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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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대부분은 가족보다는 친구와 함께 진행된다.

계획도 없고, 미래도 없는 하루 하루의 북닥거림과 속닥거림은

어쩌면 그것이 생의 평온이고 안락인듯 느껴져서 서로를 안심케 한다. 왜 가끔 지하철에서 알 수 없는 놀이에 흰자위를 희번득 거리면 즐거워 하는 남정네들이 있지 않은가. 호프집에서 죽였던 음담패설의 시간들, 길거리를 수놓았던 필터까지 빨아댄 담배꽁초들, 만화와 당구와 오락과 허접한 쇼핑으로 채워졌던 일상들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소설집은 책장에 꽂아두었던 일기장과도 같다.

 

자동피아노, 매뉴얼 제너레이션, 엇박자 D,악기들의 도서관....

각 단편들의 타이틀은 마치 음반의 수록곡들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사실 이 소설집 자체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곡들의 흐름을 통해 앨범 전체의 느낌을 알게 하는 잘 다듬어진 한 장의 음반처럼 이 소설집 역시 각 단편들의 면면도 흥미롭지만 전체의 흐름이 하나가 되었을 때 더욱 매력적으로 '들린다'.

특히 읆조리듯 묘사되는 일상의 비루함을 흥미로운 문체로 묘사한 킬링 트랙인 <유리 방패>는 영에이지 리얼리스트 김애란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20대 남성의 일면을 들춰낸다. 있는 돈을 모두 꺼내어 호프집 탁자위에 두고 그만큼의 맥주를 들이키는 루저버디들의 흔한 저녁 시간을 그려낸 이야기는 현실에 밀착한 소설의 재미와 쓸쓸한 감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 소설집 속에는 이러한 '루저버디'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의 직업은 비정규직도 아닌 소일거리에 그치거나 혹은 면접에 탈락하는 것이 현재의 직업이기로 하며 때로는 평범한 이들의 취미를 직업으로 삼아 밥벌이를 한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설파하지는 않지만 무심한 행간의 표정 뒤에 숨은 절절함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밤새워 레코드를 뒤지는 루버 버디들, 서른도 훌쩍 넘어 지하실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배우는 루저 버디들, 그리고 지하철에서 플라스틱 칼과 방패로 땀흘리는 싸움놀이를 하는 정말, 루저 버디들.

 

스타일을 논하는, 혹은 연애의 오기와 적립의 쾌락 사이를 또각거리는 향수 냄새 나는 소설들의 사이에서 이 소설집의 가치는 도드라진다.

그것은  이 소설집이 사라져 버린 버스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매캐한 연기처럼 우리의 코를,눈을 그리고 가슴을 알싸하게 만드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 나는 살냄새 나는 풍경을 가까이에서 맡게 하는 그런 힘이 충만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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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4 14: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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