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지팡이를 펴고 택시를 기다렸다. 일반 택시는 장애인 콜택시와 다르게 내가 지정하는 장소가 아닌 근처 아무 곳에서나승차를 해서 흰 지팡이가 필요했다. - P14
안과에서 정기 검진을 받고 돌아왔다. 그 안과는 내가 열다섯 살 때 지금의 병을 선고받은 병원이다. 20년이 넘는 시간이흘렀다. 그러나 내 병은 여전히 불치병이다. 세상이 이토록 바귀고 있음에도 말이다. - P21
"그런 게 어딨어? 나 보고 믿으라며? 약수라며?" 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눈 뜨러 갔냐? 네가 눈 뜨러 갔지!" - P27
엄마와 나는 휴먼 다큐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인생은 코믹 시트콤에 가까웠다. 뒤통수가 얼얼하니 아직도 아팠지만 피는 더이상 나지 않았다. 뒷자리에 던져놓았던 가방을뒤져 담배를 찾았다. 엄마는 슬쩍 나를 살피더니 화장지로 얼굴을 눌러 닦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 P31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마사지를 마치고 소리 없이 시술실을나와 문을 닫아주었다. 앞으로 몇 시간, 사자는 정신없이 잘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힘을 내 하루를 살아가겠지. 나도 다시 힘을 냈다. 그러고는 다음 시술실의 문을 열었다. - P37
‘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 수가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 P38
"사고가 나면 내가 반드시 구해줄게요." 나는 황송해 고개를 조아리며 꼭 좀 그래달라고 맞장구쳤다. 기체가 이륙하자 설렘과 불안이 마음속에서 춤을 추었다. 지금의 주인공은 설렘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한 캔 주문해 셋이 나누어 마셨다.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 건배사를 곁들이는것도 잊지 않았다. - P43
그리고 우리는 테이블로 곧장 안내되었다. 알고 보니 그 식당은 몸이 불편한 노약자를 위해 작은 테이블 하나를 항상 비워두고 예약을 받는단다. 그날 그 테이블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 P47
관광지에서 마주친 한국인 할머니들이 걱정을 담아 우리에게 건넨 말은 이렇다. "앞도 못 보면서 여길 힘들게 뭐 하러 왔누!"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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