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에든버러에서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항공편을 검색했다. 핀란드의 헬싱키 반타공항에서 환승해 에든버러로 가는 경로가 가장 빨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수화물을 부치며 티켓을 받았다. 2024년 11월 30일 오전 열한시 오십오분 비행기였다. 검색대를 통과한 뒤 탑승을 기다리며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 P235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충분히 슬퍼하되, 우리가 곁에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 P236

나는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아.
신이 그를 보호할 거야.
그리고 그도 신을 보호하겠지. - P239

천재 과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인류 멸망을 앞두고 남길 단한 문장으로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를 선택했다고한다. 나는 그 문장이 좋다. 나는 원자의 합일 뿐이고 죽으면 흩어진다. 향기는 흩어졌다. - P240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여기서 너를 보고 있을게. - P241

많은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문법을 지키지 않고단어만 나열해도 뜻이 통한다. 빈틈은 표정이나 손짓으로 채울수 있다. 나를 무뚝뚝하거나 퉁명스러운 사람으로 오해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언어와 국적과 성별이 뒤섞인환승터미널에서 나는 모국어가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자유롭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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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가 붙거나 틀에 박히는 것을 거부하고, 내 마음과눈을 활짝 열고, 모험과 변화를 계속할 것이다. 문제는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방해받지 않고, 나 자신의 참된 차원을 발견하는 것이다."
-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79 - P65

"여성들은 아이들의 요구, 아이들의 몸, 그들의 아름다움, 그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보살핌, 그들 각자가 필요로 하는 사랑에 압도되며, 그로 인해 죽는다."82 - P67

나는 언제부터 내 목소리를 잃었을까? 아마도 수년에 걸쳐 조금씩 희미해진 것 같다. 웃음, 고함, 시끄럽고 직설적인 말들은 나의 음성 레퍼토리에서 사라졌다. 나는 현명해진 걸까? 아니면 체념한 걸까? 나는 누군가가 내 말허리를 자르고, 내 "입에 못을 박고", 나 대신 말하고, 나에게 삶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에 지쳐 버렸다. 내 입을 막은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의 것일까? 내 손이다. - P71

불손한 사람들은 제도를 동요시키고, 풍속을 뒤흔들며, 굳게 닫혀 있던 옷장 안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으려 한다. 그들은 틈새로 끼어들고, 여백에 글을 쓰고, 틀 바깥으로 빠져나온다. 규칙을 벗어나고, 경계선을 넘나들고, 땅에 그어진표시들을 비웃으며 하늘을 향해 눈을 돌린다. - P76

그러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침입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무언가를 부수는 일이며, 단순히 도망치거나 탈주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를 향한 틈을 만들어 열어젖히고 그로부터 빛이 새어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 P80

"시장의 끝자락에 도서관 문이 있었어요. 어느 날 추위에 떨다가 그곳에 들어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는데 그것이 습관이 된것이죠. (...) 하루는 책을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결국 회비를 내고 대출카드를 발급받은 후 책을 잔뜩 들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자, 이게 바로 무단 침입이라는 것입니다." 106 - P82

"그 경우 우수한 성적은 승리가 아닌 놀라운 일시적 행운처럼, 일종의 비정상처럼 받아들여지죠. 아무튼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세계에 있는 거니까요." - P85

왜냐하면 모조품 같은삶을 산다는 느낌이야말로 새로운 필요에 대한 감각, 실존과 맺는 다른 관계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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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는 빗장을 열면서 그가 자신을 내보낸 다음 문을 잠가버릴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를 먼저 내보내고 뒤따라 나갔다. - P75

가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주전자를 가스불에 얹고 냉장고 깊숙이에서 케이크를 꺼냈고 기지개를 켜면서이제 그의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 P81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12월이었고, 또 한 해의 막이 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하고 싶었다. 분명 실망스러우리라 생각했다. - P84

"당신 같은 타입 알아요." 그가 말했다. "야성적이죠. 당신은 야성적인 중산층 여자예요." - P89

"당신," 그가 말했다. "탐험에 소질 있던데요." 그가 소파등받이 뒤에서 몸을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다. - P95

그날 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사람처럼 게걸스러웠다. 그가 하지 않을 일은 없었다. - P98

