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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파리 - 황성혜의 파리, 파리지앵 리포트
황성혜 지음 / 예담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해 고양이라고 하거나 사랑해 만두소희라고 하거나 사랑해 치즈와퍼라고 하거나 아니면 사랑해 자기야라고 하거나
사랑한다는 발설은 감정의 폭발임인 동시에 이기지 못하는 욕망의 발현이며 취향을 공표하는 행위이다.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에 명쾌히 달지 못하는 이유들은 그것이 그저 자신의 마음 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토를 다느니 토해내겠다는 심장의 박동이 만들어낸 단어가 사랑해.라는 세상을 뒤흔드는 마침표인게다.
아 , 사랑해라는 말은 이렇게 처참하기 그지없다. 뱉어버린 순간 나의 것이 아니다. 고양이나 치즈와퍼라면 쓰다듬거나 구입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자기의 무응답은 가슴을 후빈다. 사람을 사랑하느니 그 고된일을 하느니 차라리 무심한 도시를 사랑하겠다는 메트로폴리탄들은 뉴욕과 파리를 부르짖는다. 캐리와 사만다를 흠모하는 워너비들도 동시에 뉴욕과 파리를 꿈꾼다. 21세기의 뉴욕과 파리는 그렇게 모두를 향해 열려있는 욕망의 도시다.
다만 뉴요커들이 파리지앵과 파리지엔느를 염탐하며 방문하고 흘깃거리며 욕망하는 만큼 파리는 반응하지 않는다.
파리는 조금 더 오만하고 불손하며 도도하다. 그래서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불어를 하지 못하면 맹추가 되는 도시 파리는 전혀 친절하지도 착하지도 않다. 아무거나 걸쳐도 그림이 되는 어떤 스키니한 꽃미남의 썩소나 노랗게 탈색하고 스모키를 해도 보그의 에디터처럼 보이는 레깅스 걸들이 또각거리는 도시. 모두가 파리를 욕망한다. 그렇게 파리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선수와의 원나잇 스탠드처럼 자극적이고 위험한 일이다.
고작 삼 일간의 방문이었지만 파리는 내게 그런 도시였다.
저자처럼 짐을 풀고 삶을 산 건 아니었지만 그 불친절한 매력에 나도 어찌할 수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기자였던 저자는 꼼꼼하게 파리와 관련된 조각들을 퀼트한다.
에피소드들의 연작이지만 파리의 매력을 충분히 절감한 삶의 흔적들이 가득해서 여행팁이라기 보다는 필름의 한자락을 들추는 듯한 일상적인 낭만을 빼곡히 담아냈다.
물론, 이 책이 파리를 택시로 누빈 홍세화의 기록과 같지는 않다.
오히려 감수성이 예민하고 글이 단정한 여성의 일기장에 더 가까이 있다. 파리를 가고 싶게 한다기 보다는 그 맛이라도 조금 본 이들을 감질나게 하는 순간들이 일목요연해서 질투의 쾌감으로 부르르 하는 페이지들이 듬성듬성 독자를 안달나게 만든달까.
가난한 여행객이 느끼지 못한 물랑 루즈의 사치나 부르주아 여행객이 감당할 수 없는 세느강의 속내털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건 분명 삶을 도시와 함께한 이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추억이다.
추억은 거기에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추억이 거기에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저자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