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아침, 나는 1kg 더 희미해졌다. - P12
계절의 변화가 전혀 없는 곳에서는 시간도 조금 다르게간다. 우리의 기억은 계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 P13
30대에는 일시적인 평화가 있다. 20대의 끝없는 불안감과 40대의 무한한 책임감 사이, 결혼식 행렬과 장례식 행렬의 딱 중간 어딘가,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 평온한 일상이 잠시나마 존재한다. - P15
(나쁜 소식을 전하게 돼서 미안합니다. 당신 인생은 앞으로 큰변화를 맞이할 것입니다.) - P22
마리 퀴리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는지, 힘든 주제는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그의 방식 때문이었는지, 미술 작품들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서 치료받고 싶었다. - P30
소리를 내어 말하는 순간, 그 지옥이 드디어 실존하게 될것만 같았다. 그래서 입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메모장에 적었다가, 지웠다가, 잠시 울었다가, 진정했다가, 다시 써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 P34
그렇게 온종일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에게전화를 걸었고, 눈물을 게워냈고, 비워진 감정의 무게만큼다음 전화는 조금 더 가벼워져갔다. - P37
남의 엄마는 그토록 안쓰러워 보이면서 내 엄마는 왜 안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 앉아보았다. 그곳에 앉으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곳에 앉으면 저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의자를 내 체온으로 데우는것뿐이었다. - P49
이유 없는 불행이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신체적으로 힘들어서도 아니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도 아니다. 이유없는 불행이 힘든 이유는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진실로 믿고 있던 세상의 이치가 산산조각 나버리기 때문이다. - P54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또 배신했다. 이번에는 정말궁극의 배신이었다.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을까. - P57
이런 일이 나한테 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돌이킬 방법은없었다. 대신 이 일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할 수 있었다. 두려움에 절인 피클처럼 물컹하게 누워 있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바닷가로 걸어나와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려 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있다. 정해진 결말이 있다고 해서 선택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결말이 어떻든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생을 완주하겠다는 결정도 선택이다. 이 선택이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에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책임이다. - P64
여기에는 내재된 가정이 있다.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기에 본인이 최선을 다해서 관리해야 하고, 전적으로 관리가능하다는 가정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관리를 못한 사람이고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건강을 잃은사람은 자극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한 최고의 오브제다. 생활습관이 안 좋았을까, 스트레스에 취약했을까. 운동을 안 했을까. 실험대 위에 묶어놓고 핀셋으로 여기저기 들춰본다. - P123
우리는 그저 운이 나빴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덕담보다는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고 연민보다는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 P124
나는 행복할 거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건강을 잃으면 다잃는다는 사회에 저항한다. 이게 내 투쟁의 방식이다. 비장한마음으로 토마토를 썰러 간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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