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순종 - 당신 삶에 복음이 살아 있습니까?
김병삼 지음 / 두란노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치열한 순종

   

 

김병삼 지음

 

★인상에 남는 구절

11p 믿음은 본질적으로 겸손함과 자기포기를 전제로 합니다.

19p 양보는 성속한 사람, 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24p 지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존중과 겸손한 마음입니다.

27p 신앙은 정답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입니다.

42p 사도 바울의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권리를 포기한 것을 더 이상 자랑할 수 없음은 하나님이 부득불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83p 넘어짐은 우리 삶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를 다시 빚어가시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122p 무엇에든 관대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아무리 해도 통과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준을 통과하게 하시는 그 마음이 은혜입니다.

143p 성만찬의 진정한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 된 사람들이 평등하게 연합하는 것입니다.

147p 우리가 성만찬을 하는 것도 주님이 주신 그 감격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반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166p 모든 은사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를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묻지 않으면 우리는 내 열정이 하나님의 은사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195p 악한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 해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고민 없이 자기 생각대로 내뱉은 말을 통해 많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07p 영성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222p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감정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자기 감정에 충실한 것을 성령이 충만한 것으로 오해해서 교회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성령이 주신 은사를 자신의 감정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덕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성령님은 떠나십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은사는 혼란일 뿐입니다. 은사는 귀한 것이지만 성령의 통제를 받지 못하는 은사는 정욕에 쓰임 받기 때문입니다.

229p 교회의 질서가 깨어지는 것이 무분별한 은사와 자기중심적 생각이라면, 교회의 품위와 질서는 성령님을 따라 순종하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249p 우리의 부끄러움과 상처와 많은 아픔 가운데서도 우리의 인생을 바꿔놓으시고 나를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 그분 덕분에 내가 살아갈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지은이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역사신학 전공

·미국 시카고 Garrett신학교에서 신학석사(M.DIV), UTS(Unit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박사(D.MISS)학위를 받음

·만나교회 담임목사(現)

·(사)월드휴먼브리지 대표이사(現)

·하늘다리호스피스 이사장(現)

·저서로는 《치열한 복음》,《액션플랜》,《누가 왕인가》(두란노),《사랑이 먼저다》(규장),《그래야 행복합니다》(샘솟는 기쁨),《기대와 달라도 행복합니다》(성서원),《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넥서스 CROSS)外다수

 

★구성과 특징

치열한 복음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치열(熾熱)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기세나 세력 따위가 불길같이 맹렬하다’는 의미가 있다. 불길같은 맹렬한 복음이라는 제목을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 프롤로그 “치열한 순종의 흔적이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저자에게 ‘치열함’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의중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치열하게 복음을 다시 고민하며 교회의 본질을 찾아가보자’는데 있다고 밝힌다.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님이 고린도교회를 바라보던 바울의 심정으로 풀어가는 고린도전서 강해설교는 성도들이 흔히 할 수 있는 고민, 목회자의 고민을 담았다. 고린도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의 모습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울의 진단과 처방을 적용해보기 위해 4개의 PART(1.치열하게 회복하라, 2.치열하게 바라보라, 3.치열하게 사랑하라, 4.치열하게 순종하라) 15개의 장으로 풀어냈다. 복음을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 쳤던 흔적속에서 ‘작은 소망’을 발견하길 원했던 저자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1.우리가운데 ‘사랑’이 있는가

고린도교회의 여러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해답이 있을 수 있다. 사도바울은 ‘사랑’이 바탕에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사랑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것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가운데 나오는 언행은 교회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2p 교회의 문제가 지식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없는 지식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9p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행하는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이 있는가,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들이 무섭고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불의를 덮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따뜻한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의가 사랑을 앞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12p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사로 하나님을 드러내며 사랑하고 따뜻한 하나님의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할 때 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될 것입니다.

