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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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요즘 유행하는 스*K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젊은 엄마.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진한 화장. 쇼핑몰에서 마주친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을 저 정도 꾸민다는 '사실' 앞에 두가지 시선이 충돌한다. '매우 부지런하다' 와 '저렇게 꾸밀 시간에 아이랑 눈 한번 더 맞추는게 나은데' 라는 두 가지 상반된 시선의 교차. 내가 느낀 약간 불쾌한 감정은 당연히 두번째에 기인한다. 아름다움이 졸지에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다. 너무 편협한 시각이라고, 그래도 이왕이면 아기 엄마라 할지라도 예쁘게 하고 다니면 좋지 않냐 할 수도 있다.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르게 받아 들이는 것은 인식과 사유의 차이일 것이다.

"암컷은 기본적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을 담당해야 하기 때무에 그렇게 외양을 멋들어지게 꾸밀 수가 없는 법이다."

이 한 줄의 글로 두 아이를 낳아 축처진 내 뱃살, 잃어버린 패션 감각과 파마끼 없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큰 위로의 온천에 추운 몸을 녹인다. 아, 시원해.

 

식당에서 엄마가 밥을 먹기 위해 6살도 안 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들려준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저건 아니야. 차라리 장난감이나 책을 쥐어주면 될텐데, 조금 편하겠다고 저게 무슨 ..." 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도 편하게 밥을 먹긴해야겠지. 왜 아이들에게 안 좋은가 하는 점에서  "눈도 나빠지고 아무래도 안 좋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더 명확한 이유와 근거로 판단이 가능해진다! 양기 덩어리인 아기로부터 스마트폰이 양기를 몽땅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아기는 움직여야 사는 존재인데 정지상태로 한 곳만 멍하게 응시한다. 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인문학은 마치 만병통치약  같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대한 학문이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역시 고미숙! 이라고 감탄했다. 이 책에는 통쾌, 상쾌, 유쾌가 있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든다. 특히 재미있게 읽은 장은 '몸과 여성'이다. 무의식적인 교감능력을 가지고 있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통해 우주적 생성의 과정에 참여하는, 원초적으로 생명의 매트릭스와 연동되어 있는 존재. 바로 여성이다. 현대 사회는 여성에게 자유, 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는 혜택도 줬지만 역설적이게도 원시적이고 위대한 여성의 힘을 점점 약화시키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지닌 계절감, 자연에 대한 지식은 가방끈 더 길다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지혜의 보고다. 그렇지 못한 자신을 보며 두려움마져 느낀다. 세월이 조금이라도 이 간극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 참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럼 아기를 업게 되면? 왠지 촌스럽고 덜떨어져 보인다. 그렇다. 포인트는 거기에 있었다. 미적 욕구가 모성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생명의 이치상 아기는 무조건 업어야 한다."

아기띠를 선호하는 우리 어머니 세대를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아파트에도 손자 손주를 봐주시는 부모님이 많다. 대부분은 아이를 포대기로 업는다. 젊은 엄마가 아이를 업고 쇼핑몰이나 백화점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나는 주로 업고 다녔는데 솔직히 폼이 안나긴 했다. 그래도 한번 업어보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알게 된다. 더군다나 생명의 이치상 아기는 무조건 업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역시 내가 잘했어 하는 안도감마저 든다. 스*K 유모차가 훨씬 폼나지만 젊은 엄마들은 자본주의와 디지털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아이를 원초적 생명으로써 마주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 인상깊은 구절 > 

P.14 아기들에게 스마트폰을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빛의 명멸을 탐닉하느라 주변의 모든 것에 무관심해진다. 스마트폰이 양기를 몽땅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건 혁신이 아니라, 중독이다. 생명이 원하는 건 오직 순환과 운동뿐이다.

