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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의 전장에서 - 최초의 항생제, 설파제는 어떻게 만들어져 인류를 구했나
토머스 헤이거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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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앞으로는 감염병이 일상적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평소에는 잘 읽지 않았던 질병과 의약품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게 된다. 그 중 인상적으로 읽은 책 한 권이 바로 「감염의 전장에서」 이다.


이 책의 저자인 토마스 헤이거는 의학미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로 현재는 과학저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아시모프의 과학기술 인명사전」을 읽던 중 파울 에를리히와 관련한 글에서 '게르하르트 도마크'라는 독일 병리학자를 발견했는데, 도마크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설파제의 개발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에 매료되었고 그가 현대 의학과 제약시스템에 끼친 영향력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감염의 전장에서」다.


도마크는 젊은 시절, 제1차 세계대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위생병으로 복무하며 가스 괴저로 죽어가는 수많은 전우의 모습을 목격했다. 당시 전장에서의 유일한 치료법은 괴저를 일으킨 부위를 절단하는 것. 야전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수술 자체가 엄청난 고통과 위험을 동반하는 것이었기에 도마크는 죽어가는 동료들을 지켜보며 추후 이 세균 감염병과 싸우는데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고, 전장에서 돌아온 후 대학에서 의학과 병리학을 공부하고 독일의 한 연구소에서 세균과 면역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독일에선 거대 화학 복합 기업인 이게파르벤이 설립되었고 계열사 중 하나인 바이엘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손실을 만회할 신규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한 대규모 연구가 시작되었다. 의약품연구부문을 이끌었던 사람은 하인리히 회를라인. 그는 1927년 도마크를 바이엘로 불러들여 함께 각종 세균에 효과적인 화학물질을 찾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도마크는 4년이 넘도록 3,000여가지 화합물을 시험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어 절망하던 중 '아조 염료에 술파닐아미드를 결합한 화합물을 동물에 투여하니 연쇄구균에 감염된 쥐가 완벽하게 회복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다른 세포는 헤치지 않고 오로지 연쇄구균에만 작용하는 화합물을 찾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설파제였다. (유황 sulfar를 포함하고 있어 설파제라 부른다)



인체에 설파제 효과를 시험할 기회는 1935년,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도마크의 여섯 살짜리 딸 힐데가르트가 바늘에 손을 찔렸고 운 나쁘게도 바늘은 살에 박힌 채 부러지고 말았다. 수술로 바늘은 빼냈지만 상처 부위에 고름이 생기고 나날이 상태가 악화되었다. 고열로 의식이 없어지자 의사는 급기야 팔을 절단해야한다는 끔찍한 처방을 내놓았다. 도마크는 실험실의 설파제를 가져와 딸에게 투약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완벽히 회복했다.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고 세균만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마법의 탄약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설파제는 당시 미국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의 아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냈고 이는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세계적으로) 설파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게파르벤은 물론 전 세계 제약기업이 비슷비슷한 구조의 설파제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적용가능한 질환도 연쇄구균 감염증 뿐 아니라 폐렴과 산욕열, 수막염으로 범위가 넓어져서 1941년에는 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당시 독일의 특허제도는 신규 화학물질 자체가 아니라 제조과정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누구나 그 화학물질의 구조물을 새롭게 제조하는 법을 찾으면 또 다른 특허를 출원할 수 있었다)


이에 1939년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이 기적의 약을 창조한 도마크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했지만,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붙인 나치정권은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9년 후,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도마크는 노벨상 수상을 할 수 있게 된다)


설파제는 제2차 세계대전 전장에서도 맹활약하게 되는데, 독일군에서는 부상병의 상처부위에 붉은 설파제 가루를 뿌리는 처치만으로도 세균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설파제를 대량으로 군수물자에 투입한 연합군 역시 1만명 가까운 이질 환자가 나왔으나 그 중 겨우 두 명만 사망하는 데 그쳤다. 미군 역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폐렴 등의 호흡기 질환으로 5만여명이 희생자가 나왔었지만 제 2차 세계대전에서는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1,265명에 그쳤고 이는 설파제 보급이 주된 요인이었다고 공식 기록으로 남아있다.

