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드라마에도 수많은 조연이 있다. 주인공의 가족이나 친구, 혹은 주인공이 다니는 일터의 누군가, 빌런의 수하와 그 수하의 수하. 이보다 더욱더 작은 역할도 많다. 극 중에 이들의 배경이나 삶의 궤적까지 상세히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이들에 대해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꽤 상세히 소개해놓은 글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과연 누가 열어볼지 모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작가가 정성스레 꾸려놓은 개개인의 세계인 것이다. 가령 MBC 아침드라마 <이브의 사랑>에는 주인공 진송아의 집 입주도우미의 딸 강세나가 조연으로 나오는데, 조연인 세나보다도 훨씬 비중이 적은 그의 이모 오영자 씨에게도 아래와 같이 복잡다단한 세계가 깔려 있다. - P64

언젠가 페이스북에 가끔 뜨는 ‘남선우 님의 N년 전 오늘‘에 등장한 이십대 후반의 나는 낯부끄러운 실수담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은 뒤
"병신같이 왜 그랬을까"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 후 장애인 친구를 여럿 사귄 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병신‘이라는말이 그들을 얼마나 힘 빠지게 하는지 알고 있다. N년 전 글을 보면서 나는 그 실수를 저질렀을 때보다 훨씬 더 낯이 부끄러워졌다. 다시또 N년이 흐르고 또 언젠가 지금 나의 언어나 행동을 살펴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어쩌면 이 책도 남들이 읽지 못하도록 있는 대로 사 모아 없애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 P70

그런데 며칠 후 누군가가 내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감사합니당~~"
드라마에서 어머님이자 며느리인 경숙을 연기한 김혜리 배우였다. 김혜리 배우는 아마도 #어머님은내며느리 해시태그를 검색하다가내 계정을 발견하신 것 같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황급히 내가 쓴 글을 다시 살펴보았다. 칭찬이었다고 항변하는 것만으로는 이 부끄러움의 원인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말걸, 제목으로는‘ 이라고 하지 말걸, 무엇보다도 ‘막장‘이라고 하지 말걸….‘
그럼에도 칭찬으로 여기고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아주신 너그러운 김혜리 배우님께 부끄럽고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가 드라마 〈질투>를 보며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주인공 하경이보다 좋아했던 체리 언니가 아니던가…. 335 주 전의 나는 용기를 내어 김혜리 배우님께 "어린 저에게 세상에서 우주에서 가장 예쁘셨던 배우님, 여전히 정말 너무할 정도로 아름다우십니다!!"라는 댓글을 다시 달았고, 배우님은 "우~~~~ 왕~~ 넘 넘치는 칭찬인디요 ???^^ 더더더!!! 열씨미 하게씀당~^^" 이라고 재차 답하셨다.
‘어린 저에게‘라고 한정하지 말걸, ‘여전히‘라는 말 붙이지 말걸, 외모 칭찬하지 말걸….‘ - P71

국어사전에서 ‘막장‘을 찾아보니, 다섯 가지 뜻이 나왔다. ‘선자 서까래의 마지막 서까래‘가 첫 번째 뜻이고 ‘갱도의 막다른 곳, 혹은 거기서 하는 일‘이 두 번째, 그리고 ‘끝장‘, ‘허드레로 먹기 위하여 간단하게 담근 된장‘, ‘마지막 장, 특정한 상황의 마지막 장에 다다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가 이어졌다. 아마도 막장 드라마는 막다른 곳에 있는 드라마거나 드라마라는 장르가 갈 수 있는마지막 장에 다다른 드라마, 끝장난 드라마, 혹은 허드레로 방영하기 위하여 간단히 찍은 드라마라는 의미일 게다. 극단적인 설정, 조악한세트, 한정된 배경 등 아침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한계나 단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막장‘ 드라마가 그것이 막다랐다거나 (실제로 아침드라마의존립은 한참 전부터 막다른 길에 놓였다), 끝장났다거나(실제로 아침드라마는 2021년 9월에 끝장났다), 허드레라는 의미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판을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뚜렷한 이유와 근거를 들어 성의 있게 써 내려간 비평과 ‘막장이네‘라는 손쉬운 평가의 무게는 엄연히 다르다는 말이다.
한편, 2009년 3월 3일 대한석탄공사의 조관일 사장은 언론사에 대대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막장 드라마, 막장 국회 등 어떤 대상의 속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막장‘ 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달라는 간절하고 강력한 호소문이었다. - P72

