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와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다. 기분이 고약했다.
죄책감 같기도 하고 소외감 같기도 했다. 차라리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드러내게 될까 봐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래도 희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남아 있지만 우리 식구에겐 그게 없었다. - P19

앞날을 걱정하는 건 태평성대에나 할 짓이다. 전시에는 그날안 죽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모르면 그걸 아는 자의 짐이 되기 십상이다. - P23

"오오라, 맞아.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 부기가 가라앉곤 했었는데 여태껏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얼마나 무식하고 못살았으면 침밖에 발라 줄 게 없었을까, 창피하고 지겨워만 했었지 그게약이란 생각은 꿈에도 안 했어." - P31

"이렇게 젊은 여성 동무를 만나서 기쁘오. 동무는 피난을 안갔소, 못 갔소?" - P35

그 겨울 내내 서울의 눈은 녹지 않았고 인민군대는 너나없이그렇게 홑이불을 들쓰고 다녔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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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다르지 않은 미래를 미래라고 할 수 없다. 미래는누군가의 꿈속에서 꾸어지는 것이다. - P44

형상이 있어야 신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영감에 의지해서 자동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작가의 지난한 수고의 과정 속으로 영감이, 은총처럼 임한다. - P47

영감에 대한 미신에서 벗어날 것. 영감을 부정하지도 말고숭배하지도 말 것. 왜곡이나 악용은 더욱 삼갈 것. 모독하지말 것. 다만 필사적으로 ‘꿈꿀 것. 영감 같은 것은 있지 않다는 듯, 그러니 바라지 않는다는 듯 필사적으로 애쓰고 애쓰면서 기다릴 것. 기다리면서 초대할 것. 애씀이 초대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 것. 그조차 알지 말 것. 행여라도 영감이 자신의노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은총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 - P49

이 태어남은 다시 태어남이고, 종교적 용어로 ‘거듭남‘이다.
‘거듭나다‘라는 단어의 원뜻은 ‘위로부터 태어나다‘이다. 이 두번째 태어남은 그러니까 육이 아니라 영에 의한 태어남이다. 위대한 작가들이 불멸하는 비밀이 여기 있다. 그는 부모로부터 피와 살을 받은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 꿈꾸는 자의 꿈속에서 불의 신의 생기를 받아 ‘위로부터‘ 태어난 환영인 것이다. - P53

대상이 누구든, 혹은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없어지는 순간그리움이 사라진다. 교만은 그리움이 사라진 사람의 상태이다. 고향이든 사람이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더이상 그리워하지 않는다. 향수에 시달리지 않는다. 고향에돌아온 사람은 고향에 돌아가려는 열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향수가 해소된다. - P63

고향과 과거, 즉 경험된 것을 향한 그리움이 향수다. 향수는경험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이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그럴 때 생긴다. 익숙한 것이 익숙하지 않아졌을 때 출현한다. 무지는 지知의 부재를 가리킨다.
이 부재는 획득 실패로 인한 것이 아니라 획득한 것의 상실로인해 생긴다. 알던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 되었을 때 생긴다. - P69

다. 무지는 과거에 대한 것이고, 미지는 미래를 향한 것이다.
무지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미지는 추구를 북돋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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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 대로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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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빨갛게 타고 타련다.
일곱 해의 첫해에도일곱 해의 마지막 해에도.
_백석, 석탄이 하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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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톡톡.
풀잎 끝에 맺힌 영롱한 이슬방울들이 하나둘 터집니다.
목을 축인 새끼 제비가 파란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작은 두 발로 수면을 힘껏 박차 오릅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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