 

2.우리가운데 ‘덕’이 있는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유익’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러다보니 은사를 앞세워 다투는 상황을 초래했다. 우상숭배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저자는 성숙한 판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성숙한 판단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성숙한 판단은 일일이 마마보이처럼 하나님께 자질구레한 것들을 일일이 물어보고 결정하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한다. 믿음의 원리와 신앙의 원리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을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설교도 어린아이들에게 답을 가르쳐주는 식이 아니라 원리를 가르쳐주어서 성도들이 성경의 원리에 따라 판단하고 구별하는 삶을 살도록 돕는데 있다고 말한다. 이 원리가 성숙한 삶을 사는 기준이 되길 권면한다. 다시 정리하면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는가’와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가’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원리가 나에게 적용되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의 유익이 아나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을 살길 다짐해본다. 저자는 ‘유익’이라는 말이 NIV성경에는 ‘common good’(공동선, 공익)으로 나와있다고 설명하며 사도바울에게 흐르는 중요한 신앙의 맥이라고 표현했다.

책에서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커피를 들고 들어가서 예배에 참석했던 나는 뜨끔했다. 커피를 마시고 들어가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책에서는 ‘욕망’때문이라고 진단했다.나는 동의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편의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번주부터 예배시간을 앞두고 커피를 끊어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덕스럽지 않은 일들에 먹이를 주지않아야 진리가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 무엇이 덕을 세우는 일입니까?”

 

101p 우리가 무엇을 하든 마음 가운데 ‘이 일을 통하여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는가’,‘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가’라는 원리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면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습니다.

124p 우리가 받은 그 은혜 때문에 누군가의 은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할 때 그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우리의 옳음, 우리의 정의, 우리의 신앙을 자랑하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202p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통해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랑하는 것이 되었을 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은사를 주실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누구에게 유익이 되는 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3. 우리가운데 ‘믿음의 경주’가 있는가

사도바울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저자는 ‘끝까지 사도로서의 길을 가리라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살았다’고 정리했다. 사도바울은 로마에서 머리가 잘려 처참하게 순교했다. 순교한 삶도 고귀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주목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끝까지 복음증거자의 삶을 우리모두 살아내길 도전한다. 노후가 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도 달라질 수 없다. 사명을 놓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경주하길 저자 스스로에게도 도전한다. 그 의지가 약해질 수 있고, 시험에 넘어질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시험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붙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넘어진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고, 우리를 바로 세워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49p 우리 삶의 목표는 순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끝까지 이 길을 가는 데 있습니다.

51p 사도바울은 끝까지 절제하면서 정확한 방향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60p 우리가 이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술로 자주 시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절제하고 훈련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그 마음들을 끊임없이 고백하는 일입니다.

81p 이길 수 없는 시험은 그것으로 인해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길 수 없으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됩니다.

 

 

4.우리가운데 ‘동역자’가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된 자로서 한 몸으로 표현된다. 그것이 교회이다. 교회는 단순히 모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명’이 있다. 저자는 교회의 본질을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보았다.

 

186p 모이는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은 서로가 지체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191p 흩어지는 교회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수고했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가지고 우리가 필요한 곳에 가서 요단강이 갈라질 때처럼 가슴 뛰는 전율과 감동을 직접 체험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역할이 믿음의 경주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제대로 하려면 혼자서는 어렵다. 고린도 교회에도 스데바나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사도바울의 첫 열매였다. 성경에는 “스데바다는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헌신적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도바울은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는 표현을 썼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소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 스데바나와 같은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좋은 동역자를 만나면 좋겠지만 당신이 먼저 누군가에게 좋은 동역자 되길 도전한다.

 

280p 동역자는 ‘내 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동일한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교회란 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속에서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일은 무엇보다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84p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또 내가 누군가에게 떠오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290p 우선순위와 균형은 절대로 함께하지 못합니다. 저는 균형을 잡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같이 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균형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서평을 맺으며...

김병삼 목사님의 저서는 깊이가 있으면서도 독자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도록 쓰였습니다. 또한 책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예화들도 목사님이 직접 경험한 사례중심으로 써주셔서 더욱 잘 와닿습니다. 김병삼 목사님의 ‘치열한 순종’을 통해서 남은 것은 ‘유익’과 ‘사랑’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평생동안 치열하게 몸부림 쳤던 사도 바울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교회를 섬길 때 또는 학교에서 맡은 역할을 감당할 때 책속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또한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주님앞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이길을 완주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정민의 sharing 365 (영한대역)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조정민의 sharing365

 

2017년 마지막 날이다. 2017년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왔는가 가만히 돌아본다.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서 살아가고 있는가?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은 아닌가. 하나님 앞에서 믿는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 성령충만한 삶을 살았는가? 예수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가 날마다 이어졌는가? 세상속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면 살아갔는가?