그는 손에서 힘을 뺐지만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낮의 빛이 다 빠졌다. 황혼이 하늘을 물들이고 대낮의 빛을어둠으로 바꾸려고 꼬드겼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 동안걸으면서 일요일의 고요함을 느끼고 얼음장 같은 바람 때문에 나무가 긴장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P105

자꾸 바뀌는 빨간 숫자를 보았다. 고양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눈이 사과 씨처럼 새까맸다. 그녀는 남극을, 눈과 얼음과 죽은 탐험가들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런 다음 지옥을,
그리고 영원을 생각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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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지만 그전에 마치 바위를 타넘듯 순식간에 내 왼 발등으로기어올라, 잠깐 동안 내 발목을 한번 휘감았고, 그러고 나서 어떤이유에서인지 방향을 바꾸어 수풀이 아닌 강물 속으로 스르르 미끄러지듯 들어가, 살아 있는 듯 현란하게 반짝이는 무지갯빛의파편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가 조금의동요도 보이지 않았기에 자신은 남몰래 감탄하고 있었다고. 하지만나는 맹세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수면에서 어른거리던 작고 환한 빛 조각 하나가 살짝 고개를 치켜들듯 허공으로 떨어져나와 홀로 빠르게 멀어져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 P195

또한 불행한 사건이나 죽음은 반드시 살인사건이 아니라도 일어나며, 신기하게도 악의나 부주의와는 무관해 보이는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는 느낌을 그는 받았다고 했다. - P198

했다. 내 눈이 오직 눈먼 거울인 것처럼 생각하라고, 눈먼 탐정이내게 말했다. 그러면 정반대의 것이 비친다. 지금 여기가 아닌 그무엇이 보려고 애쓰지 말라고 눈먼 탐정은 말했다. 정반대의 것은 우리의 눈에 스스로를 저절로 비추기 때문이다. - P207

그가 준 동전을 한 손에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닦으면서 길가 바위에 앉아 있다. 멀리 내게는 들리지 않는 곳에서, 학교가 시작하는 종소리는 이미 울려퍼진 다음이다. 나는 떨어져나왔고, 나는 멀어진다. 기나긴 하루가 될 것이다. 석양 없는 저녁과개 없는 밤이 찾아올 때까지. 먼길을 갈 것이다. - P222

슬픔에 잠긴 채 길을 가던 두 남자는 어스름 속에서 홀로 걸어가는 한 행인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그리 슬퍼하느냐고. 남자들은 스승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스승이죽었고, 그것도 아주 참혹하고 비참하게, 그러므로 그의 죽음을슬퍼한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들은 길 위에서 만난 그 행인이 바로 그 스승인 것을 알아차린다. 죽은 자와의 예고 없는 해후.
두 남자 중 한 명의 이름은 클레오파스라고 했다. 그들은 예루살렘 인근의 마을, 클레오파스의 고향인 엠마오로 가는 길이었다. - P223

익숙한 인식이나 감정의 회로를 이탈하며 헤매는일은 미지에의 모험에 근사하다. 그러하니 배수아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손에 넣는 일(소유)이라기보다, 자기(라고 여겨지는 것)를 내어놓고, 약간의 불안과 설렘을 감각하며낯선 세계의 윤곽을 더듬어보는 사건에 가깝다. - P227

. 하지만 그 모든 반복과 변주 속에서도 모든 만.
남과 작별은 처음과 같지 않은가. 우리는 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듯 만나고,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는 듯 헤어진다. - P232

. 때론 전모를 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감각하는 일인지 모른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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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수, 이거 확실한거야?"
"저쪽 변호사가 직접 보낸 거야. 한국 오자마자 그동안 모아둔 자료 싹 제출했나 봐. 결과 뻔하다고 빨리 합의하자고 압박하는데……."

아빠, 저 서울 왔어요! - P76

"재이가 나한테 이러는 거 처음이야. 나한테 뭘 하자는 얘기를 평생 안 하던 애가 먼저 만나자고 한 거라고, 잘은 몰라도 보내기 전에 고민 많이 했을 거야." - P79

아빠 노릇 하지 마. - P86

"내가, 아니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그렇지." - P91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이에요. 다 빠바쎄니아."
재이의 입 모양을 따라 수한이 천천히 따라 말했다.
"다빠, 빠바쎄니아."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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