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민, 종회에 속기사로 입사한 민이 있었다. 점등식의 핵심 업무는 욱이 아니라 민이 맡았다고 경 혼자 줄기차게 부러워했던 걸 보면 민은 아마도 등과 초를 관리하는 팀에 들어갔을 것이다. 민은 업무 얘기를 하는 대신 경과 현을 보면서, 그래도 둘은같은 팀이어서 좋았겠다. - P315
마당에 햇빛이 반 찼을 무렵 유정은 디엔과 함께 아이들을 깨워오뚜기 미역국라면을 끓여먹었다. 아이들은 어제 휴게소에서 산 신비아파트 스티커북을 펼치고한참을 놀았다. - P272
일 년 전 이맘때 그 산문을 발표한 이후로 유정은 재상이 삼촌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었다. 마지막 통화는 수상 축하 전화였다. 잘했다고, 장하다고, 재상이 삼촌이 말했다. 유정은 감사하다고답했다. - P246
"넌 누구니?" ... "엄마, 이 애기는 누구야?" "나 애기 아니야." 옆에 앉은 애가 말한다. "너 애기 맞거든? 아직 기저귀도 차고 있는 게." "나 애기 아니야!" - P217
‘아이 문제가 다 제 상처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혹시 저도 센터에 오래 나오면 그렇게 말하게 되는 건가요? - P140
수미는 자신의 재난지원금을 나에게 와서 썼다. 그리고 나는 지금 수미를 만날 수 없다. - P51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윤이가 말했다. "엄마, 어제 서윤이가 고양이 카페에 갔는데, 거기 고양이 중에서…………" 아이는 고양이 얘길 계속하고 싶어했지만 나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누구랑 갔대?" - P25
아이를 으스러지게 껴안는다. 볼을 비빈다. 코도 비비고 이마도맞대고 입술에도 뽀뽀, 뽀뽀,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두 손으로 귀를 당기고, 쓰다듬고, 다시 껴안고, 터뜨릴 듯이 끌어당긴다. "숨막혀, 엄마." - P20
나는 거실 저쪽에서 도란도란 놀고 있는 윤이들을 아득한 마음이 되어 쳐다보곤 했다. 이젠 다 컸어. 그치? 쟤들 어릴 때 우리 얼마나 힘들었어. 지금은 그때보다 낫잖아. 그렇잖아? 잘 놀다가도 툭하면 싸우고, 식탁으로 조르르 달려와서한 명이 한 명을 일러바쳤잖아. - P15
진아씨가 주문한 초기진압 소화용구는 택배 상자에 그대로 담긴 채 내 집에 있다. 소화기를 주문하는 마음과 이제는 소화기가 필요 없어진 마음, 진아씨, 그 사이엔 뭐가 있는지. - P11
"살구꽃이 피면 톡 하겠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기약만 있다면 더 오래도 기다릴 수 있다고, 겨울이 다가온창밖을 보면서 생각하고 생각한다. - P45
"요새 인싸 맘들은 아이를 던지면서 찍는대요." 유정이 카메라 앱을 열며 말했다. "던져보세요. 애를 던져보세요." - P250
"얼굴 익을 만하니까 헤어지네요." - P308
눈으로 만든 사람」과 「나와 내담자」 「내게 내가 나일 그때는 ‘폭력 생존기‘ 3부작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자신을 충분히 방어할 수 없었고, 일어난 일을 충분히 의미화할 수도 없었던 어린여자아이에게 친족으로부터 성적인 폭력이 가해졌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 그 여자아이는 딸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때의 일이 다시 찾아온다. - P364
여기에 후회가 없을수 없겠으나, 이 후회 속에서 자아는 무한히 높아지고 무한히 넓어진다. 그 깊이와 넓이로 최은미는 폭력을 생존으로, 생존을 구원으로 새롭게 번역한다. 자신을 무너뜨린 허공을 팽팽하게 가르며 찢고 나온 이 구원의 글쓰기만큼 생생하고 활기차고 투명하게아름다운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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