1년은 365일을 한 해를 세는 단위다. 하루하루가 모여 365일이 된다. 결국 하루하루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조정민 목사는 트위터 잠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성찰을 던져주는 짧은 메시지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 나눔이 책으로 나오기도 했고, 이번에는 하루에 메시지를 하나씩 볼 수 있도록 ‘조정민의 sharing365’라는 캘린더 형식으로 나눔 캘린더가 나왔다.

성경적 세계관이 녹아있는 ‘조정민의 sharing365’는 하나님안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짧은 문장이어서 부담이 없다. 깊이가 있지만 어려운 내용이 아니어서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없이 나눌 수 있다. 조정민의 sharing365는 뒷면 QR코드를 촬영하면 그 날 묵상내용이 자동으로 보여지고, SNS에 공유하기 편리하다. 실제로 카톡방에 하나씩 올려보니 사람들의 호응이 좋았다. 가까운 직장동료에게 엽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종이재질을 신경썼다.

‘조정민의 sharing365’ 묵상집과 함께 2018년을 보내보자. 짧지만 의미있는 문장들이 하루하루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훌륭한 도우미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 켈러의 예수, 예수 - 이 시대가 잃어버린 이름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대가 잃어버린 이름

팀 켈러의 예수, 예수

원제 : HIDDEN CHRISTMAS

    

팀 켈러 지음,윤종석 옮김

 

★인상에 남는 구절

15p 크리스마스를 바로 알면 기독교의 근간인 복음을 바로 알 수 있다.

56p 복음서는 전반에 걸쳐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일을 말해준다.

63p 하나님은 약속을 잊으신 듯 보이지만 그분의 때에 반드시 이루시며, 막상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그분의 방법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97p 그분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므로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지음받았으며, 무엇이 우리에게 맞는지 아신다.

109p 성경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세상의 악은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모든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122p 크리스마스는 인종과 혈통과 부와 지위가 결국 중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172p 화평하게 하는 자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짐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흠과 약점을 인정하는 법, 자존심을 버리는 법, 굳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201p 당신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어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크리스마스의 진리를 믿을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의 참정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해지고, 인정받고 사랑받으니 불안도 점차 사라지며, 실패하더라도 용서와 회복을 누릴수 있다.

 

★내용(Message)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캐롤이 울려퍼진다. 백화점에서는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해 고객의 지갑을 열도록 만든다. 이 시대의 기독교 변증가 팀 켈러 목사는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을까. 아마도 예수님을 전할 가장 호기인데 실제로 현실은 그렇지 않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이 책을 떠올렸다고 느꼈다.

 

 

1.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계기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을 보여준다. 크리스마스하면 반짝이는 트리를 생각하게 된다. 트리의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과 연결짓는다. 저자에게 크리마스 트리의 반짝이는 불빛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릴 수 있는 접점이었다. 성경에도 예수님을 빛으로 여러곳에서 비유했다.

 

35p 이 빛은 선물이다. 은혜의 선물로 기꺼이 받아야만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다.

39p 크리스마스가 주는 약속을 이해하려면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의 삶에 과분한 은혜로 비치는 이 빛이 없이는 스스로를 구원하기는커녕 당신 자신을 제대로 알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근본 진리이며,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크리스마스의 감추인 의미를 배워 나갈 수 있다.

 

또한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주고 받는다. 크리스마스 선물문화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선물임을 일깨워준다. 저자에게는 이 선물문화가 구원의 선물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한 접점이었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도 누구에나 열려있음을 성경을 근거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59p 하나님은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신다. 우리는 다 그분의 가족이다.

211p 예수님은 시민운동장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왕궁에 가서 사신 게 아니라 태어난 즉시 집 없는 난민이 되셨다. 아기 예수를 찾아온 손님은 고위 인사들이 아니라 목자들이었다.

 

2.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그분의 목적을 이루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성경에 예언대로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날이 실제임을 의미한다.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생일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의 이야기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책에서는 예수님의 오심과 의미를 하나씩 조명하며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예수님의 족보,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마리아, 약혼녀의 잉태를 들었던 요셉의 반응, 목자들에게 이 소식이 처음 전해졌던 의미를 천천히 들여다본다.

