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너그러운 음식이다. - P39

. 특히 어리굴젓과 삭힌 고추장아찌가 손가락 김밥과 잘 어울린다. - P40

"어떡해? 김밥을 안 썰고 그냥 가져왔어."
그러자 그 친구가 태연하게 말했다.
"일부러 그냥 달라고 했어. 그렇게 먹는 게 더 맛있어서." - P45

"부침질 해줄까?" - P51

"밭에 땡초가 열릴 텐데요∙∙∙∙∙∙ 그 땡초 따 땡초전을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 P57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누룽지와 명란달걀찜을 만들어 먹으면 내상을 입어 열을 뿜던 위장들이 보리수그늘 아래 돌멩이들처럼 서늘해진다. - P65

"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면이 땡기나 모르겠네." - P76

나도 외갓집 여인들처럼 나이가 드니 왜 이렇게 면이 ‘땡‘기나 모르겠다. 특히 여름에는 그렇다. 그래서궁여지책으로 물냉면 대신 해 먹는 게 냉잔치국수다. - P83

서울에서도 물회를 몇 번 먹었는데 영 그 맛이 안났다. 회의 질과 국물 맛을 떠나 왜 서울의 물횟집들은 국수사리마저 그 모양으로 내놓는지 나는 이해할수 없다. 주문을 받은 후 삶지 않고 미리 삶아 퉁퉁 불은 국수를 손님에게 내놓는 세계관이라면, 회의 싱싱함과도 담쌓고 사는 세계관임이 분명하다. - P90

불행히도 내 몸은 그 욕망을 따라주지 못했다. 내 몸은늘 허약하고 비겁하고 차가웠다. 그래서 나는 내 입안의 작은 동굴 안에서만이라도 그 열기를 아낌없이 발산하고 싶었던 것이다. - P102

냉장고에 넣고 서너 시간 말렸다 무쳤더니 제법 꼬들한 맛이 나 한동안 그렇게 했다. 요즘엔 한결 수월하게 애인을 불러 짤 것을 명한다. 애인이 인정사정없이쥐어짠 오이지는 꼬들꼬들을 넘어 오독오독이다. 정말 내 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이 친구가 악력 하나는 타고났다. 그러니 날 놓치지 않고 잘 붙잡고 사는 것이지싶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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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를 시키는 게 아니었는데 삼겹살을 앞에 두고 참지 못했다. 혜미도 내가 따라준 술을 거절하지 않고 마셨다. 그러고보니 이미 아이를 지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군말 않고 마셨을 것이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조바심이 났는지 혜미가 다시 말했다. - P207

혜미와 나는 운전면허 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도로 주행 연수를 받기로 한 첫날이었다. 무슨 일인지 강사는 약속한 시간이 십 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혜미도 나와 같은 처지였다. 나는 대기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혜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 P209

"다 읽지는 못했지만요.‘
혜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다작하는 작가잖아요. 언제 그렇게 쓸 시간이 나는건지 모르겠어요." - P211

장대영님내내 건강하십시오.
2022년 세밑K - P214

"내일은 뭐 먹지?"
외쳐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P219

"정말 우정으로 그런 것까지도 하나요? 친구를 위해서 어떤일까지 해보셨는데요?" - P222

"신은 독심술 못하는 거 같다며. 그럼 소문내야지.
"안 돼...... 그건 너무 남사스러운 일이야…………… - P227

너에게는 비밀이 있다. 너는 아직 모르는......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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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종종 콧수염 뒤로 숨곤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콧수염이 자신을 지켜 준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열에 아홉은 콧수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었다. 양팔을 벌린 모양의 풍성하고 잘정리된 콧수염을. 그러나 콧수염 이외의 다른 특징을 물어보면 아홉 중 일곱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 P9

집으로 돌아간 콧수염 남자는 면도기를 손에 쥐고 거울을바라보았다.
콧수염은 아무도 해치지 않아. - P13

콧수염 남자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항상 서니사이드업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주었다. 기포 하나 없이 맨들맨들하고 보름달을 닮은 노란 노른자가 중앙에 자리 잡은 아주잘생긴 계란 프라이를. - P19