P.20 TV 프로그램에 나와 전신성형을 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못생겨서 무시당했다고. 그래서 자신감을 얻고 싶었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자신을 무시한 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이미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데 남들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

P.22 "요절할 사람은 장수하게 하고 장수할 사람은 신선이 되게 한다" 이것이 <동의보감>의 의학적 목표다

P.24 "우리 몸의 각종 장기와 조직 속에 있는 탄소, 뼈 안에 있는 칼슘, 피에 들어 있는 철분, 몸의 수분 속에 들어 있는 산소 등과 같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원소들은 모두 별에서 만들어졌다." - 하인츠 오버훔머, <4시간만에 끝내는 우주의 모든 것>

P.29 거짓말과 음모는 단지 윤리적 사항이 아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일이다. 당연히 뇌파도 교란된다. 거짓말 탐지기가 가능한 것도 그 때문이다. .. 소위 '운명적 사랑'을 하려면 '정, 기, 신'이 엄청 소모될뿐더러, 무의식까지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P.34 공부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 질을 결정짓는 건 집중력이고, 집중력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몸이다.

P.37 중년 이후에도 젊게 보인다는 건 연륜 속에 활력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P.37 자본주의는 오직 '청춘'만을 삶의 정점으로 간주한다.

P.44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서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을 불사할 정도의 치열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주 멀리까지 도보여행을 하거나 숲에서 명상을 하거나 혹은 장기간 단식을 하거나

P.44 여성들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교감능력을 지니고 있으면, 또 그것은 일상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감으로써 얼마든지 구편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자체가 훌륭한 통과의례에 다른 아니라며 말이다. - <대칭성 인류학>

P.44 여성에게 일상 자체가 자연이고, 곧 '자연의 비밀지'를 터득하는 과정이다. 일본의 애니매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는 미래의 문명을 구할 두 여성이 나온다.

P.48 마이클 잭슨이나 휘트니 휴스턴 등 세계쩍인 대스타들은 대체 왜 그토록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을까?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데도.

P.51 모든 생물체는 수컷이 더 화려하고 아름답자. 숫자자의 갈기, 공작새의 깃털 등을 떠올리면 된다. 암컷은 기본적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외양을 멋들어지게 꾸밀 수가 없는 법이다.

P.51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몸이 상품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하다. 하지만, 여성들이 남성들의 신체를 탐닉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P.52 대신 지적 영역과 직업의 영역에서 여성들이 훨씬 더 유리해지고 있다. 요컨대, 우리 시대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남성의 미적 잠재력의 폭발로 요약될 수 있겠다.

P.53 청춘 남녀가 짝짓기를 할 때의 기준은 무엇인가? 외모든 직업이든 무조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해야 한다.

P.58 상품과 서비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성성 혹은 생명의 주권을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

P.64 폐경이란 실로 축복이다. 임신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P.64 왜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성적욕구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 또 삶의 성취나 자존감의 기준을 왜 대부분 '남성의 구애'라는 틀에 묶어 두는 것일까.

P.64 원시문화에서 폐경기의 여성들은 '지혜의 피'를 보유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월경을 하는 여성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닌다고 여겨졌다. ..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런 식의 문화는 사라지고 말았다. 여성성은 오직 가족과 성욕으로 '영토화'되었다. 그와 더불어 여성의 지혜는 침묵, 봉쇄되어 버렸다.

P.70 <해품달>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 역시 작품 자체가 아니라 남자주인공의 이미지였다. 부와 권력, 말끔한 외모에 지독한 순정, 그리고 남성적 카리스마까지.

P.70 학교에선 제댜로 된 성교육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금지 아니면 회피다. 당연히 대중문화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P.83 남성은 서열과 위계에 민첩하고, 여성은 공감과 유대에 민감하다. .. 디지털 문명이 여성성과 '궁합이 더 잘 맞는'이유도 거기에 있다. 디지털은 유동한다.

P.84 남성의 결단과 용기의 저력은 다름 아닌 지성이다. 지성이란 지신을 둘러싼 시공간적 배치, 그리고 존재의 좌표를 읽어 내는 명철함이다. .. 남성이 지적 탐구에 더 장기를 발휘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P.92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느닷없이 누군가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알 수 없는 힘, 그것은 아마도 자연(혹은 무의식)일 것이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네 안에 너를 멸망시킬 태풍"이다.

P.98 여성들은 왜 모든 시선이 아이로 향하는 것일까? 왜 가족(혹은 모성)이라는 프레임을 멋어나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을까?

