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것도, 버린 것도 흔적으로 읽힐 수 있다. 물론 정작본인은 자신이 무엇을 남겼는지 모를 테지만. - P15

아니요. 우아하고 완벽한 글은 없어요. 대신 우아하고 완벽하게 글을 낚을 수는 있죠. 낚시처럼. - P16

말하자면 대나무 숲 같은 것. 대나무에는 이름이 없다.
비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비밀에 이름이 생기면 노출되기 마련이다. - P19

내가 이 도시에 온 것은 데이터를 초기화하기 위해서다. 6년 동안 사귀었다가 헤어진 사람과의 추억이 전혀없고, 동이 씨의 부석부석한 얼굴이 보이지 않고, 매일이 삶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내가없는 곳. - P22

나와 이름이 같았다. 같은 이름을 만나면 내가 몇 개의 나로 갈라지는 혹은 과거 혹은 미래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그게 무엇이든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것은 확실하지만. - P28

전혜린 좋아해요?
남자가 물었다.
누구요? - P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할머니에게 여행이란 낯선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다른 고장에는 다른 물이 있단다. 낯선 풍경은 두려워해야할 필요가 없지만 낯선 물은 위험할 수 있지. - P10

경계 자체가 물로 되어 있다면, 낯선 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일까? - P11

내 주위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던 목소리들이서로 겹치면서 커져갔다. 배 위에서는 모두가 소박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잊어버린다는 듯이 말이다. - P13

모스크바는 나에게는 결코 도착할 수 없는 도시였다. 내가 세 살이었을 때 모스크바 예술 극단이 처음으로 도쿄에 와 공연을 했다. 우리 부모님은 체호프의 <세자매> 입장권을 사기 위해서 한 달치 월급의 절반을 썼다. - P21

열차 승무원은 삼 년전 밤에 열차 문을 화장실 문으로 착각하고 열었다가 기차에서 떨어진 어떤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형제는 특별비자를 얻어서 지역 열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P25

나의 지구는 낯선 고장들이 폭죽처럼 번쩍거리는 밤하늘 같았을 것이다. 확실히 둥글지는 않았다. - P29

아이가 화덕에 눕혀졌을 때 아이의 심장에서 불꽃이 나와서, 마치 불새가 마을에 내려앉은 것처럼 마을전체가 환해졌다. 불꽃 속에서 불의 여신이 보였다. 여신은 아이를 두 손으로 안고, 함께 빛 속 깊숙이 사라졌다. - P35

나는 깨달았다. 내가 유럽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 P37

그 여자와 연필 사이에 있던, 나에게 낯설어 보인 관계의 바탕에 놓여 있던 것은 바로 독일어였다. 독일어로 말을 할 때 연필은 그 여자에게 대들 가능성을 품고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연필을 다시 자신의 통제하에두기 위해 연필에 대고 욕을 퍼부을 수 있었다. 연필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묵묵히 견뎌야 했던 반면 여자는 연필에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여자가 가진 권력을보여준다. - P43

나는 나에게 언어를 선물해준, 독일어로 여성 명사인 타자기를 말엄마라고 부른다. 사실 이 타자기로는 타자기 안과 그 몸 위에 지니고 있는 부호들만 쓸 수 있었다. - P46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 고유한 원본 텍스트가 주어진다는 기본 생각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이 원본 텍스트가 보존되는 장소를 영혼이라고 부른다.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 《영희와 제임스》를 쓰기 전에, 저는X세대가 등장하는 단편소설을 구상했습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음악을 종교처럼여깁니다. - P66

정말로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를 담은말이란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사람들은 할 수 있는 한 그에 가깝게다가가고자 하거나 또는 다가갔다고 믿으면서자신만의 언어를 찾으려 노력합니다. - P71

Q. "돌이켜보면 그렇다. 그 시절 우리는어떤 감정에 한번 빠져들면 거기서 잘벗어나지 못했다. 멈추지 못했다. 방법을 잘몰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 감정에일부러 오래 젖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그게 좋았으니까.(38쪽)" - P74

‘나‘의 애도는 아주 오래되었고, 그래서 후회로가득하며, 차마 다 하지 못한 말로 가득하다는것.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아픈 건 아픈 사람만 아는 법이니까." - P15

그래. 제임스.
‘영희‘의 대표곡이었던 <제임스의하루>에서 가져온 표현. 용희는 자신의 블로그<나의 제임스>에 이렇게 썼다. - P18

이상적인 사랑과 우정. 관계에 대한 표현들중 제임스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다. 이것은새로운 언어다. 나는 영희를 제대로 제임스할것이다.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다. - P18

"아 그거? 제임스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내게용희가 찬찬히 설명했다. ‘영희‘의 팬들끼리서로 같은 글을 읽는 것. 같은 글을 똑같이포스팅하는 것. ‘영희‘에 대한 글을 똑같이공유하고 계속 퍼뜨리는 것. - P21

용희는 마흔이 다 되도록 건강검진 한번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 P28

의외로 별로 놀랍지 않았다.
아, 궁금한 건 하나 있었다.
딱 하나. 그래, 그거 하나.
용희는 영민을 제임스할까? - P33

돌이켜보면 그렇다. 그 시절 우리는 어떤감정에 한번 빠져들면 거기서 잘 벗어나지못했다. 멈추지 못했다. 방법을 잘 몰라서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 감정에 일부러오래 젖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그게좋았으니까. - P38

어떤 기회가 왔을 때마다, 나는 전혀어리지 않았다는 것. - P61

이 소설을 쓰고, 몇 달 후에 이사를 했다.
물건을 많이 버렸다.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버렸다.
어차피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다 웃긴 시간이었다.
2024년 여름강화길 - P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이 안 올 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지독히 혼자라고 느낄 때나 술에 취했을 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때, 아니면 섹스를 하고 싶을 때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있다. 그들 대부분은 아는 사람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 P9

모르는 사이라서 가능한 것들이 있다. 지금, 잠을 설친 내가 그곳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만지작거리며망설이는 것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 P11

우아하고 완벽한 곡선*
쓸수록 선명해지는 세계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