 

64p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들어오셨다.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라”(눅 2:11)

 

3.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았다면 반응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의미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저자는 선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면한다. 기독교 변증의 대가답게 반응의 방향을 강요하지 않고,천천히 호흡하며 독자를 설득한다. 2천년전 당시로 돌아가 마리아의 상황에 감정이입해 긴호흡으로 쫓아간다. 예수의 잉태를 들었던 마리아의 첫 반응은 ‘할렐루야 아멘!’이 아니라 유연한 의심이었음을 말한다. 마리아는 배우지 못한 가난한 소녀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주여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순종의 고백을 했고 그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음을 깨닫게한다.

 

136p 그녀는 회심과 수용의 속도가 사람마다 다름을 보여 준다. 회심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규격화해서는 안 된다.

148p 기독교 신앙은 흥정이 아니라 순복이다.

153p 순복의 가장큰 동기는 그분이 우리에게 해 주실 일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어야 한다. 그분이 이미 우리를 위해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서평을 맺으며..

책의 영어제목은 숨겨진 예수(HIDDEN GHRISTMAS)다. 크리스마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의미를 잘 모르고 캐롤송을 부르며 듣는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다. 팀켈러 목사는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실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 캐롤, 선물등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예수를 만나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갔을 크리스마스에 대해 좀 더 깊이 돌아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길 원하는 성도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서평을 맺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교개혁 길 위를 걷다 - 오늘 만나는 종교개혁 영성의 현장
김성영 외 지음 / 두란노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교개혁 길 위를 걷다

    

★인상에 남는 구절

25p 지금은 “이미 개혁된 교회라도 지금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종교개혁의 표어를 다시 되새겨야 할 때다.

94p "사람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낫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한다면 그들에게서 분명 배반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며 기쁘시게 한 일이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합당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역사가 필립 샤프가 스위스 종교개혁사에서 인용한 칼뱅의 결의에 찬 음성이었다.

106p 손박사는 “종교개혁을 제대로 기념하려면 교육이 직업이나 얻고 경쟁에서 이길 힘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영화롭게 하며 이웃을 섬기기 위한 것임을 인식하고 그 위대한 전통을 살려 한국 교육을 성경적인 인간 교육으로 되돌려야 한다.

155p 오늘의 신학이 복음과 교회를 위해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질문해야 한다.

182p 진정한 개혁은 정치적 권력이나 법률이 아니라 오직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만 가능하다.

 

★지은이

국민일보 기획

김성영,고성삼,박용규,서대천,주도홍 지음

★내용(Message)

1. 루터의 외침은 오늘날도 살아있다_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통하여!

첵은 루터를 먼저 조명한다. 루터는 중세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며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목숨을 걸었다. 그의 정신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붙들었기에 가능했다. 책에서는 루터 뿐만아니라 그의 동역자 멜란히톤의 역할에 대해 다룬다. 종교개혁 현장의 생생한 사진(루터의 생가-아이스레벤, 성베드로 바울교회-아이스레벤, 멜란히톤의 생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성 마리아교회, 비텐베르크 성 교회, 토마스교회, 비텐베르크 대학교, 바르트부르크 성-아이제나흐)이 이해를 돕는다. 가톨릭의 탄압에 맞서서 1519년 라이프치히 논쟁, 1521년 보름스 논쟁을 했다. 루터는 성경에 반하는 어떠한 사상도 수용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루터는 쫓겼다. 바르트부르크성으로 가서 성경을 번역했다. 학창시절 루터의 성경 번역이 독일어 발전에 공헌했다고 배웠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며 번역한 성경이 <9월 신약성경>임을 처음알았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을 작곡해 불렀다. 1534년 여러 종교개혁자와 동료 교수들이 함께 <루터성경>을 출간한다. 표준 독일어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2017년 독일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세계교회를 향해 23개 조항을 발표했다. 그 중 12조는 세상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도록 했다. 그의 외침은 오늘도 유효하다.

 

54p 루터는 이 성경을 모든 크리스천에게 주어 그들 스스로 읽고 은혜를 받아 왕 같은 제사장의 책무를 다하도록 한 것이다.

60p 그의 말과 글들은 우리 곁에서 머물며 지금까지 우리를 움직이고 있다. “그는 떠났으나 여전히 살아 있다.!”

