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는 서쪽과 남쪽을 향해 창문이 하나씩 나있습니다. 서향 창은 침대 오른편에 있어서 잠에서깨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곳이지요. 새벽 네시 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봅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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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가만 내버려 두오Et qu‘on le laisse en paix - P18

페르스발이 찾는 건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무언지조차 모른다. 한 번도 알았던 적이 없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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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을 막연히 동경하는것은 상대의 매력과 장점 때문일지라도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연히 보게 된 빈틈을 통해서였다. 누군가의세련된 매너에서 어색함을 감추려는 몸짓을 읽었을 때, 냉소이면에서 뜨겁고 서투른 열정을 보았을 때, 강인해 보였던이가 실은 심약한 ‘새가슴‘임을 느꼈을 때. - P182

정 떨어지는 표정을 두고 ‘매력‘이라 말해준 속 깊은 우정을한번 가져본 적 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선사한 이해의 선물은 이토록 값진 것이다. - P187

당시 내가 표현했어야 할 감정은 친구가 지불한 시간과돈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것들을 내어준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나의 미안함은 자기중심적이었다. - P190

각자의 삶의 자리가 상대방에게는 살아낼 수 없는 세계인,
그렇기에 아무리 서로에게 각별한 존재라 할지라도 함께 있을 수 없는 이들의 관계 맺음. 요컨대 바다를 벗어나면 살 수없는 사람과 대지에 발 딛고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의 관계말이다. 더 나아가 나는 그것이 성(聖)에 속한 자와 속(俗)에서 살아가는 이의 이야기 같았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각자의 이해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면, 사람의 수만큼다양한 해석이 허락된다면, 나에게 그 이야기는 그런 의미로다가왔다. - P194

길이 솟아나 그대가 떼어놓는 발걸음에 가닿기를거센 바람은 그대 등 뒤로만 불어오기를 하는따스한 햇살이 그대 얼굴을 반짝이며 비추기를 - P197

그대 텃밭에 단비가 스미기를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지켜주시는 손길이 그대 위에 머물기를 - P198

"삶에는 희망이나 꿈, 온기 또는 감정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헤치고 나갈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고 어느 작가가 적었듯이,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실재하는 잔혹함 앞에서 고운마음이나 따스한 시선은 무력해진다. - P220

그래도 날마다 바치는 기도와 남루한 매일의 ‘읽고 쓰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들이 더해지고 더해지면, 언젠가 나도 종소리를 낼 수 있을까. 투명하고 밝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 P223

결혼하자는 소리가 여러 차례 입 밖으로 나오려 했으나 겨우 두 번째만남에서 청혼하면 ‘없어 보일까 봐‘ 말 삼키느라 무척 힘들었다고, 고궁 안뜰에 서 있던 십수 년 전 아내의 모습이 지금도 선연히 떠오른다고 했다.

계속 훔쳐보면 안 될 것 같아 발걸음을 떼었다. 연인에게밀어를 속삭이는 청년과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술 한 잔 걸치며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또래 아재들 사이에서, 노곤한얼굴로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의마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나도 정종 한 잔 마신 듯 마음이따끈해졌다. 다음에 후배 만나면 들려주려고 장면을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소망했다. 야자 마치고 엄마 팔에 달라붙어집으로 향하던 소녀와 친구 머리 위로 손우산 만들어주던소년과 손잡고 닭다리 뜯던 어린 연인도 여전히 그렇게 사랑하며 살고 있기를. - P256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매우 낮아 언제 패혈증이 올지 모른다고 했던 게 지난해 늦봄이었다. 골수 검사를통해 병명이 확정된 후에는 이내 휴직하고 입원 치료에 들어가리라 예상했었다. 혈연가족과 절연한 채 사는 내게 ‘환우가족‘, ‘보호자‘ 같은 단어나 ‘아프면 결국 식구뿐이야‘라는 말은 칼날같이 느껴졌다. 직장 공동체와 학생들한테서 떼어져 나와 홀로 되는 것이 투병 자체보다 두려웠다. 그런데1년이 지난 지금 뜻밖에도 공부하고 가르치고 글 쓰며 일하는 일상을 그대로 살고 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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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에서 정한 청년의 커트라인인 만 삼십오 세에 딱 걸리는 나이였다. 신청 서류를 작성하다가 사업 계획을 쓰는 칸에서한참을 망설였다. - P162

승호가 애써주었지만 이번에도 잘해볼 수가 없었다. 나는 신청일 기준으로 생일이 보름 정도 지나버려 더는 만 삼십오 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담당자를 붙들고 공고일 기준이 아니었느냐고 거의 울다시피 물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하여튼 쉬운게 없었다. 그래도 식당은 계획대로 열기로 했다. - P163

그건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니 해피 트리가 시들지 않도록 잘 가꾸어야만 식당도망하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겨났다. - P165

정말 좋지는 않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가족들이 지나치게맘 아파하며 걱정하는 꼴을 보기 싫어서 괜찮은 척 약을 파느라하는 헛소리겠지만 우리가 불행을 극복하는 방식은 태연해지는것이었다. 낫는다는 것을 믿고 그 미래가 이미 도래한 것처럼 굴기. 그렇게 하면 반복되는 불행을 점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있었다. - P167

- 미안. 그거 진심 아니었다.
-안다. - P181

하지만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는 미래만 기다리며 현재를 견디는 것은 오래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미래 쪽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래는 내가 어서빨리 지쳐 낙오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 P183

아무려나, 그 모든 걸 다 합한 것이 화영이었다. - P192

"화살표를 따라가시면 돼요."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거기서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았다. 원하든 원치 않는 삶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고 거기엔 아주많은 공을 들여야만 한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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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자주 종이컵 전화기를 만들곤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전화를 만들겠노라고 떵떵대면서요. 같이 놀자는 전화도 수줍게집 전화로 걸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때 그 종이컵 전화기는 제게 소중한 장난감이었습니다.

매일 라디오 문자창에 모르는 이의 문자가 도착합니다.
생일입니다. 축하해주세요!
오늘은 이유 없이 기분이 좋네요.
오늘 너무 힘이 듭니다.
힘이 든다는 말에서 마우스를 멈춥니다. - P17

라디오로 보내준 어떤 분의 사연이 마음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유리컵에 꽂힌 노란 소국 사진을 보내며 생각보다 오래 버텨주는 꽃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내년에는 꽃을 마음껏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한 줄도 덧붙였지요.
맞습니다. 꽃을 사는 일은 어찌 보면 꽤 어려운 일입니다. 이분말씀처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꽃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따라야 합니다. 꽃이 밥은 아니니까요.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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