225 더 놀라운 건 이렇게 신비와 미신 '사이'에 명리학을 묶어 둔 뒤 그 핵심과 정수는 상류계급이 독점해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재벌이나 정치가들 중에 역술가나 풍수가의 상담을 받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

P.233 삶의 주권이란 법적, 경제적 권리만이 아니라, 철학과 사상의 자유까지를 포함한다. 왜 그런가? 철학을 하고 사유를 해야만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234 인생의 진리, 위대한 현자들의 가르침, 무의식에 대한 탐구, 별들의 탄생과 죽음 등 이를테면 '앎의 대향연'이 펼쳐진 셈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 돈과 정규직이다. 생각할 권리가 아니라 평생 하나의 직업에 묶여 있고자 하는 노예의 권리, 쇼핑과 게임 등을 탐할 수 있는 중독자의 권리만을 확보하고자 한다.

P.240 자아는 물론 가족, 혈연, 국가 등으로 이루어진 표상의 장막을 벗어나 그야말로 우주적 인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전의 바다'에 접속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왜 하필 고전인가? 거기에는 인생과 자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극(상생과 상극)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P.242 '대중지성'이란 지식인이 대중의 흐름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지성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읽고 암기하고 베끼고 한 다음엔 반드시 스스로 글을 써야 한다.

P.246 스펙이 아무리 빵빵하다 한들 기본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거꾸로 기본기만 제대로 익혀도 어디서건 거뜬히 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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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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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서 내 삶을 바꿔주는 책은 의외로 적다. 다독에 대한 환상을 도끼로 깨줘서 고마운 책. 책을 왜 읽어야하는지 다시 한번 환기를 시켜주는 좋은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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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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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완전 다시 읽는 기분. 그럼 전에 내가 했던 독서는 도대체 뭔가. 다행히 두번 읽으니 내용이 머리에 쏙쏙 잘 박힌다. 좋은 문장, 좋은 느낌이 내가 되는 기분이다. 이 책에서도 말한다. 다독보다는 일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다독 콤플렉스에 걸리면 얇은 책, 쉬운 책을 골라 읽으며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게 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쓸데없는가. 말그대로 자랑하는 책 읽기에 지나지 않는다.

 

창의력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이라고 말한다. 일상이 일상이지 않게 되려면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느끼는 능력이 창이력의 원천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다. 유심히 생각하면서 모든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필수다.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어른과 무척 다르다. 같은 상황에서 어른들은 대부분 수십번 되풀이 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저 식상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처음이라 무척 신선하다. 아이에게 같은 책을 10번 이상 읽어주는 엄마는 무척 괴롭지만 처음 책을 접하는 아이는 그 10번동안 매번 다른 정보를 머리에 입력한다. 항상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더할나위 없지만 우리 처지는 그리 산뜻하지 않다.

 

환경과 시간의 제약이 있다면 관점을 바꾸어 대신 나 자신을 바꾸는 거다. 나의 시선을 바꾸고 적어도 주말이나 시간이 날때마다 일상의 즐거움과 신선하고 건전한 자극을 늘려보자.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바다를 본 것 같은 그런 새롭고 흔하지 않은 경험을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읽기에서 이런 새로움들을 찾아냈다.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등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아름다운 문장을 선물받고 있다. 다른 방법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책을 통한 창의력 향상 방법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책은 무척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일견 별다름이 없어보이기도 하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까.

먼저 저자의 브랜드파워다. 광고계에서 이룬 많은 성과와 출간된 전작들에서 이미 작가로서 흥행보증수표같은 입지를 다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의력 도구로써 '책'을 다뤘다는 점이다. 뇌과학이 어쩌고 창의력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좋은 작품과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창하고 생경한 창의력 이론들보다 얼마나 마음에 착 잘 달라붙는지. 책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들면 인생까지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 겨우 몇 그램짜리 종이뭉치가 말이다. 요즘처럼 책을 구하기 쉬운 시대가 어디 있겠는가. 외국 원서도 인터넷으로 뚝딱거리면 몇 일 후 내 손에 들어오는 이 신기한 세상. 이렇게 손에 넣기 쉬운 책이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니, 더군다나 저자가 이런 책이 좋아요 하고 콕콕 찍어 준다니, 호기심에서라도 사서 읽어보게 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의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이 책을 읽고 얻은 바가 많다. 먼저 다독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는 것,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야 겠다는 다짐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좋은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가야겠다. 줄도 치고 베껴쓰기도 하면서. 그리고 생각하고 음미도 하면서.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무척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 인상적인 대목 > 

P.023 사람들은 저에게 창의력이 무엇이냐고 자주 묻는데, 저는 이런 통찰이 창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P.025 소설가 김훈에 따르면 글쓰기는 자연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말 걸기라고 합니다.

