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와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다. 기분이 고약했다. 죄책감 같기도 하고 소외감 같기도 했다. 차라리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드러내게 될까 봐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래도 희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남아 있지만 우리 식구에겐 그게 없었다. - P19
앞날을 걱정하는 건 태평성대에나 할 짓이다. 전시에는 그날안 죽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모르면 그걸 아는 자의 짐이 되기 십상이다. - P23
"오오라, 맞아.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 부기가 가라앉곤 했었는데 여태껏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얼마나 무식하고 못살았으면 침밖에 발라 줄 게 없었을까, 창피하고 지겨워만 했었지 그게약이란 생각은 꿈에도 안 했어." - P31
"이렇게 젊은 여성 동무를 만나서 기쁘오. 동무는 피난을 안갔소, 못 갔소?" - P35
그 겨울 내내 서울의 눈은 녹지 않았고 인민군대는 너나없이그렇게 홑이불을 들쓰고 다녔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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