설파제로 인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약의 오남용으로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허술한 의약품법과 관련이 있었다. 1906년 제정된 미국의 식품의약품법은 의약품의 제조, 판매, 처방 등에 대한 어떤 규제도 없었다. 당시 의약품법 위반을 감시하는 유일한 기관은 농업부 내 작은 부서인 화학국(현재 FDA)이었는데, 시장에 출시된 의약품 중 의심스러운 약물의 라벨, 오염 정도만 검사할 뿐이었다. 설사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약의 경우에도 그것을 회수할 수 있는 규제가 없었다. 제약업은 1930년대 중엽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치료법을 결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의약품을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엔 그것이 관행이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 농업부 장관 헨리 윌리스, FDA 수장인 캠벨 등이 앞장섰다. 그들은 모든 의약품에 대해 안전을 위한 실험 및 임상시험을 의무화할 것, 건강에 위험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진 모든 의약품을 시장에서 퇴출시킬 것, 의약품 라벨에 모든 성분을 표시하고 부작용을 경고하고 올바른 사용을 위한 지침을 제시할 것 등을 미국 의회에 요구했고 마침내 1938년 새로운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이 제정되었다.


이렇듯 설파제는 1930년대 중반 기적처럼 등장해서 많은 생명을 구했지만 10여년 후 설파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항생제 페니실린이 개발되면서 점차 인기가 시들해져갔다.


이 책에서 소개한 설파제 개발과정, 그것의 확산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의약품과 관련한 역사에 시사하는 바도 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들을 적어보자면,


△ 세균 감염 질병 시대를 개척하다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코흐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세균이 우리 몸에 들어와 증식하는 과정에 수많은 질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추후 디프테리아, 결핵, 탄저병, 폐렴, 파상풍, 콜레라 등 감염병의 원인균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까지 인체 내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만 없애는 방법은 알지 못했고 유일한 방법은 면역계와 관련 있을거라 예상할 뿐이었다. 백신과 혈청요법이 개발되었지만 질병에 따라 효능이 크게 차이났고 면역계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효과적인 살균 성분, 페놀이 개발되었지만 페놀은 세균 뿐만 아니라 인체세포까지 파괴하기 때문에 외부 소독용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설파제는 눈에 띄는 독성없이 인체에 특정 세균만을 없애주었으니 바야흐로 세균 감염 질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염료 연구에서 화학요법 시대의 실마리를 발견하다


독일 의학자 파울 에일리히는 결핵환자의 병리조직을 염색하는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결핵균만 선명하게 물들이는 염료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결핵 진단을 간소화 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체의 세포에 결합하지 않고 오로지 세균과 결합하는 염료가 있다면 세균만 파괴하는 화합물도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라는 발상을 떠올리게 했다. 마침내 1904년 수면병 치료를 위해 개발한 트리판로트가 특정한 종의 파동편모충에 효과를 보이는 것을 발견하곤(아쉽게도 인간에겐 효과가 없었다) 오로지 세균만 공격하는 염료분자가 있을거라는 발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후 수많은 실험을 반복하여 606번째 비소 화합물 살바르산이 (독성을 함유하고 있어 만병통치약은 아니었지만) 매독 치료에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살바르산의 등장은 수없이 많은 다른 세균 감염증에 대해서도 화학요법을 통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는 설파제의 개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 도마크와 그의 연구팀은 근대적인 제약연구시스템을 만들었다



독일에선 살바르산 이후 뚜렷한 효능을 보이는 치료제를 찾기 어려워지자 화학요법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역에 과감히 도전하며 10년간 막대한 자금과 인원을 투입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바이엘사의 에를리히와 도마크 팀이다. 그들은 어떤 화합물에 약효가 있는지 하나하나 실험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화합물을 발견하면 가설을 세우고,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 보완하고, 화합물을 개량해 설계하고 합성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이상적인 화합물을 만들어갔다. 또한 동물 실험을 통해 면밀하게 효과를 기록하고 부작용을 체크하며 관련 데이터를 쌓아 분석했다.



