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에게몸을 꾸었다. - P106

신해욱의 시는 늦게 온다. 연과 연 사이가 아득하기 때문이다. 그 아득한 틈을 우리는 천천히, 너무나도 천천히이동해야 한다. 초속 5센티미터쯤의 속도로 그 틈을 통과하고 나면, 문득 우리는 다른 시공간에 있다. 신해욱의시는 그 연과 연 사이는 웜홀과 비슷한 데가 있다. 그 틈을 통과하면 우리는 시인이 발화하지 않은 낯선 곳에 도착한다. 이상하고도 따뜻한 정오의 공원 같은 곳에 도착한다. - P110

1인칭 혹은 ‘나‘라는 자명한 개체에 대한 회의에서 그 의미는 출발한다. 현대시는 이상과 김수영 이래로 1인칭 자의식의 각축장이었다. 그러나 사실 1인칭은정말로 1인칭인가. ‘나‘라는 개체는 생활 속에서 정말로실재하는가. ‘나‘와 ‘나 밖의 것들‘이 지닌 유기적인 그물망 속에서 왜소해져가는 1인칭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수많은 ‘나‘들의 집합 속에서 희미해져가는 ‘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음 시를 읽는다. - P129

신해욱의 시를 설명하기 위해서 ‘군더더기가 없다‘라는말을 쓰면 안 된다. ‘절제‘라는 낱말도 들먹이면 안 된다.
이런 용어들은 신해욱에게 조금 요란하다. 신해욱의 언어는 ‘곡진한 속삭임‘에 가깝다. 곡진한 말은 간절함보다 더고요하고, 정성보다 더 아련하며, 사려보다 더 신중한 말이다. 말을 아끼려고 아끼는 게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말. 말들의 타임캡슐. - P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