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힘드냐는 말엔 언뜻 솔깃함이 있다. 고통은 보편적이며, 누구나 느낄 수 있으니까. 책 안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고통의민주주의" 속에서 산다. 극우도 억울함과 박탈감을 주장하며 피해자라고 호소한다. 가해 용의자는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로 둔갑하고, 피해자는 가해자로 의심받고 되려 공격당한다. 게다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어떤 고통이 더 많이 보여질지에 깊이 관여해 이미인기 있는 고통의 말을 증폭한다. 특권을 가진 자들의 고충이 긴박한 고통으로 부풀려진다. 플랫폼 위에 피해자가 범람하고 자신의고통이 더 중요하다고 치받는 사이, 사람들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인권과 평등이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증언, 그리고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결정적이었지만, 오늘날 피해자라는 언명자체는 더 이상 진보의 원동력이 되기 어려워졌다. 전통적인 지배집단이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피해자 중에서도 특권층만이피해자로서의 권리를 누리게 되면서, 진정한 소수자들의 권리는더 이상 피해자로서 정치화되기 힘들게 되었다.
각 사회집단은 (동일한) 모국어로 발언하지만그 용법은 천차만별이고, 강렬한 감정이나 중요한 개념이관건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어떤 언어적 기준으로 봐도 "틀린" 집단은 없다. 일시적으로 지배적인 집단이 자신의 용법이 "옳다"며 이를 강제하려고 애쓸 수는 있어도. 레이먼드 윌리엄스, 《키워드>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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