널따랗게 드러누운 와불과 천불천탑이 있는 화순 운주사는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올려다보기 어려울 만큼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가 좁은 길 양쪽에 촘촘히 자라 있는 남이섬 산책로에는 그곳이 <겨울연가 촬영지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사인물이설치되어 있다. 남산의 ‘삼순이 계단 과 홍대의 ‘커피프린스 골목은 이제는 거의 지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드라마 속 촬영 장소는 드라마의 생명을 현실로, 그리고 오늘로 연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밥집 여천식당이 있는 용산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의 아저씨>가 전해준 추운 겨울의 먹먹한 감정이 떠오르고, 예전에도 즐겨 찾던 명지대 앞 이정희떡볶이가 멜로가 체질에 나온 이후 새삼 그곳에만 가면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일 테다.
그러나 매우 애석하게도, 아침드라마의 촬영 장소를 일상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은 탓도 있겠지만, 120부작이 일반적인 아침드라마가 주 배경이 되는 장소를 실제 공간으로 섭외해 촬영을 해나가기란 얼핏 상상해보아도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아침드라마의 장면 대부분은 세트장에서 만들어지는 듯하다. 회장님의 저택도 주인공의 단칸방도 늘 똑같은 각도에서만 촬영되기에, 우리는 회장님 소파의 맞은편을 본 적이 없다. 아침드라마가 비현실적이라는 일부 지적은 그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침드라마와 현실을 이어주는 실제 장소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영하고 나면 쉽게 잊히는 원인도 얼마간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 P72

당시 우리 가족은 아침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돈까스의 향연에 괴로워했다. 광주가 하루도 빠짐없이 시켜 먹는 저 돈까스는 대체 얼마나 맛있는 것일까, 해진이 개발한 저 소스는 과연 어떤 맛이길래 저리도 반응이 좋은 것일까. 정직하고 단정한 해진의 성격 탓에 좋은 재료와 깨끗한 기름을 쓸 테니 맛있을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까 저들은 기념일에도 돈까스를 튀겨 먹는 것이겠지.…. 우리는 오늘 점심에는반드시 돈까스를 먹겠다고 다짐하며 집을 나서지만 몇 시간 지나면 그것을 금방 잊어버렸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 펼쳐지는 돈까스 삼매경에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아침에 생각했던 메뉴를 점심이 되면 잊듯이, 나는 <맛 좀 보실래요)의 종영 후 이 드라마를 다시떠올린 적이 없었다. 물론 돈까스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이름도 귀여운 드라마 속 돈까스집은몇 달 전 아침마다 우리를 깔깔 웃게 했던 드라마의 기억을 단숨에 불러일으킨 것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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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알라딘 리커버 한정판)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를 읽고 읽다 외웁니다 이제 다시 여름 언덕에서 배우게 될 것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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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쓸 땐 세상에 전언을 하러 온 사자使者인 듯 말해야 한다. 전사가 된 듯이. 혼자라서 아름다운 전사. 등 뒤로 펄럭이는 망토를 느끼기. 우아하고 묵직하게 등을 쓸어주는 바람과 망토의 합작을 느끼기. 느끼면서 다만 앞으로 나아가기. 전사. 그는 고독이라는 무대 위에 서야 한다. 홀로. - P111

갈 곳이 하나여야 해. 종이 위. 종이 위.
다른 데가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르니까.
종이 위, 혹은 종이 둘레를 걸으며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삼키며걱정을 걱정으로 삼키며갈 곳이 하나여야 한다. ‘결국‘ 이라는 내 나라, 종이 위에 세워진 시의 나라.
다 망해도 결국, 돌아갈 곳. - P114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텔레비전을 몇 시간 동안 내리 보고, 자극적인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누가 보여주는 저절로상영되는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짜고 현란하고 시끄러운 감각을 몸속에 내리 넣은 날에는 영혼의 결이 달라져 있다. 두껍고 탁하고냄새나고 건조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순한 마음, 먼 곳을 생각하는 느린 마음 같은 건 가지기 어렵다.
이런 상태의 몸에는 시(물리적인 ‘시‘뿐 아니라 우리가 ‘시‘ 라고 믿는 일 일제)가 오지 않는다. 시가 고결하고 깨끗한 거라서가 아니라시는 ‘경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굳어 있는 것. 변할 수 없는 것. 기성과 비슷해진 영혼을 시는 견딜 수 없어 한다. - P119

