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방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다음에 써야 할 글을 의논하느라 바빴다. 대단히 엄숙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것같았다.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쓴다는 건 뭘까. 어째서 저렇게 열심인 걸까 궁금해졌다. 자기 이름을 좋아하는 마음도, 자기가 사는 곳을 책임지려는 다짐도, 글을 쓰고 싶은 욕망도. 그러다가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는 내가 낯설어졌다. 뜻을 모르겠는 시처럼. - P40
그날 내가 애인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이유는 나 역시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가만히 둬도 자라는 마음이 있고, 가만히 둬서 죽어버리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마음은 비명을 지르며 죽었던가.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귀에물이 들어간 것처럼 모든 소리가 멀게 느껴진다. 우리가나눴던 모든 말이 극과 극에서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것 같다. - P43
상대방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나도 말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 말도듣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 P55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오후 내내 전화를받았다. 사람들은 다채롭게 미쳐 있고, 비슷하게 절망하며 산다는 걸 매일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한다. - P58
절망 마케팅이라고 들어봤니?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사수가 물었다. - P59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가만히 제자리에 있는 것들을 본다. ‘여기‘라고 말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저기‘라고말하는 결심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모두버스에서 내렸다. 이제 원도심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노인들과 나뿐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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