다만 인체를 대상으로 한 시험 방식은 여전히 마구잡이식이었다. 1933년 당시에는 신약을 찾아낸 의사나 화학자가 자신이나 동료, 심지어 가족에게 시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유럽의 화학회사들은 대규모 인체실험을 하기 위해 종종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 갔다. 영국에선 병사들을 이용했고 미국에서는 죄수와 정신병원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했다. 당시엔 환자가 발생하면 의사가 화학회사나 판매상 등에 약물을 요청하고 정확한 투약 지침없이 (동물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정하여) 마구잡이로 투약하곤 했다. 사례는 개별적이었고 투여량은 제각각이었으며 결과는 소규모 학회나 무명의 학술지에 소개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설파제가 대규모로 생산되고 세계적으로 사용되자 부작용을 호소하거나 오남용으로 사망에 이르는 케이스들이 발생했고,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의약품법 개정의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 의약품 효능판정은 과학의 진보, 그 중에서도 통계학이 제대로 자리잡은 후에야 의미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설파제가 그 첫걸음이었던 셈이다.



이외에도 이 책에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나치당에 협력한 기업과 과학자들의 말로, 설파제로 인해 달라진 2차 세계대전의 양상, 설파제를 둘러싼 과학자와 정치인들의 치열한 분투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책장을 덮고나면 '의학사를 통틀어 가장 혁명적인 의약품이 설파제'라는 저자의 주장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



감염의 전장에서 싸운 한 과학자의 삶, 그로 인한 세계사의 명장면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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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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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섯 명의 여성들이 있다.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 메리 매카시, 수전 손택, 다이앤 아버스, 조앤 디디온.


데보라 넬슨은 그들을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한 스타일을 거부하고)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냉철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보인 '터프한' 여성들로 지칭하며 그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보여준 지적, 사회적 활동과 그것들이 불러온 파장에 주목했다.


이들은 모두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전쟁 후 인간의 근대성과 도덕성을 의심하며 혁명적 변화보다는 수정적 현실을 도모하고 '전쟁'이라는 커다란 수난을 공감과 연대로 극복하기 위해 영적, 사회적, 미학적, 정치적 도전을 시작했다. 데보라 넬슨은 이 과정에서 유독 당대 여성 지식인, 철학자, 예술가들에겐 감상적인 태도와 정서적 표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곤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1909~1943)는 '전쟁'이라는 커다란 수난을 맞닥뜨린 이들이 종교적 활동을 통해 위안을 얻고 사후세계 이미지를 보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할 때 <중력과 은총>에서 그에 반하는 주장을 펼쳤다. '운명, 천형, 맹목적 필연'이라는 개념을 들며 트라우마의 시대에 수난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색함으로써 도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극적 감수성'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때 근대 사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몬 베유의 사유는 이에 머물지 않고 권력과 언어(의 추상성)의 관계, 민주주의적 포괄성, 기타 신학적 개념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시몬 베유의 이러한 생각은 당대 종교활동을 통해 온기와 공감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겐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이러한 대중의 평가는 그녀의 몰개성적인 문체로 인해 더 공고해졌다. 그그러나 그녀는 "표현의 노고는 형식 뿐만 아니라 사유는 물론 내면적 존재 전체와 관련이 있어요."라고 말하며 직설적이고 강직한 스타일을 고수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돌아온 후 쓴 에세이 <말의 힘>에서는 추상(어)에 대한 경계를, 공장노동자들을 옹호하는 정치적 에세이 공장노동>에서는 개인적 상념과 에피소드를 배제하며 대상과의 거리감을 유지했는데 이러한 그녀의 글쓰기 방식은 사려깊게 더 정의로운 세계와 직접적인 신의 체험을 선택하기 위한 그녀만의 철학이라 볼 수 있다.


데보라 넬슨은 이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술로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킨 한나 아렌트(1906~1975)를 소개한다. 1961년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수살렘 재판은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공감을 전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띄고 37개국에 생중계되었는데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의 요청을 받아 이 모든 재판과정을 기록하게 된다. 그 기록물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인데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엄청난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기록의 정확성에 대한 사소한 오류보다 더 큰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바로 한나 아렌트의 비감상적인 unsentimental 문체였다. 재판과정의 무게를 전달하기 위한 산문의 리듬, 복잡한 문장으로 이어지다 팡 터지지는 충격으로 끝맺는 문장 등의 스타일이 공감능력이 없고 야만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를 비롯한 후대 연구자들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술방식에 대해 다른 견해를 내보인다. 그녀의 저작 전반에서 그녀가 '감정들이 정치적·공적 담론에 미치는 참담한 영향력'과 '공감의 관습(희생자의 감정을 수용하고 공유하려는 시도)이 내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저술방식은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그 현실을 기반으로 사유하는 법을 터득하기 위한 수사적 전략'이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이 아닌 '사진'의 영역에선 여성들의 터프함에 어떠한 반응들을 보였을까?