권고 사항:진부한 말을 늘어놓지 말 것.
특이하게 쓰려 하지 말 것.
언어의 서커스가 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소리가 지나는 복도마다 ‘정확한 눈‘ 이라는 보초를 세울 것.
문장이 음악을 타고 흐르게 할 것.
쓴 시가 자기 맘에 드는지 체크할 것.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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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작이 실망스러운 것도 아니고, 후속작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가족들은 무슨 황망한 소리냐며 기다려보라고 했지만 가능성이 없는일은 아니었다. 아침드라마는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존폐 위기를 맞아왔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라는 놀림거리가 된 지 오래고(나도 이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30분 분량을 방송해야 하다 보니 쌓여가는 참여자들의 과로(갈수록 배우들의 얼굴은 어두워진다)와 그럼에도벗어날 수 없는 조악함(배우들의 어두운 낯빛은 조명을 쓰기가 여의치 않아서일 수도 있다), 제작비를 협찬에 크게 의존하면서 생겨나는 배경적한계(거의 모든 회장님은 골프 의류 회사를 운영하고, 거의 모든 주인공은 돈까스집 또는 치킨집으로 재기를 노리고, 거의 모든 주인공 친구는 지압침대대리점을 운영한다) 등은 아침드라마의 명운을 쇠하게 만들어왔던 것이다. - P6

들이 반복될 때면 아침드라마의 뜬금없는 스토리에 깔깔 웃으며 어물쩍 시간을 넘길 수 있었다. 맡은 일을 잘 수행해내기 위해서 가면을써야 하는 것이 괴로울 때면 5천 억이 있는 가짜 부모 행세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계약 내용을 꼬치꼬치 따져 묻는 사람 한번 못 되겠는가싶고, 주인공의 공을 다 가로채는 것도 모자라 자료실에 가두고 주요 파일을 지우고 CCTV를 없애고 애인까지 뺏는 상사를 보면서 고작점심 메뉴를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내 상사는 정말 양반이다 싶고, 부모의 원수인 전 남편의 현 부인과 한 회사를 다니는 주인공을 보며,
뭔가 조금 불편했던 동료 정도는 얼마든지 와락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 P12

그동안 모든 아침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다 보았다고 자부했던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침드라마 방영 목록을 살펴보다가 2018~19년에 방영했던 강남스캔들>이라는 드라마를 제목조차 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차기작인 <불새 2020)의 방영 시점(2019년5월 말)과 내가 다시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시점(2019년 6월)이 일치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나는 백수 시기에 아침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았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에는 아침드라마를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놀랍고 우스워하던 중 오래전에도 비슷한일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 P100

이렇게 보니 아침드라마는 비극과 희극의 요소를 고루 갖춘 종합극으로서 경계를 횡단하는 급진성을 가지는 대단한 장르임이 분명했다. 서유럽 문학의 바탕으로 여겨지는 그리스 비극도 따지고 보면 아침드라마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본인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친 아버지가 바람난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인 삼촌에게 살해당하자, 그 원수를 갚는 다른 자식들의 스토리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논)도, 계급 차를 무릅쓰고 결혼에 이르렀으나 이내 바람이 난 남편에게 끔찍한 복수를 행하는 여인의 스토리(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도당장 아침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전혀 손색없을 이야기들이다. 아침드라마는 그리스 비극에 견줄 만큼 교양 있고, 희비극을 아우를 만큼 유연한 장르였던 것이다(아침드라마를 누가 왜 폐지했단 말인가!). - P17

