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맞닥뜨린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이모는 항상 라디오를 틀어놓았기에 집은 기분좋은 시끌벅적함으로 활기가 돌았다. 집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이모부는 청소기를 돌리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송을 따라 부르기도 했고 거실에서 바둑 채널이나 야구 경기를 보며 자체적으로 중계를 하기도 했다. - P288

"며칠간은 내가 좀 귀찮게 해도 참아줘야 한다." - P291

이모는 심지어 참사 십 주기 추모 행사에도, 이십 주기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너무한 게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의 삶에서 분리되고자 하는 마음, 한국과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은 나 역시가졌던 것이니까. - P292

하늘로 맹렬히 솟아오르는 불기둥을 화염 속인지 밖인지 알 수 없는 어느 지점에서 불길을쪼개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나는 그 소리와 풍경을 오래된 영화에서 본 장면처럼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다. - P294

처음에는 이모와 이모부에게 내 치부를 숨기고 밝은 모습만보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마음을 줄수록, 정이 들수록, 나의 과오를 솔직히 털어놓아야 떳떳하게 그들을마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P296

"자신이 없어도 용기를 내야지. 뭐가 그렇게 무서워? 캐나다 가도 안 죽어. 하나야, 넌 한 번 죽었다가 살았잖아. 그러면힘든 일이라도 극복할 생각을 해야지?" - P298

혜신을 배척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의 말에 어쩌면 나는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수가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증오하고 괴롭히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야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P300

그때 우리 텐트와 가까운 호수에서 오십 센티도 넘을 것 같은 큰 물고기가 튀어올랐다. 우리는 함께 와,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그 순간 나의 마음과 이모, 이모부의 마음이 완전히 겹쳐졌다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 P311

"모두 그대로 둘게. 이층 방도 그대로 두고 해바라기는 내가 대신 잘 키울게. 머리는 네가 다시 와서 염색해줄 때까지그대로 둘게. 그곳에서 견디기 힘들면 다시 돌아와 성인이 되어서 오면 더 나을 거야. 여기는 네 집이야."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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