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했을 때 불편함을 느껴요." 상담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오래도록 내가 존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깊이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 믿음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상담 치료의 과정이었다. - P193
‘나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대해주자. 작가가 되기 전, 어느 수도원에서 봉사자로 지내면서 나는 그렇게 썼다. - P197
나는 은희가 부모의 무관심과 오빠의 폭행 ‘때문에‘ 성장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는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가있다. 어떤 영웅 서사처럼 상처받은 사람이 그 상처를 ‘극복‘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 P198
몇 달이 지나고 ‘나‘의 가족이 독일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 는 마지막으로 만난 투이에게 말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라고. - P205
‘죽이지 마라. 아이들은 죽이지 마라. 전쟁에도 룰이 있는거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했으면 그렇게 막무가내로 죽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받은 교육은 이 새끼들도 크면 다 베트콩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애비가 베트콩이면 자식도 베트콩이다. 왜 다 베트콩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우리야말로 베트남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러 간 건데, 우리는 도대체왜 그들을 죽였습니까." - P209
한국의 근현대사는 여전히 쓰이는 중이다. 국가 폭력과 폭력의 희생자들은 충분히 기억되지 못한 채 쉽게 잊혀왔다. 폭력은 망각과 왜곡에 의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가해자들에게는 여지를 주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는 무력감과 차별을안기는 방식으로. - P213
기억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자 해석의 문제이기도 하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글을 통해 ‘유대인 사망자 육백만 명‘이라는 숫자 아래 가려진 개개인의 삶과 존엄을 인식하게 했다. 그의 글은 모든 포로에게 같은 죄수복을 입히고 머리카락을잘라 모두를 몰개성한 물질적 대상으로 전락시킨 SS의 수법에대한 저항이었다. - P219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자한 시도는 어쩌면 그 의도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냉혹하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동정‘해줄 수는 있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들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반응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일정하게 반복되어왔다. - P231
지나간 일은 잊고 ‘빨리빨리‘ 미래를 향해나아가자는 태도, 참사를 국가나 도시의 ‘체면‘ ‘이미지‘ 문제로 인식하고 보이지 않도록 치워버려야 한다‘는 폭력적인 생각 또한 긴 시간 동안 반복되고 있다. - P236
그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참사를 유가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곳에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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