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의 상상은 거기서 멈춘다. 와이프일 리 없지. 남편이라면 자신을 결코 와이프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운동권 남자들은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니까.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니까. 동지의 대체어로서의 그친구. 그렇게 부르는 한 자신은 아직 젊고, 아직 투사니까. - P69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렸다. 글만으로는 내 편을 알아볼 수 없다는 무력감과 글이 발산하는 강렬함이 진정함의 징표가 되지는 못한다는 당혹감이, 진짜에, 글과 글쓴이의 심장이 하나인지에 더욱 집착하게 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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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렇게 마음의 슬픔에 저항해가던 세미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설기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둘은 한동안 서로를 살폈다. 괜찮을까, 마음을 주어도 사랑해도 가족이 되어도 괜찮을까, 날 아프게 하지 않을까 - P258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때만 간다고 대답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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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 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하고도 가능한 일은, ‘평상시에 누군가의사랑이 다른 누군가의 사랑보다 덜 고귀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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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여 물을 건너지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 P32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어떤 일은 일어난다는 것.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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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겨울, K대학 도서관 정문에는 ‘장기 연체자‘ 명단이 붙는다. 맨 밑에는 굵은 글씨로 "상기의 사람들은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구지경은 둘째 칸에 있고 연체 일수는 2558일. - P45

하지만 앞으로 나올 말은 분명히 들었다. 누군가 지경을 두고말했다. "걔는 문진이 없어서 안 돼." 사실 누가 말했는지도 또렷이기억나지만 여기는 그를 위한 자리가 아니며 그의 말 정도만 남겨도 충분하다. - P47

여름이 끝나갈 무렵, 오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니들쌀 다 떨어졌지?"
오지는 쌀 떨어질 때를 귀신같이 알았다.
"김형은 아직도 잡곡밥 못 먹고 흰쌀밥만 먹지?" - P49

"언니, 미안요."
"너 여기 놀러 나와?",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가 네 놀이터야?"
"언니 아니야?"
"됐고, 이것만 말해. 너 텍스트 읽어 왔어. 안 읽어 왔어?" - P53

규의 이른 귀가가 애들 때문인 걸 모두가 알았다. "잘난 척해봤자지두 엄마지, 뭐" 했던 건 누구였나. 규는 창피했고, 창피함을감추기 위해 작별인사가 길어졌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도 아쉽지. 근데 어째. 일이 남았는데. 오늘도 밤샘 당첨이야. 핫식스나 사서 들어가야지. 정말이지 왜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니." 사람들은 규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 P61

규가 웃으며 말했다.
"나와요, 나와 나도 나오고, 지경씨도 나오고."
나도 나오고, 너도 나오고.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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