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 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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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What's Wrong sith Religion?

   

 

★인상에 남는 구절

25p 우리 모두는 두려움을 덜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통제하려고 애를 쓴다.

76p 창조주가 아닌 다른 것이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할 때 그것을 ‘우상’이라 부른다. 우상숭배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창조주가 아닌 창조된 것을 숭배하는 것은 다 우상숭배다.

93p 하나님이 가장 눈여겨보시는 것은 우리의 순종이나 불순종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128p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한다. 예수님처럼 사랑과 나눔, 용서, 자비로 행동하려면 먼저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36p 하나님의 선하심을 또렷이 보면 비로소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안전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만이 비로소 원수까지도 섬기고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할 힘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때 찾아오는 힘, 두려움을 이기는 이 힘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믿음이다.

 

★지은이

    

            스카이 제서니Skye Jethani

 

★내용(Message)

1. 모든 사람은 종교적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왜 종교를 찾는지부터 이해시킨다. 유한한 인간의 삶.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는 삶. 위험한 세상은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부터 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종교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면 종교에 준하는 ‘신’을 두고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이겨보려고 몸부림 친다. 그런 신적 존재를 저자는 ‘궁극적 관심사’라고 표현했다.

 

29p 모든 사람에게는 궁극적인 관심사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에게 궁극적인 관심사는 ‘하나님’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명예다. 부(富)나 권세, 섹스, 관계, 조국, 명분에 궁극적인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런 관심사가 바로 그들의 신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의미와 목적, 그리고 이 두려운 세상을 통제하는 느낌을 제공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궁극적 관심사는 무엇인가?’,‘그것은 어떻게 당신의 삶에 의미와 통제력을 더해 주는가?’

 

2. 종교를 가져도 ‘두려움’은 여전하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더니 건강도 얻었고, 부도 없었다는 식의 설교나 간증을 들어본 일이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구나 기대한다. ‘두려움’을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열심히 헌신해도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는 인생들이 많다. ‘두려움’이 여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는 혼란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아고라스(Diagoras)의 말을 빌려 ‘디아고라스의 의심’이라고 표현했다. ‘순종=축복, 불순종=저주’라는 공식의 패러다임에 갇혀 사는 경우, 열심히 헌신하는 신자들이 만나게 된 가난, 질병, 불명예에 대해 답을 내놓을 수 없다.

 

3.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두 가지 ‘종교게임’의 관점을 내려놓자.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다는 표현을 덕담처럼 종종한다. ‘자기중심성’이다.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말씀구절을 짜깁기해서 합당한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들도 많이 본다. ‘자기중심성’이다. 저자는 ‘자기중심성’이 하나님을 왜곡할 수 있음에 대해 우려했다. ‘나를 닮은 하나님을 만든다’고 표현했다. 하나님을 소비하고 있다고 했다. 자판기 삽화가 종교소비가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들추어 낸다. 종교소비는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행위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꺼려하며 변화하려 들지도 않는다.

 

68p 하나님이 나와 똑같다면 안심이 된다. 통제권이 여전히 내 손안에 있다. 세상과 그 세상을 통제하는 하나님을 내가 훤히 읽고 있고, 나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다르다면 심히 곤란하다. 그런 하나님은 내게 변화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종교를 원하지 않는다.

 

70p 현대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신을 원한다. 우리는 마치 개인 트레이너나 자판기를 이용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이용하려고’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소비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하나님의 사명을 우상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저자는 ‘종교적 행동주의’라는 말로 표현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목표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주장에 대해서도 선을 긋는다. 소비의 대상으로만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하나님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양극단의 관점을 경계한다. 이미 하나님은 충분하신 완전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종교게임’을 끝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4. 하나님은 우리 ‘함께’하길 원하신다.

저자는 책에서 탕자의 비유를 든다. 작은 아들은 ‘소비주’의 신앙에 대표적 사례로, 큰 아들은 ‘행동주의’에 빠진 사례로 든다. 아버지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오로지 자녀들과 ‘함께’사는 것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중요하게 봤다. 책에서는 이런 관점이 ‘뿌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래디컬한 삶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118p 래디컬한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깊은 뿌리에서 힘과 능력을 끌어올리는 삶이다.

 

124p 쉬지 않고 기도하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 당신의 평범한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라. 환경이 바뀌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전에 없이 분명히 느끼게 되어 환경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157p 당신이 단순히 하나님을 ‘위해’ 살기보다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오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서평을 맺으며..

책은 작고, 페이지수도 많지 않으나 알차다. 책의 내용도 간결할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도표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삽화들이 이해를 돕는다. 신앙의 방향이 무엇인지,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답답한 일상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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