저자는 '수전 손택(1933~2004)'과 '다이앤 아버스(1923~1971)'의 사례를 이어 소개했다.

수전 손택은 미국의 예술 및 정치비평가로 우리나라에서도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 등의 저작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사진에 관하여>에서 전쟁 보도 사진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사진의 극단성은 전쟁 종식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오히려 사진의 현실미화가 인간의 불행(수난)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특히, 반복적인 노출은 충격을 약화시키고 도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한다고 말하며 이를 '현대 시각 문화의 마취효과'라 명명했다. 우리가 사진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진 속 고통을 목격할 때 '연민의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의미를 알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사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전 손택의 주장은 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으로 연민을 끌어모아 전후 사회를 재건하고 변화를 추동하려는 세력들에겐 탐탁치 않은 것이었고 그들은 그녀를 임상적이고 몰개성적인 캐릭터로 몰고갔다.


다이앤 아버스 역시 감상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을 띈 다큐멘터리 사진을 거부했다. 대신 기형인, 난쟁이, 거인, 트렌스 젠더, 동성애자, 도착증 환자 등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인물 군상을 드러내는 사진을 ㅗ찰영했다. 그녀는 '공감을 거부하는 것이 관심과 리얼리티를 위한 공간을 열여준다'고 생각했기에 현실의 이해를 무디게 하는 여성의 섬세한 시선을 거부하고 사회적 약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빤히 바라보는 사진을 찍었다. 이런 그녀의 작업을 보고 사람들은 무정하고 폭력적이라 질타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실과 카메라가 가진 감정의 간극을 드러내고 그 간극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구조에 맞서나갔다. "빤히 보는 것을 금기시 하는 것은 동시에 관심을 거둬들이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인간 조건에 만연한 고통과 일탈을 인식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끈질기게 촬영했고 작업과정에서 촬영대상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디테일을 면밀히 살폈다고 한다.


이외에도 데보라 넬슨은 이 책에서 미국의 소설가인 메리 매카시와 조앤 디디온의 이야기도 함께 소개한다. 메리 매카시 이야기에서는 '사실성을 향한 집착'에 대해, 조앤 디디온에게서는 자기연민의 문제에 대한 그들의 냉혹한 논리와 강력한 도덕성을 설파한다. 이 역시 당대 주도적이었던 뉴저널리즘 아래에선 낯설고 엄격한 스타일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두 여성에게 저자는 기꺼이 헌사를 바친다.


사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와 수전 손택, 조앤 디디온의 저서를 이미 읽었던터라 저자가 그들의 글을 도덕적·정치적 미학으로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궁금했고 이번 기회에 다른 여성 지식인·예술가들의 저작들도 챙겨 읽고 싶어 선택했다. 하지만 책의 특성상 여섯 여성들이 쓴 저작들을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해야만 저자의 해석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완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루는 내용이 방대하고 차용되는 개념(어)들이 익숙하지 않아 연계독서도 필수적이었다. 또한 이 책이 여섯 명이 쓴 글들의 '스타일'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들의 저작물을 번역서로 읽으면 저자가 언급한 세련되고 품위있는 그들의 문체(문장의 구조, 서술어법, 리듬감 있는 단어사용, 표현의 절제, 아이러니 등)를 전혀 느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한 시간을 지나 완독하고 나니 1900년대 전후 사회를 지배했던 영적,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를 상상하며 그에 반하여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 용감한 여성 지식인·예술가들을 마주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터프한 스타일 뒤엔 전후 사회에 만연한 억압과 소외, 감당하기 어려운 수난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을테다. 특히 다이앤 아버스라는 사진 작가를 알게된 것은 큰 수확이었고 동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이니만큼 서로 찬사와 비판을 주고받은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있어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수전 손택의 다이앤 아버스 비평은 의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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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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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작은 마을 베어타운. 

