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엄마는 시침을 떼는 데는 선수였다. 정섭이 볼거리가 엄마의 비법으로 감쪽같이 나았다는 걸 엄마한테 보고할 때 나는엄마가 그 따위 돌팔이 처방을 가지고 너무 잘난 체를 하게 될까봐 은근히 걱정을 하면서 사실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을 때가 됐으니까 나았을 뿐이라고 내 흥분을 간단히 윽박지르지 않았던가. - P41
삐걱 소리도 사람을 놀라게 했지만 무엇보다도 남들한테 우리가범한 흔적을 보이기가 싫었다. 아직도 행인이래 봤댔자 인민군이고작인데도 우리는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남의 이목이란 실은 우리의 양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 해 먹은 집 앞에는얼씬도 하기 싫었으니까. - P45
일사후퇴 후 달포가 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던 사람 사는 모습이 별수 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희네하고 좀 더 왕래가 잦아졌다는 것 외에는 길에서 인민군 외의 민간인과 만나지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는데도분명히 우리가 손댄 일이 없는 집들이 사람 손을 탄 흔적을 보이기 시작했다. - P48
영천시장엔 한 귀퉁이에 제법 시장까지 선다고 했다. - P49
엄마는 평소의 엄마답지 않게 그 말도 안 되는 약을 가지고장담을 할 뿐 아니라 어서 가서 그 처방을 일러 주지 않는다고성화를 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정희네로 내려가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 얘기를 해 주었다. 뜻밖에 정희 엄마는 나도 믿지않는 얘기를 솔깃하게 들어 주었다. 그리고 어려서 궂은 파리에물려서 부어오른 자국을 할머니가 핥아 주던 얘기를 했다. - P31
"인민군대 처음 봤소? 무얼 그리 놀라오." - P35
"동무는 폐병 하나 못 고치는 조국이 밉지도 않소?" - P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