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중에 화가가 된 이가 있다. 오랜 친구가 대부분 그렇듯,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몇 년에 한번쯤 만나는 가늘고 긴 인연을 어쨌든 이어오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중간쯤 되는 무료하던 시절, 우리는 때때로 각자 읽을거리를 들고 만나 해가 뉘엿뉘엿저물 때까지 책을 보다 돌아오곤 했다. 읽을거리 중에는 가끔 『뉴턴』도 있었다. 진홍색 테두리의 과학 월간지. 그 안에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신비로운 성운과 은하의 사진이 잡지의 두 쪽, 때로는 네 쪽에 펼쳐져 있었다. 태양계 저멀리 타이탄이라는 곳에도 험준한 계곡과 바다가 있다고 했다. - P14

"내가 여기 점을 몇 개 찍었죠?"
"한 개요."
맨 앞에 앉은 학생에게 똑같이 물었다.
"두 개요." - P18

오늘 내가 할 일은, 애써서 받은 그 ‘연구 면허‘가별무소용인 종잇장이 되지 않도록 연구자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뿐이다. 평가하고 평가받는, 누구나와같은 그 삶 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이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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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의 책에 자신의 시간을내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가끔 무언가를 용서받는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 한 문장을 아직 찾지 못했으므로, 나는 이제 또 한 권의 책을 만들 수밖에 없으리라. - P14

최근 어느 글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문학이위로가 아니라 고문이라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 말에 보충설명이 필요해 보여서뒤늦게 덧붙이려고 한다. 문학의 기능들 중에 위로라는 것도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더라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을 분들이 많을 것이다. 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분들일수록 더욱 그렇지 않을까. - P50

그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있었다.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트라우마를…’이라는 문장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오직 ‘트라우마는 나를…‘ 이라고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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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때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그 안도의 감각은 이곳에 도착한 이후 나를 계속해서 감싸고 있지만, 여전히 그 감각의 근원을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 P39

루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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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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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로 그리고 타인이자 전체의 부분으로 기꺼이 살고 쓰려는 이의 마음과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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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든 상수는 참아야 했고 참을 수 있었다. 어차피 문제는 굴욕의 대가이지 굴욕 자체가 아니지않나. 상수는 옅은 후회마저 느꼈다. 왜 그때 좀 더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당할 것을 모르지도 않았는데, - P9

역시나 그 일 때문일까. 수영이 이전과 달라진 듯한 느낌에 상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무렴 그 일 때문일까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 말고는 수영을 달리 설명하기어렵지 않을까. 어쩌면 예쁜 여자들 특유의 변덕이거나,
흔한 밀고 당기기일지도 몰랐다. 그런 쪽으로 상수는 영자신이 없었고 상대방이 수영이라면 더욱 그랬다. - P11

상수는 양치 거품을 내뱉다 말고 거울을 봤다. 허연거품 비벼진 얼굴이 지지리 못나 보였다. - P17

었다. 상수는 양치 거품을 내뱉다말고 거울을 봤다. 허연거품 비벼진 얼굴이 지지리 못나 보였다. - P17

솔직히 수영도 알고 있지 않을까? 은행에서 일하면 돈맛을 모를 수 없었다. 얼마나 맵고 짠지, 또 달달하고 상큼한지. 창구에 앉아 있으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맡기러 온 사람과 꾸러온 사람이 한눈에 꿰뚫려 보였다. 그래, 그런 거겠지. 아직 젊을 때, 시간 있을 때 어리고잘생긴 남자와 연애 좀 해 보고 싶은 거겠지. - P23

"그러니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고, 좀!" 경필은 담배를탁탁 털어 껐다. - P33

상수는 닥치고 가만히 있지 못했다. 수영을 좋아한다고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간 곱씹던 후회까지 더해져 감정은 더욱 확실해졌고 뭐라도 해야 했다. 이대로 가만히있을 수는 없었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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