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시절은 단단히 기억하지,
밀려온 진눈깨비조차참 따뜻한 나라라고-김명인의 시 「여수」 - P9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灣)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찝찔한바닷바람은 격렬하게 우산을 까뒤집고 여자들의 치마를, 머리카락을 허공으로 솟구치게 할 것이다. - P9

・그만해요.
자흔은 내 등을 두드리며 속삭였다. - P13

자혼을 만나던 그 휴일 오후까지 나는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내 결벽증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소문이퍼져 있었다. 자취방을 거쳐 간 사람들이 저마다 나에 대한 말을 퍼뜨리고 다니리라는 생각이 내 초조한 신경을 들쑤셔놓았다. 나로서는 조금의 악의도 품고 있지 않은데 단호히 떠나버린 그네들, 다시 찾아오는 것은 고사하고 안부 전화조차도하지 않는 그네들에게 나는 은밀하게 상처받고 있었다. - P17

어째서 여수에 가야 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치밀었으므로 나는 말을 끊어버렸다. 그곳에서 누구를, 무엇을 찾을 수있다는 말인가. - P23

이렇게 고요해질 통증인 것을, 지난밤에는, 또 수없이 반복되었던 그 밤들에는 이런 순간을 믿지 못했었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나는 어리석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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