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에세이
김영건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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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마음과 고운 시선 페이지를 넘기듯 살아가는 하루들의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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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이야기도 썼고, 속초에 대한 책도 썼으니, 이번에는 책읽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 P5

2년 전 겨울 한 편집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속초에서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의 책 읽기에 대해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죠. 그때도 저는 서점에서 일하던 중이었습니다. 손님에게 책을 찾아 드렸고, 옆면에 과일 이름이 적힌 상자를 풀어 책을 꺼냈고, 몇 차례 전화도 받았을 거예요. 뜻밖의 제안에 들뜬마음을 누릴 경황도 없이, 일을 하느라 더듬더듬 답변을 써 내려갔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 P5

다시 말해 서점 주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독자라는 신분증이 저로 하여금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집필을 시작하도록 만들어주었을 거예요. - P6

어떤 책은 더 나은 아빠이자 더 좋은 남편이 되고 싶어 읽었지요. 그런연유로 여기 모인 독서생활문에는 하루하루의 발랄한 기지개보다, 일터에서의 고민과 삶에서 마주한 곤궁, 내면의 성장을 향한집념 같은 것이 주로 담기게 되었습니다. - P7

저는 오늘도 서가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며 책을 꽂습니다.
책의 파도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른 채로, 언젠가 저처럼 놀랄 당신을 상상하면서요. - P8

"아빠, 이제 마감할 시간 됐지?" "아빠. 그런데 주문서는 다썼어?" 밤의 서점에서 우리는 큰 소리로 신나게 떠들고, 맨발로뛰어다니고,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을 한다. 밤이 찾아오면 서점엔 아이를 위한 새로운 막이 오른다. 까다로운 규칙들에 구애받지 않고, 엄마 아빠가 오로지 자기만을 바라봐주는 자유로운 무대의 커튼이 걷힌다. - P19

"서점이 뭔데요." - P24

내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많지 않다. 달콤한사탕 몇 개를 종이로 돌돌 말아 상자 안에 동봉하거나, 허브 티백을 책 포장 안에 슬그머니 넣는 것밖에는 부모를대신해 책을 고르는 순간만큼은 그렇게 고른 책을 포장하는 잠깐 동안엔 내 손등 위에도 눈송이 한움큼 쌓여 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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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관습적 기대에 불응할 줄 안다면 어떨까? ‘잡초니까 당연히솎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왜 함부로 잡초라고 불러? 누구기준에서 잡초래?‘라고 받아칠 줄 안다면? 당위를 둘러싼 힘의작동 원리를 간파할 줄 안다면? 다들 그렇다고 하니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믿는 대신 자신의 본능과 감각으로 느끼고 판단할 줄안다면? - P55

결말이 난 이야기를 마주하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그이야기를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것 말고는 없다. 현상 유지를 하거나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결말을 바꿀 기회가 나에게 있다면?
지난 페이지의 의미를 꼼꼼히 살피고 맥락을 부여해 다른 상상을할 공간이 열린다. 결말이 미정인 이야기만이 우리를 작가의 자리로초대한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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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는 것은 부담을 떨쳐버리니까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억눌려진 감정은 잠재의식에 숨어서 계속 활동하며 우리에게 영향을 줄 다른 길을 찾으려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의식의 심층에 숨은 억눌린 감정은 점차 우리 몸을 병들게 만든다. 마음과 몸이 얽혀 빚어내는 질병으로는 불면증, 우울증, 만성피로, 위장병 등이 있으며, 심각할 경우암까지 유발한다. - P147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분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내와의 대결을 나중 시점으로 미뤄두는 법도 배울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면의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강렬한 생각과 느낌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면 이제 그것이 온 곳으로 되돌려보내자. 이로써 우리는 통제력을 회복한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한다면 통제는 늘 반복해서 말하는우리의 거대한 주제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P149

왜 우리는 이런 행동을 보일까?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것처럼 보이기가 싫은 탓이다. 상대방과 다른 결정을내리면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지, 심지어 망신을 당하는 것은 아닐지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을더 좋아하게 되는 유사성의 원리를 떠올려보라. 실제 실험에서 그룹과 반대되는 행동을 할 때 우리 뇌에서 나쁜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발히 움직이는 게 입증되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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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창작은 무리하기와 마무리하기다.
잘 쓰지 못할까봐,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쓰기를 미루는 나를 채찍질하며에너지를 무리하게 소진하고거기서 오는 불안을 에너지 삼아결국 마무리해 내는 것. - P171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가면 답이 없어진다. 보통은 이러고다시 자버리곤 하는데 더는 미룰 수 없는 ‘오늘은 진짜 써야해‘ 날이니까…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짓말아니고 진짜 울면서 나왔다 - P175

"야, 그렇게 쓰면 안되는거야?"
"뭐가?"
"아니, 네가 방금 말한 거 쓰라고 하니까 설명적이라서 안된다고 하고, 그럼 저번에 했던 이야기 쓰라고 하니까 너무자기연민이 심하다고 하고. 뭐, 다 안 된다고 하길래. 설명적으로 쓰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솔직하게 쓰다 보면 자기연민 드러날 수도 있는 거 아냐?"
"어? 그게 아니라…" - P182

일단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나의 소설 E를 열어보는걸로 다시 시작하라고 했다. 그러면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날 돌아와 E를 열었다. 2020년 11월이었다. 다시 쓰기시작했다. 펼쳤다 덮었다, 아팠다 아프지 않았다 하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2021년 11월, 최종 원고 상태인 E를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에게 보낼 수 있었다.
E는 2022년 3월 출간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아프지않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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