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욱의 시는 늦게 온다. 연과 연 사이가 아득하기 때문이다. 그 아득한 틈을 우리는 천천히, 너무나도 천천히이동해야 한다. 초속 5센티미터쯤의 속도로 그 틈을 통과하고 나면, 문득 우리는 다른 시공간에 있다. 신해욱의시는 그 연과 연 사이는 웜홀과 비슷한 데가 있다. 그 틈을 통과하면 우리는 시인이 발화하지 않은 낯선 곳에 도착한다. 이상하고도 따뜻한 정오의 공원 같은 곳에 도착한다. - P110
신해욱의 시를 설명하기 위해서 ‘군더더기가 없다‘라는말을 쓰면 안 된다. ‘절제‘라는 낱말도 들먹이면 안 된다.
이런 용어들은 신해욱에게 조금 요란하다. 신해욱의 언어는 ‘곡진한 속삭임‘에 가깝다. 곡진한 말은 간절함보다 더고요하고, 정성보다 더 아련하며, 사려보다 더 신중한 말이다. 말을 아끼려고 아끼는 게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말. 말들의 타임캡슐. -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