P.034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해 몇 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P.037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가면서 지식이 계속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식을 얻는 대신 가능성을 내주는 것이죠. 지식을 쌓으면서 놓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을 우리는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P.045 결국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대처 능력이 커지는 것이죠.

P.047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P.051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 있을 시간이 삼 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삼 일 있다가 떠난다는 걸 아니까 모든 게 난리인 겁니다.

P.051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합니다. 감동을 잘 맏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P.087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하는 재능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P.092 나의 생각과 같은 접점을 발견하는 기쁨도 독서의 기쁨 중 하나입니다.

P.105 사랑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싫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안 보이는 흠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랑은 결국 그렇게 소진되어가는 것이죠.

P.116 다른 영역에서돠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알랭 드 보통

P.120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P.127 죽지 못해 산다면서 평생을 놓치고 있으니까 삶을 낭비하지 말고 삶에 대해 감사해하며 현재의 순간순간을 모두 사랑하라는 애기를 알랭 드 보통은 프루스트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P.129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 카프카

P.132 잠재적으로 모든 것이 예술의 풍부한 소재이며,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만큼이나 비누 광고에서도 귀중한 발견을 할 수 있다.

P.139 세상의 흐름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내 인생을 온전하게 살고 싶어요. 오늘의 날씨, 해가 뜨고 오고 바람이 부는 것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사람과의 만남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해요.

P.149 "자연은 한 번도 예술을 동경한 적이 없다"라고 누가 얘기했다는데, 꼭 맞는 말일 것 같아요. 예술을 동경하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예술적인 게 자연이니까요.

P.156 말 그대로 진짜 무욕만 한 탐욕이 없지 않습니까? 무욕이야말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대단한 것이죠. 가장 대단한 욕심이 무욕인 것 같아요.

P.180 우리는 그 모든 게 덧없는 기쁨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그 기쁨에 젖어듭니다. ... 그것이 영워하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알지만 비관하지 않을 수 있어요. 순간을 지배하는 기쁨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이내 잊어버리고 영원을 믿는 것이죠.

P.181 그러니까 방법은 하나, 순간순간을 온전히 씹어먹는 것뿐이예요. 지중해에서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없고 나는 결국 죽을 것이니 계속 슬퍼하는 비극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P.182 많은 사람들이 꿈의 창문을 열지 못하고 찬란하 순간들을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곧 사라져갈 것이라는 걸 까맣게 잊은 채

P.190 그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엑상프로방스의 사람들은 파리를 동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곁가지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비극은 모두가 서울을 동경하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만 해도 각 도시마다 자부심이 있어서 다른 도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P.192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P.207 거짓말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느낀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늘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삶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뫼르소는 그걸 거부하는 사람, 그래서 이방인입니다.

P.240 만약 유럽 여행을 해본 분이라면 쉽게 느낄 텐데 그곳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요. 우리처럼 전후 60년간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발로 뛰는 분주함이 없어요. 그러너까 어쩌다 어깨를 부딪히면 돌아보고 가볍게 "미안합니다"를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전쟁 없이 1백 년 넘게 산 사람들이니까요.

P.291 인생의 봄날이 있다. 그 봄날에 만난 하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 모두를 담고 있는 한 사람이다

P.330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가 "저렇게 여백을 비우는 건 용기다"라고 말하더군요. 서양의 그림은 여백을 비우지 못해요. 어떻게든 빼곡하게 채우죠. 그림이 없으면 색으로라도

P.332 단순하다는 것은, 특히 그림이 단순하다는 것은 핵심적이라는 말과 통한다.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은 종종 노년에 다다라서야 얻어지곤 한다. - 오주석 <그림 속에 노닐다>

P.339 늦여름의 어느 날 오후 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 프리초프 카프라 기의 흐름에 대해서