 

2. 종교개혁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종교개혁하면 루터를 떠올리지만 책에서는 루터에게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영국의 존 위클리프(1324-1384)는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삼아야 한다며 종교개혁의 기초를 마련했다. 윌리엄 틴데일(1494-1536)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직접 영어로 번역해 화형을 당했다. 스코틀랜드 존 낙스(1513-1572)는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를 세우고자 평생 노력했다. 네덜란드 인문주의자로 <우신예찬>의 저자인 에라스무스는 로마가톨릭을 비판했고,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간해 종교개혁 준비에 기여했다. 스위스 츠빙글리(1484-1531)는 스위스는 개혁교회를 태동시켰다. 츠빙글리는 “우리는 루터적이 아니라 복음적이어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종교개혁이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칼뱅의 종교개혁에 동역자들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홀로서기가 아니었다. 존 오웬(1616-1683), 리처드 백스터(1615-1691), 존 버니언(1628-1688)등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냈던 대표적인 청교도(Puritan)들로 책에서 소개된다. 영국의 청교도(Puritan)들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가 개척자(Pilgrim Father)가 되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세계로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영국의 대각성운동이 있었다. 이에 앞장선 존 웨슬리(1703-1791), 조지 휫필드(1714-1770)를 다룬다. 이들의 사역을 뒷받침한 셀리나 헌팅던 백작 부인(1707-1791)을 통해 다시한번 하나님의 사역은 동역과 헌신으로 가능함을 강조한다고 느껴졌다. 19세기 5만번 기도응답을 받았던 조지 뮐러(1805-1892)삶이 가능한 것도 누군가의 동역이 있었다.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앞장선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 대중전도 운동의 선구자 드와이트 무디(1837-1899)는 그 자체로 유명하다. 이 무디의 영향으로 언더우드(1859-1916), 아펜젤러(1858-1902)와 같은 인물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믿음의 사람들의 선한 영향력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한반도에 복음을 전했다.

 

3. 종교개혁도 순교의 역사였음을 기억하자.

책을 읽다보면 여러 내용이 의미있게 다가올 수 있다. 내겐 프랑스 위그노 수난현장 답사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가톨릭교회의 박해로 30만명이 넘는 위그노 교도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위그노들은 목숨걸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어디 위그노 뿐인가. 책에서는 영국 웨일즈의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에서 “야소,야소”(예수,예수)라고 외치며 순교의 피를 흘렸음을 말하고 있다. 순교의 피로 시작된 복음이다. 우리나라에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죽음을 맞았고, 손양원 목사는 공산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순교자의 피값으로 세운 것이 한국 기독교라는 사실을 깨닫고 책을 읽으며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124p 우리는 위그노의 삶을 통해 순교 신앙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회사는 순교의 역사다. 한국교회 130여 년의 역사에도 주기철, 손양원 목사 등 순교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

 

4. 종교개혁은 현재 진행형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한국 기독교의 현대에 중심이 되었던 목회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경직 목사, 김준곤 목사, 대천덕 신부, 옥한흠 목사, 이중표 목사, 강원용 목사, 하용조 목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이 살아생전 걸어왔던 핵심적 신학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종교개혁의 정신은 대한민국까지 흘러들어왔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기억하며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일터가 제2의 종교개혁 현장이 되길 도전하며 책을 맺는다.

 

82p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라고 외친 호세아의 경고를 상기해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에 주어진 과제는 바로 잃어버린 하나님을 다시 찾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서평을 맺으며...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다며 관련기사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종교개혁의 참 의미를 돌아보며 종교개혁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다시한번 생각하도록 만든 책이다. 저자들과 함께 종교개혁의 흐름을 쫓아가는 기분이다. 종교개혁과 오늘날 한국교회의 연관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만남을 원하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저자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쇠퇴하는 한국교회에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점임을 이 책을 빌어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500년 전 종교개혁가들의 외침에 귀기울여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 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What's Wrong sith Religion?

   

 

★인상에 남는 구절

25p 우리 모두는 두려움을 덜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통제하려고 애를 쓴다.

76p 창조주가 아닌 다른 것이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할 때 그것을 ‘우상’이라 부른다. 우상숭배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창조주가 아닌 창조된 것을 숭배하는 것은 다 우상숭배다.