숲과 호수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쇠락해가는 작은 도시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영광에 수치심을 느끼고 애써 침묵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힘은 바로 아이스하키. 그들은 베어타운의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이 전국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예전처럼 마을을 부유하게 재건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어느 해 3월, 드디어 베어타운의 청소년팀이 큰 대회의 준결승에 오른다. 승리의 주역은 코치 다비드와 주장 케빈. 하지만 케빈은 준결승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술에 취해 열다섯살 소녀 마야를 성폭행하게 되고 결승전날 아침 경찰에 체포된다. 마을의 재건, 아이들의 황금빛 미래를 보장해줄 '우승'을 바로 앞에서 놓쳤다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마야와 그 가족에게 분노하고 베어타운은 분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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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사실 이 책에는 초반부터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때문에 첫 100페이지까지는 쉬이 읽히지 않았다. (이 책의 전체 분량은 560페이지;;)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아이스하키'라는 목표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베어타운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통해 '공동체'라는 허상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강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지 낱낱이 들추어내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었다. 구단을 둘러싼 단장, 코치, 선수와 그 부모들에서부터 슈퍼마켓 주인, 술집 사장까지 베어타운 주민 전부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정도로 각자 하키과 관련된 내밀한 사연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하키'가 일생을 바친 스포츠(수네)요,  돌아가고픈 영혼의 안식처(페테르)다. 어떤 이에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아맛)요, 과거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프락 외)이다. 또 다른 이에겐 권력과 부를 공고히하는 도구(안데르손가족 및 구단 관계자들)이자 현실의 나약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케빈과 벤)다. 베어타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이들에게 하키를 바라고 아이들 역시 하키에 무언가를 바란다. 


문제는 '하키 우승'을 향한 집단적인, 맹목적인 질주가 낳은 베어타운의 문화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폭력을 행사하는지이다. 어려서부터 하키 훈련을 반복해왔지만 정작 프로선수가 되지 못한 어른들의 삶은 무력감과 패배감으로 가득 차 있고 무한 경쟁에 놓인 아이들은 강박적이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개인보다 팀, 팀보다 구단, 구단보단 마을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개인'이라는 존재는 철저히 억압당한다.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앞두고 케빈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마야와 그 가족들을 향한 베어타운 사람들이 분노 역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베어타운에도 희망은 있었다. 

공동체가 이끄는 대로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이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성폭력 사실을 드러낸 마야, 변해버린 마을을 부끄러워하며 마을 사람들을 일깨우려는 라모나,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진실을 폭로한 아맛, 진실을 마주하고 마야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한 케빈의 엄마처럼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거부하고 기존의 삶을 찾아 다른 공간으로 떠난 이들도 있었으니 개인적으론 그런 결말이 이 소설을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결국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는 무엇이 되길 바라며, 어떤 식으로 살아야할지' 선택의 기로를 열어둔 게 아닐까?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며 베어타운의 모습이 섬뜩하리만큼 우리 사회와 닮은 것 같았다.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묵인해온 사회문제들, 무한경쟁에 내몰린 사람들과 그로 인한 혐오, 차별, 폭력 등 우리 사회모습 역시 베어타운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베어타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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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를 눈 앞에 두고 있는 나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따금 '삶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진짜 행복한 게 아니라 스스로 '행복하다'는 주문을 외우고 있는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 찾은 책이 바로 <어떻게 나로 살 것인가>이다.

이 책의 저자 로젠 헨델 젠더는 미국 최고의 '라이프 코치'로 그녀가 개발한 코칭프로그램 '헨델 메소드'를  이용해 유수의 기업인과 헐리우드 스타를 코칭해왔다고 한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그녀만의 단계별 라이프 코칭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처음엔 '라이프 코칭'이란 개념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그녀의 코칭 노하우들은 이상적인 삶에 도달하기 위한 안내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도 이 책은 10개의 챕터가 그녀가 제안하는 체게적인 절차를 따르고 있는데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있도록 그녀가 직접 코칭했던 4명의 사례를 담고 있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

"꿈을 적지 않으면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변화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녀는 진정한 행복을 위한 로드맵에서 첫 번째로 할일은 '꿈을 꾸는 것'이라  말한다. 꿈꾸기를 멈추고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인생에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것은 삶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삶에서 이상을 포기한 부분이 하나라도 있다면 행복이 전체적인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안정적인 삶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나 역시 마찬가지리라. 