신기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래, 비극이란 관객보다 고귀한 인물의 고통을, 희극이란 그보다 저급한 인물의 고통을 다루는 것으로 규정된다. 모두 고통인 것은 매한가지이나 인물에 대한 나의 거리가 다른 것이다. 고귀한 이의 고통에는 몰입하므로 슬퍼지고, 저급한 이의 고통에는 거리를 두므로 웃음이 난다. 그리고 이 원리가 나는 언제나 기이했다. 사람은 어째서 늘당연한 듯 거룩함 쪽에 이입하는가. 윤리적 우위라는 허상에 마음을 기대는 일은 어쩌면 그리도 쉬운가.616 목정된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아침달, 2021. 102면, - P18

그런데 아침드라마 속 세상에서 단란한 4인가족이란 그저 조연을 넘지 못하는 평범하고 밋밋한 존재이고, 대부분의 주인공이 비혼모이거나(SBS 나도 엄마야), 계약결혼을 하거나(SBS <해피시스터즈), 전 부인의 현 남편의 전 부인이었던 여자와 전 부인이 다른 남자와 낳은아이를 키우며 결혼하지 않고 살아간다(SBS <아모르 파티), 이혼가정이나 재혼가정은 너무 흔해서 명함도 내밀 수 없다. 과도한 극적 설정과 전개 덕에 ‘비정상적‘ 형태의 가족이 유독 넘쳐나는 아침드라마는 어찌 보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급진적이고 대안적인 가족의 형태를 제안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중 최고봉을 꼽자면 바로 제목에서부터 정상가족의 신화를 뿌리째 흔드는, 2015년 SBS드라마 <어머님은 내 며느리>를 들 수 있겠다. 대체 어머님이 무려 내 며느리인 상황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인지 한번 들여다보자. - P21

조금만 기준과 달라 보여도 색안경을 끼고 보기 바쁜 현실과는 달리 아침드라마 속 세상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가족도, 혹은 가족이 아니라고 해도 어느 누구 하나 경계 밖으로 밀어내거나 소외시키지 않는다. 머글들 사이에서 평생 자신이 이상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에서 받았던 환대에 비유할 수 있을까? 아침드라마는 아침마다 우리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편협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허무는 유연하고 급진적인 매체였던 것이다. - P23

아침드라마의 역사에 남을 이 장면들은 이토록 지난한 서사와 기구한 사연이 응축되어 완성된 결과물이다.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높은 확률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장면만 보고 모든 상황을 미루어 판단하는 것은 누군가의삶을 한 줄로 압축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선불리 판단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그런 장면들을 마주할 때 상대에게 맨 먼저 전해야 할 것은 성마른 판단이 아니라 이 말 한 마디가 아닐까.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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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품이 큰 나무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나무 아래 묻히고 싶어.
바다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 나무는 바다 앞에있어야만 해.
살아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마지막은 기필코 바다에서 바다까지 머무르기를. - P79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낱말에 행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행복‘이 우리에게 가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가 ‘행복’에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언가가 바로 망각이기를 바란다.
그 낱말은 죽은 조상에게 맡기고 그만 잊자고, 할 수 있다면 ‘불행’도 잊자고.
기쁘고 슬플 것이나 다만 노래하자고. - P35

창문에는 이름과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같은 것도붙고, 눈이나 돌멩이로 위장한 진심도 스쳐간다. 그것들은 숨겨져 있다가, 어두워진 창이 바깥 풍경을 지우고 내 얼굴을 비추면 그 위로 슬그머니 상을 겹친다.
그러니 나에게도 파로흐자드에게도 창문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것이 상상이고 이해이며 꼭 한 번은 거울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앞에서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는. - P132

봄이 짧다는 탄식은 어쩌면 봄꽃만을 바라보는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대개는 봄꽃 특히 벚꽃이 피어야 비로소 봄을 실감하는데, 벚꽃이 만발하는 기간은 열흘을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벚꽃이 지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이런 말을 내뱉는다. "금방 여름 오는 거 아냐? 중간이 없어, 중간이." 사실은, 중간이 있다. 꽃이 피고 지는 때만을 봄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매일 산책하는 사람들은 자연이 돌연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2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봄은 존재했다. 흙이 부풀어 올랐고 나무줄기의 색이 바뀌었다.
벌레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고양이들의 소요가 길어졌다. 동그란 물방울을 입안에서 굴리듯 지저귀는 새가숲에 새로 왔다. 봄은 단서들을 한껏 뿌리고 다녔건만,
도시의 건물 안에서는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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