93p 하나님이 가장 눈여겨보시는 것은 우리의 순종이나 불순종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128p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한다. 예수님처럼 사랑과 나눔, 용서, 자비로 행동하려면 먼저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36p 하나님의 선하심을 또렷이 보면 비로소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만이 비로소 원수까지도 섬기고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할 힘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때 찾아오는 힘, 두려움을 이기는 이 힘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믿음이다.

 

★지은이

    

            스카이 제서니Skye Jethani

 

★내용(Message)

1. 모든 사람은 종교적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왜 종교를 찾는지부터 이해시킨다. 유한한 인간의 삶.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는 삶. 위험한 세상은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부터 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종교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면 종교에 준하는 ‘신’을 두고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이겨보려고 몸부림 친다. 그런 신적 존재를 저자는 ‘궁극적 관심사’라고 표현했다.

 

29p 모든 사람에게는 궁극적인 관심사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에게 궁극적인 관심사는 ‘하나님’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명예다. 부(富)나 권세, 섹스, 관계, 조국, 명분에 궁극적인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런 관심사가 바로 그들의 신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의미와 목적, 그리고 이 두려운 세상을 통제하는 느낌을 제공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궁극적 관심사는 무엇인가?’,‘그것은 어떻게 당신의 삶에 의미와 통제력을 더해 주는가?’

 

2. 종교를 가져도 ‘두려움’은 여전하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더니 건강도 얻었고, 부도 없었다는 식의 설교나 간증을 들어본 일이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구나 기대한다. ‘두려움’을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열심히 헌신해도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는 인생들이 많다. ‘두려움’이 여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는 혼란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아고라스(Diagoras)의 말을 빌려 ‘디아고라스의 의심’이라고 표현했다. ‘순종=축복, 불순종=저주’라는 공식의 패러다임에 갇혀 사는 경우, 열심히 헌신하는 신자들이 만나게 된 가난, 질병, 불명예에 대해 답을 내놓을 수 없다.

 

3.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두 가지 ‘종교게임’의 관점을 내려놓자.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다는 표현을 덕담처럼 종종한다. ‘자기중심성’이다.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말씀구절을 짜깁기해서 합당한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들도 많이 본다. ‘자기중심성’이다. 저자는 ‘자기중심성’이 하나님을 왜곡할 수 있음에 대해 우려했다. ‘나를 닮은 하나님을 만든다’고 표현했다. 하나님을 소비하고 있다고 했다. 자판기 삽화가 종교소비가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들추어 낸다. 종교소비는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행위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꺼려하며 변화하려 들지도 않는다.

 

68p 하나님이 나와 똑같다면 안심이 된다. 통제권이 여전히 내 손안에 있다. 세상과 그 세상을 통제하는 하나님을 내가 훤히 읽고 있고, 나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다르다면 심히 곤란하다. 그런 하나님은 내게 변화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종교를 원하지 않는다.

 

70p 현대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신을 원한다. 우리는 마치 개인 트레이너나 자판기를 이용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이용하려고’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소비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하나님의 사명을 우상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저자는 ‘종교적 행동주의’라는 말로 표현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목표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주장에 대해서도 선을 긋는다. 소비의 대상으로만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하나님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양극단의 관점을 경계한다. 이미 하나님은 충분하신 완전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종교게임’을 끝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4. 하나님은 우리 ‘함께’하길 원하신다.

저자는 책에서 탕자의 비유를 든다. 작은 아들은 ‘소비주’의 신앙에 대표적 사례로, 큰 아들은 ‘행동주의’에 빠진 사례로 든다. 아버지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오로지 자녀들과 ‘함께’사는 것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중요하게 봤다. 책에서는 이런 관점이 ‘뿌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래디컬한 삶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118p 래디컬한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깊은 뿌리에서 힘과 능력을 끌어올리는 삶이다.

 

124p 쉬지 않고 기도하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 당신의 평범한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라. 환경이 바뀌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전에 없이 분명히 느끼게 되어 환경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157p 당신이 단순히 하나님을 ‘위해’ 살기보다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오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서평을 맺으며..

책은 작고, 페이지수도 많지 않으나 알차다. 책의 내용도 간결할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도표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삽화들이 이해를 돕는다. 신앙의 방향이 무엇인지,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답답한 일상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