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마당을 나온 암탉 - 아동용 ㅣ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이 책을 읽는 동안 시종 잎싹의 꿈과 모성에 가슴이 아렸다. 그리고 어미로 산다는 것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자연이 물려준 어미 노릇을 제대로 해보는 것을 소망하던 양계장 암탉 잎싹을 보면서, 터울이 별로 나지 않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기쁘고 행복하기 보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육아가 신이 내게 주신 고난이라고 한탄하던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의 소망은 폐계가 되어 양계장에서 버려진 후에 청둥오리의 알을 품으면서부터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양계장에서 그저 모이나 받아 먹으며 사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기와 다른 오리를 자식으로 사랑하며 키우는 것이며, 족제비에게 먹이 감이 되는 위험으로부터 자식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자신과 다른 자신의 아기 초록머리를 제 갈길로 떠나보내고 족제비의 사냥감이 되기까지 그저 숭고하다는 말 밖엔 생각나지 않는 모성의 결정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어미의 삶이구나!, 어미가 이런 것이구나! 아이들 때문에 내 삶의 일부를 접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자신이 양계장 암탉 앞에서 몹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순간 순간 고된 어미 됨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내가 진정한 어미로서의 삶을 용감하게 살아간 잎싹 앞에서 눈물 흘릴 자격이나 있을까. 다만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굴 뿐.

나 무당벌레?

네가 무당벌레니? - 풀밭에서 만나요 1 ㅣ 풀밭에서 만나요 1
주디 앨런 글, 튜더 험프리스 그림, 이성실 옮김 / 다섯수레 / 2000년 5월

네가 무당벌레니? 하고 물으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처음엔 그 시도가 너무 놀랍고 재밌기도 했다. 내용도 물론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배우는 내용이 많다. 과학동화가 자칫 지루하기 쉬운데 반해 대화체의 문장과 독자를 무당벌레로 단정하고 이끌어가는 대화이기에 그 자체 만으로도 흥미롭다. '후후 내가 무당벌레 라니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몇권 읽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책의 끝부분이었다. 사람인 독자를 무당벌레라고 단정했으니 다시 사람으로 돌려 놓는 부분에서 무당벌레가 들으면 정말 화가 날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무당벌레는 무당벌레고 사람은 사람이다. 이 두 생명체를 놓고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책을 읽고 있는 우리가 무당벌레가 아니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사람이 무당벌레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나 무당벌레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마찬가지 아닌가. 게다가 무당벌레에게 있어서 진딧물은 아주 소중한 것인데 사람인 우리가 진딧물을 절대로 절대로 먹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편협된 시각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무당벌레를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당벌레에 대한 편견을 알려주고 있는 것같아서 씁쓸했다. 좋은 기획의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랑하는 딸들아 꼭 읽어 보거라

돼지책 (100쇄 기념판) ㅣ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내게는 딸만 셋이 있다. 모두 그림책을 읽는 연령에 속해있다. 아이들이 읽는 책들중 어떤 것은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몹시 불쾌할 정도로 남녀의 시각이 편협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특히 명작그림책 류의 책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나름대로 페미니즘을 담고 있는 책들을 세심하게 골라주고 있는 편이다. 물론 재미도 있어야 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남편에게 설거지를 부탁했더니 큰 아이가 하는 말 '아빠가 그런 걸 왜 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전업주부이다. 어른들을 모시고 산 이후 남편은 가사 노동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설거지와 빨래에서 제외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의 사고 속에 이미 그런 편견이 자리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책을 사게 되었다. 너무 노골적인 대응이지만 그림책 만큼 아이에게 다가가기 좋은 매개가 또 어디있으랴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이 한권의 책으로 아이에게 어떤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성급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꼭 깨닫기 바라는 것은 엄마에게도 엄마 자신의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들도 모두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될 것이기에 이 명제는 또 그들의 몫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빠가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늘 일 속에서 파묻혀 사는데 언제 아이들과 함께 가사 노동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런지. 나는 바담 풍, 하면서 아이들은 바람 풍 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부터 돌아보게 된다.

이건 아가꺼야

달님 안녕 ㅣ 하야시 아키코 시리즈
하야시 아키코 글ㆍ그림 / 한림출판사 / 2001년 4월

하도 많이 들어서 오히려 왠지 거부감이 들었었다. (나는 많이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도 또 배운셈이다.) 그리고 나의 수준은 꼭 우리 큰아이(8살)에게 맞춰져 있기에 우리 막내가 좋아하는 책들에 투자하는 것이 좀 아깝게 생각했다. 이미 제 언니들이 보던 책들이 있고 또 자기도 덩달아 언니들 책을 들고 다니며 보았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해 왔더니 대번에 우리 막내가 이건 아가꺼야(당시 26개월) 하면서 가지고 간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읽어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달님 안녕? 하면 자기도 달님 안녕? 하고 따라하더니 아예 책을 통째로 외워버리는게 아닌가?

막내의 위세에 눌려 위의 두 아이들은 그 책을 보자고 하지도 못했고 나 역시 이책을 사주고야 말았다. 아이는 이 책에 흠뻑 빠져버렸다. 구름이 나오는 장면부터 구름이 달을 가리는 두 장면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다. 다시 달이 나오면 아이는 신이 나고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아이는 재미있어 하지만 나는 솔직히 처음엔 이 책이 뭐 그리 좋은지 몰랐었다. 그런데 아이가 계속해서 읽어달라고 하니 나도 자주 이책을 읽어줄 수 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이 책에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아님 이제는 이 책을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고 할까? 아주 단순하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런 책이다. 아이들 책이 반드시 어떤 교훈이나 깊은 뜻을 담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이를 통해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아주 훌륭한 우리 형

아주 특별한 우리 형 ㅣ 눈높이 어린이 문고 33
고정욱 글, 송진헌 그림 / 대교출판 / 2002년 1월

아이들 그림책 중에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가 있다. 아무런 감정이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을 그리고 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은 위의 책보다는 감정이 더 많이 실려 있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뇌성마비 장애인 종식은 장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아주 모범적인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종식이가 가족에게 사랑받는 것은 그가 그렇게 훌륭한 장애인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한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작가는 아이들에게 장애인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주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그리 훌륭하지도 않고, 장애의 굴레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많은 대다수의 장애인들 역시 우리의 한 가족으로서 사랑받을 권리가 있는데 그런 부분은 간과되고 있어 아쉽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책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 책은 아이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