그럼 나로 하여금 꿈꾸기를 망설이게 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바로 '당신 자신' 때문이라 말한다. 자신이 써내려가는 인생이니만큼 스스로의 선택에 모든 일이 발생했다는 것. 저자는 그런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모든 걸 가질 수는 없어'라며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내면의 목소리에 저항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

내 삶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내면의 목소리를 찾았다면 다음으론 변화할 나를 믿어볼 차례다. 자신의 꿈에 상응하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능력은 개인 품성의 온전함 personal integrity에 달려있는데 스스로와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자기변명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지라 말한다. 또한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를 다스리기 위해선 그것을 밖으로 꺼내어 매일매일 '생각일지'를 써볼 것을 권했다. 나쁜 생각들은 대개 나의 과거, 특히 부모와의 관계와 연관되어 있는데 그런 생각을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정말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거짓말 목록이 있다"

저자가 다음 단계로 제시한 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솔직해져야 하는데 그동안 자신을 속여온 거짓말 껍데기를 하나씩 벗겨내야만 한다. 이 과정은 시간도 걸리고 큰 용기를 필요로 할테다. 하지만 자신과, 혹은 타인과 진실된 관계를 맺기 위해선 거짓말을 멈추고 털어내는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당신 주위를 맴도는 불쾌한 기억들과 마주해야 한다. 흔히 잊혀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들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과 관련있는데 그 기억들은 왜곡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내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렇듯 당신을 괴롭히는 거짓말, 기억, 감정의 찌꺼기를 정리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그녀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개선하여 변화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현재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것, 하나씩 털어내고 하나씩 채워나가야하는 것, 하루를 디자인하고 마무리짓듯 인생 전체를 조율해나가다보면 내 삶은 이상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저자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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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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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까닭은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일테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등장인물들의 말, 행동, 감정 등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는 타인을 향한 이해의 첫걸음이 된다. 특히 현실 세계에서, 내 주변에서 흔히 만나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는지 실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란 수많은 인간군상의 모습을 깊이있고 세밀한 눈으로 관찰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로 빚어내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나를 포함한 인.간.을 알고 싶고 그들의 우.리.라 부르고 싶은 갈망으로 가득한...


이러한 소설가의 노력과 실패를 단편소설「한정희와 나」.
대략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나'의 아내는 어린 시절 집안이 어려워지며 '마석 엄마아빠'라고 부르던 타인의 집에 얹혀 살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마석 아빠의 건강이 악화되자 그들이 입양한 아들의 딸인 한정희를 잠시 맡아주기로 하는데 '나'는 정희를 보며 마음아파하고 가족처럼 보듬어주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중 정희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정희를 보며 당황해한다.

 

남의 아이를 맡아서 보살피겠다는 마음, 그 아이를 보며 아내(타인)의 어린 시절 아픔을 상상하는 경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은 관계...이렇듯 주인공 '나'는 낯선 아이 '정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정희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엔 그 아이를 온전히 보듬을 수 없음을 깨닫고 작가로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글을 쓸 수 밖에 없다면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기호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기호 작가의 「한정희와 나」는 제17회 황순원문학상의 수상작으로 이번 작품집의 표제작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이기호 작가의 자선작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역시 흥미로웠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권순찬이라는 남자, 아파트 주민들은 떼인 돈을 찾아야하는 그에게 동정을 느끼고 돈을 모아 건네지만 그는 받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걱정하고 불안해 해야하는 사람은 권순찬이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노심초사하는 사람은 착.한. 아파트주민들 뿐이다.

 

작가는 권순찬을 도우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권순찬을 도와주고자 하는 착.한.사람들 마음 저변에 깔린 이기심과 독선을 들추어낸다. '나의 정서적 불편함을 초래하는 사람이 사라졌으면..', '내가 금전적으로 도와주면 저 사람은 분명 감사하게 생각할거야', '나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 따뜻한 사람이야'... 나의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구별짓고 행동하는 오만함을 경계해야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이 수상작품집에는 이기호 작가의 두 작품 뿐만 아니라 후보작이었던 8편의 단편소설도 함께 실려있었다.

 

여덟 작품 모두 지금 우리 시대가 마주한 문제들 - 여성, 혐오, 폭력 등 -을 다루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문제를 겪는 대상(타인)을 무례한 관심으로, 혹은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대하는 이들이 모두 그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언니, 아들, 처가식구, 옆집 이웃, 마을사람들...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들을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들이지만 결국은 멀찌감치 떨어져 서있거나 또다른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어떠한 사이, 어떠한 노력으로도 타인과 나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는 것인가?
그 치열한 사유 시작에 작가와 독자라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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