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완전 다시 읽는 기분. 그럼 전에 내가 했던 독서는 도대체 뭔가. 다행히 두번 읽으니 내용이 머리에 쏙쏙 잘 박힌다. 좋은 문장, 좋은 느낌이 내가 되는 기분이다. 이 책에서도 말한다. 다독보다는 일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다독 콤플렉스에 걸리면 얇은 책, 쉬운 책을 골라 읽으며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게 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얼마나 쓸데없는가. 말그대로 자랑하는 책 읽기에 지나지 않는다.
창의력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이라고 말한다. 일상이 일상이지 않게 되려면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느끼는 능력이 창이력의 원천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다. 유심히 생각하면서 모든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필수다.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어른과 무척 다르다. 같은 상황에서 어른들은 대부분 수십번 되풀이 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저 식상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처음이라 무척 신선하다. 아이에게 같은 책을 10번 이상 읽어주는 엄마는 무척 괴롭지만 처음 책을 접하는 아이는 그 10번동안 매번 다른 정보를 머리에 입력한다. 항상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더할나위 없지만 우리 처지는 그리 산뜻하지 않다.
환경과 시간의 제약이 있다면 관점을 바꾸어 대신 나 자신을 바꾸는 거다. 나의 시선을 바꾸고 적어도 주말이나 시간이 날때마다 일상의 즐거움과 신선하고 건전한 자극을 늘려보자.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바다를 본 것 같은 그런 새롭고 흔하지 않은 경험을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읽기에서 이런 새로움들을 찾아냈다.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등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아름다운 문장을 선물받고 있다. 다른 방법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책을 통한 창의력 향상 방법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책은 무척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일견 별다름이 없어보이기도 하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까.
먼저 저자의 브랜드파워다. 광고계에서 이룬 많은 성과와 출간된 전작들에서 이미 작가로서 흥행보증수표같은 입지를 다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의력 도구로써 '책'을 다뤘다는 점이다. 뇌과학이 어쩌고 창의력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좋은 작품과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창하고 생경한 창의력 이론들보다 얼마나 마음에 착 잘 달라붙는지. 책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들면 인생까지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 겨우 몇 그램짜리 종이뭉치가 말이다. 요즘처럼 책을 구하기 쉬운 시대가 어디 있겠는가. 외국 원서도 인터넷으로 뚝딱거리면 몇 일 후 내 손에 들어오는 이 신기한 세상. 이렇게 손에 넣기 쉬운 책이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니, 더군다나 저자가 이런 책이 좋아요 하고 콕콕 찍어 준다니, 호기심에서라도 사서 읽어보게 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의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이 책을 읽고 얻은 바가 많다. 먼저 다독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는 것,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야 겠다는 다짐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좋은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가야겠다. 줄도 치고 베껴쓰기도 하면서. 그리고 생각하고 음미도 하면서.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무척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 인상적인 대목 >
P.023 사람들은 저에게 창의력이 무엇이냐고 자주 묻는데, 저는 이런 통찰이 창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P.025 소설가 김훈에 따르면 글쓰기는 자연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말 걸기라고 합니다.
P.034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해 몇 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P.037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가면서 지식이 계속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식을 얻는 대신 가능성을 내주는 것이죠. 지식을 쌓으면서 놓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을 우리는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P.045 결국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대처 능력이 커지는 것이죠.
P.047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P.051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 있을 시간이 삼 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삼 일 있다가 떠난다는 걸 아니까 모든 게 난리인 겁니다.
P.051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합니다. 감동을 잘 맏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P.087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하는 재능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P.092 나의 생각과 같은 접점을 발견하는 기쁨도 독서의 기쁨 중 하나입니다.
P.105 사랑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싫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안 보이는 흠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랑은 결국 그렇게 소진되어가는 것이죠.
P.116 다른 영역에서돠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알랭 드 보통
P.120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P.127 죽지 못해 산다면서 평생을 놓치고 있으니까 삶을 낭비하지 말고 삶에 대해 감사해하며 현재의 순간순간을 모두 사랑하라는 애기를 알랭 드 보통은 프루스트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P.129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 카프카
P.132 잠재적으로 모든 것이 예술의 풍부한 소재이며,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만큼이나 비누 광고에서도 귀중한 발견을 할 수 있다.
P.139 세상의 흐름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내 인생을 온전하게 살고 싶어요. 오늘의 날씨, 해가 뜨고 오고 바람이 부는 것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사람과의 만남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해요.
P.149 "자연은 한 번도 예술을 동경한 적이 없다"라고 누가 얘기했다는데, 꼭 맞는 말일 것 같아요. 예술을 동경하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예술적인 게 자연이니까요.
P.156 말 그대로 진짜 무욕만 한 탐욕이 없지 않습니까? 무욕이야말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대단한 것이죠. 가장 대단한 욕심이 무욕인 것 같아요.
P.180 우리는 그 모든 게 덧없는 기쁨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그 기쁨에 젖어듭니다. ... 그것이 영워하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알지만 비관하지 않을 수 있어요. 순간을 지배하는 기쁨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이내 잊어버리고 영원을 믿는 것이죠.
P.181 그러니까 방법은 하나, 순간순간을 온전히 씹어먹는 것뿐이예요. 지중해에서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없고 나는 결국 죽을 것이니 계속 슬퍼하는 비극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P.182 많은 사람들이 꿈의 창문을 열지 못하고 찬란하 순간들을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곧 사라져갈 것이라는 걸 까맣게 잊은 채
P.190 그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엑상프로방스의 사람들은 파리를 동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곁가지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비극은 모두가 서울을 동경하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만 해도 각 도시마다 자부심이 있어서 다른 도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P.192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P.207 거짓말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느낀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늘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삶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뫼르소는 그걸 거부하는 사람, 그래서 이방인입니다.
P.240 만약 유럽 여행을 해본 분이라면 쉽게 느낄 텐데 그곳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요. 우리처럼 전후 60년간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발로 뛰는 분주함이 없어요. 그러너까 어쩌다 어깨를 부딪히면 돌아보고 가볍게 "미안합니다"를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전쟁 없이 1백 년 넘게 산 사람들이니까요.
P.291 인생의 봄날이 있다. 그 봄날에 만난 하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 모두를 담고 있는 한 사람이다
P.330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가 "저렇게 여백을 비우는 건 용기다"라고 말하더군요. 서양의 그림은 여백을 비우지 못해요. 어떻게든 빼곡하게 채우죠. 그림이 없으면 색으로라도
P.332 단순하다는 것은, 특히 그림이 단순하다는 것은 핵심적이라는 말과 통한다.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은 종종 노년에 다다라서야 얻어지곤 한다. - 오주석 <그림 속에 노닐다>
P.339 늦여름의 어느 날 오후 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 프리초프 카프라 기의 흐름에 대해서
P.346 비가 오는 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면서 짜증을 낼 것이냐, 또 다른 하나는 비를 맞고 싱그럽게 올라오는 은행나무 잎을 보면서 삶의 환희를 느낄 것이냐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P.347 다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이 읽었어도 불행한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안나 카레리나>에서 톨스토이가 말할 것처럼 기계적인 지식만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니 다독 콤플렞스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