콧수염 남자는 가본 적 없는 곳의 먼 과거를 떠올렸다. 이집트를 침략한 페르시아 군대가 고양이를 앞장세우고 품에는 고양이를 한 마리씩 안고서 고양이를 그려 넣은 방패를 높이 들고 진격하는 모습을. 고양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이집트의 군대는 차마 공격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고 전해지는 역사를. - P23

어른이 꾸는 꿈은 쓸데없이 현실적이고 좀 시시한 구석이있단 말이지.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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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 P137

(살아 있으므로)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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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사람은 이제 내가 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말할 때, 사랑이라는 그 텅 비고 공허한 말을 채우는 세부적인 것들을 나는 떠올리고 있다. - P155

문득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과장님은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신가요?
살아 있다면 여든은 훌쩍 넘은 나이겠지. 겨우 그 정도의말로 뭐가 바뀔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금방 알아챈다. - P159

마침내 찾은 것은 찢어지고 더러워진 두 장의 표창장이다.
다행히 작은 공로패 하나도 찾아낸다. 공로패의 꼭대기 부분이 부서져 있다. 모두 젠이 아끼던 물건들이다. 나는 그것들을휴지 조각으로 대충 닦아 낸 뒤 가방 한쪽에 담는다. - P162

나는 그 이야기도 듣는다. 듣고, 또 듣고 계속 듣는다. 얼마나 들어야 나도 비로소 어떤 말인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 P169

훌륭한 삶요? 존경받는 인생요? 그런 건, 삶이 아주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에요. 봐요.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 보면 다 똑같아져요.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세요. - P173

직원에게 이틀이라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젠을 보살필 준비가 된 것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내가 각오하고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준다면얼마나 좋을까. - P177

아니요. 저희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이분은 요양원에서 제가 보살피던 분이세요. - P180

딸애가 내 손을 잡는다. 결국 울음이 새어 나온다. 나는 딸애의 품에 안긴 채, 그러나 젠이 누워 있는 침대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어린아이처럼 운다. 그렇게 울 때에 나를쾅쾅 때리며 지나가는 수많은 감정을 나는 끝내 딸애에게 다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 P189

그래도 정하셔야 해요. 대표로 이름도 올려야 하고, 저희도따로 기록하는 데가 있어서요.
제가 할게요. 그럼.
딸애가 나선다.
상주는 보통 남자분이 하시는데요. 남자분은 안 계세요? - P191

이렇게 있어줘서 고맙구나.
나는 간신히 입을 연다. 그 애는 다시 앉아야 할지,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엉거주춤 서 있다. 나는 앉으라는 손짓을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 내게 너에 대해서 물을 때, 너와 내 딸에 대해서 물을 때, 여전히 무슨 말을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아니다. 알고 있지만,
알게 됐지만, 여전히 그 말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 P194

지난해 여름 이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쓰는 동안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해라는 말 속엔 늘 실패로 끝나는 시도만 있다고 생각한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도 끈질기게 지속되는그런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 P199

가족 계획의 구호처럼, 아들이 없는 어머니는 내심 ‘열아들 부럽지 않은 딸‘을 기대한다. 그 딸이 공부를 잘한다면 더욱 그렇다. 아들이 부럽지 않을 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한 딸,
그래서 여성으로서 결혼에도 성공한 딸을, 딸의 어머니는 바란다. 어머니에게 하나 있는 딸은 아들과 딸에 대한 기대를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남근적 딸‘이다. - P206

그래서 그 어머니가 아직은 레즈비언으로서의 딸을 이해하는 것을 "떳떳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내 딸의 삶을 내가놓아 버리는 것"으로 여긴다고 할지라도 조금 더 기다려 볼필요는 있지 않을까. "상관도 없는 남"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일 수 있다는 것을 안 어머니는 하루하루의 일을 무사히 마무리해 온육체의 힘으로 "기적과도 같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
무엇보다 어머니는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각자 자신이 잘할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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