P.116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 참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럼 아기를 업게 되면? 왠지 촌스럽고 덜떨어져 보인다. 그렇다. 포인트는 거기에 있었다. 미적 욕구가 모성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생명의 이치상 아기는 무조건 업어야 한다.

P.123 우리 사회에는 노년과 청년이 허심탄회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사회 전체가 오직 청년문화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데 있다.

P.124 노년은 그저 복지와 부양의 대상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그 지혜와 연륜을 순환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대중문화는 한술 더 떠 성형과 연애를 부추기면서 노인들에게 젊음을 흉내내도록 유도한다.

P.128 지혜의 전령사 혹은 동물해방운동가, 걷기의 달인 등을 꿈꾸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결국 꿈은 생명의 활동이 아니라 자본의 명령일 뿐이다.

P.130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 보니 열매가 달렸을 뿐이다. 삶 또한 그렇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 보니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뿐이다.

P.133 미국IT업계 엘리트들은 자녀들을 인터넷이 전혀 안 통하는 학교로 보낸다고 한다.

P.138 모든 고전은 필수적으로 낭송을 전제로 한다. 하여, 묵독을 통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P.149 우정이란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모든 능력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치열한 훈련이 필요하다.

P.162 "일본에 도서관 시찰을 갔는데, 겉에서 보면 아무 특징이 없는 거예요. 근데, 딱 하나 다른 게 거기에선 어른이건 아이건 책을 스스로 정리하더라고요. 몹시 부러웠죠."

P.175 중년남성들은 조직과 지위를 벗어나 타자들과 허심탄회하게 교류하는 데 몹시 서툴다

P.178 예전에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어떻게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어느 정도 생계 유지가 가능하다. 그래서 점점 더 고립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이것도 참 시대적 역설이다.

P.178 둘리네 집은 외계인에 동물까지 그야말로 타자들의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늘 활력이 넘친다.

P.180 직업이란 단지 경제활동일 뿐 아니라, 생명의 정기를 사회적으로 표현하고 순환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단순히 돈과 지위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가치들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P.181 현대과학의 전언에 따르면,우주의 에너지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물질은 단지 4퍼센트에 불과하다. 24퍼센트는 암흑물질이란다

P.206 제갈공명은 초야에서 책을 읽다가 유비를 만나 세상으로 나왔다. 이후 '얻지 못할 것이 없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지위'에 올랐건만 죽을 때까지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

P.211 전국 곳곳에 도서관과 문화센터, 시민공원 등이 즐비하다. 이 시설들을 잘 활용하면 최고의 문화생활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요즘은 이런 곳에서 인문학 특강도 자주 열린다. 역시 거의 무료다.

P.225 더 놀라운 건 이렇게 신비와 미신 '사이'에 명리학을 묶어 둔 뒤 그 핵심과 정수는 상류계급이 독점해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재벌이나 정치가들 중에 역술가나 풍수가의 상담을 받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

P.233 삶의 주권이란 법적, 경제적 권리만이 아니라, 철학과 사상의 자유까지를 포함한다. 왜 그런가? 철학을 하고 사유를 해야만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234 인생의 진리, 위대한 현자들의 가르침, 무의식에 대한 탐구, 별들의 탄생과 죽음 등 이를테면 '앎의 대향연'이 펼쳐진 셈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 돈과 정규직이다. 생각할 권리가 아니라 평생 하나의 직업에 묶여 있고자 하는 노예의 권리, 쇼핑과 게임 등을 탐할 수 있는 중독자의 권리만을 확보하고자 한다.

P.240 자아는 물론 가족, 혈연, 국가 등으로 이루어진 표상의 장막을 벗어나 그야말로 우주적 인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전의 바다'에 접속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왜 하필 고전인가? 거기에는 인생과 자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극(상생과 상극)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P.242 '대중지성'이란 지식인이 대중의 흐름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지성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읽고 암기하고 베끼고 한 다음엔 반드시 스스로 글을 써야 한다.

P.246 스펙이 아무리 빵빵하다 한들 기본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거꾸로 기본기만 제대로 익혀도 어디서건 거뜬히 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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