P.346 비가 오는 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면서 짜증을 낼 것이냐, 또 다른 하나는 비를 맞고 싱그럽게 올라오는 은행나무 잎을 보면서 삶의 환희를 느낄 것이냐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P.347 다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이 읽었어도 불행한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안나 카레리나>에서 톨스토이가 말할 것처럼 기계적인 지식만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니 다독 콤플렞스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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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술관 예술산책 - 크리에이티브 여행가를 위한
명로진 지음, 이경국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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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본 문화에 대한 책이나 일본 여행 에세이 등을 즐겨 읽는다.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도 많지만 일본에서 창조적인 영감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 창의력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나의 발길은 예술, 미술에 다가가 있다. 예술하고는 무관한 삶을 살아와 무척 당황스럽지만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지려 한다. 그래서 생각한 한 가지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많이 가봐야겠다는 생각이었고, 언젠가 아이들과 일본 박물관, 미술관 일주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1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보고 "명로진 작가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이라는 반가움에 얼른 집어 들었다.

 

그냥 도쿄 미술관 예술 산책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여행가를 위한' 이라는 수식어가 달려있다. 어디를 가나 크리에이티브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지금, 과연 이 창조성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추어적인 견해지만 찾은 답 중 하나는 '도쿄에는 창조적인 영감을 줄 만한 소재가 많다'는 것이다. 꼭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여행만으로도 창조적인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이 일본, 그 중에서도 도쿄다. 저자의 말처럼 한국에 오면 이런 영감이 팍팍 솟아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한 일본인 친구는 "한국은 편의점만 가도 볼 것이 많다"라는 말을 했으니 그 들이 우리 박물관이나 문화, 여행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느낄 것이라 상상이 가지 않는가? 예술은, 창조성은 새로운 것 낯설은 것을 마주했을 때 퐁퐁 샘물처럼 솟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조금 더 깊이 창조성에 대해 파고들었으면 하는 점이다. 읽는 재미는 훌륭하다. 워낙 잘 읽히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아는 작가기 때문이다. 글 솜씨는 무척 부러웠지만 컨텐츠적인 면은 조금 아쉬웠다. 가볍게 도쿄 미술관을 산책하는 기분을 내려면 읽는 동안 충분히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것을 원한다면 더 딱딱한 책을 읽어야겠지? 화창한 일요일, 도쿄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낼 수 있어 읽는 동안 행복했다. 아쉬운 부분은 후속작에서 기대하면 될까? 창조성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인상 깊은 구절> 

* 아마 도쿄 사람이 서울이나 부산에 온다면 새롭고 창조적인 영감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울 사람이면서 서울에서 반짝이는 힌트를 얻지 목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울에 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사는 이곳을 떠나는 순간, 우리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다만, 도쿄는 창조적이면서도 선진적이고 동시에 개방적이다. 이 세 가기 요소를 모두 갖춘 도시로 아시아에서 도쿄를 따라갈 만한 곳은 없다.

P.51 조직에 매몰되면 그 건축가는 이미 끝난 것이다 - 안도 다다오

P.52 네트워크에 집착할수록 크리에이티브에서 멀어진다.

P.52 작가는 혼자 밥 먹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실 작가, 특히 소설가에게는 친구를 만나 술 마시고 어울려 다니고 할 시간이 없다. 자료 찾고, 책을 읽고, 취재를 준비하고 여행을 떠나고, 인터뷰를 하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소설가 김탁환

P.53 안도가 30~40대 시절에는 부하 직원의 빰을 때리고 발길질을 한 적도 있다. 안도가 참지 못하는 것은 디자인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똑똑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는 제자들의 부주의. 태만함, 치밀하지 못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 "놀 것 다 놀고, 잘 것 다 자면서 무슨 크리에이티브냐!"

P.62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크리에이티브는 달아난다. 단체에 충실할수록 크리에이티브로부터는 멀어진다. 보스에 충성할수록 크리에이티브는 줄어든다.

P.86 오카모토 다로는 '예술은 폭발'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이 말은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라는 말만큼이나 신선하다.

P.94 과학과 산업은 발달했지만 우리는 질서와 규율에 묶여 빈곤한 일상을 보내는 왜소한 현대인일 뿐

P.109 곰브리치가 그의 저서에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다른 눈으로 세계를 보게 도와준 두 가지 요소는 사진기술과 일본 채색 판화'라고 할 정도였다.

P.150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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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 전2권 - 규슈+아스카, 나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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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읽으니 더 재미있습니다. 교토편은 적어도 두권으로 나온다니 너무 기대됩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한국을 바라보자는 얼마전 강연회 말씀에 깊이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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