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정말 ‘거친‘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일터를찾아 인터뷰를 진행하며 간접적으로 그 현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최고 온도 35도를 육박하는 폭염이 있던 날 빈 아파트 세대 현장에포대를 깔고 앉아 이야기를 들으며 온몸이 땀으로 쫄딱 젖기도 했고, 분진이 휘날리고 중장비 소음이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현장에서서로에게 고함치듯 질문과 답변이 오가기도 했다. 담배 냄새가 가득한현장 사무실에서 기침을 하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좁은 골목과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레미콘 운반 ‘두탕‘을 함께한 적도 있었다. - P7
화물연대 부산서부지부의 지부장이기도 한 그는 마초적인 화물차특유의 남성중심문화를 "‘내가낸데‘ 하는 마인드로 돌파했다"고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가 속한 부산서부지부 화물 노동자 400명 중여성 노동자는 세 명에 불과하다. - P13
화물차는 지나 씨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저의 일터이자 무기입니다. 화물차 덕분에 든든하고 당당합니다. - P29
13년 전, 신혜씨가 용접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충남 서산에는 여성 용접사가 한 명도 없었다. 가족들도 주변 지인들도 모두 신혜씨의 결심에 꼭 그걸 해야 하느냐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동료화기감시자의 한마디가 용기가 됐다. 신혜 씨보다 열 살이 많던 동료언니는 ‘내가 네 나이면 당장이라도 시작한다‘며 일을 배워보라고말했다. 여성 화기감시자로서의 설움을 아는 유일한 동료였다. 그 길로 신혜 씨는 용접을 배우기 시작했다. - P35
그토록 하고 싶던 용접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남성들만 있는조직문화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자가 무슨 용접이나‘ 고 무시당했고, 성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많이 울었어요. 일을 시작할 때 저도 40대 초반이었으니 상처를 많이받았습니다. 이제는 연차도 쌓이고 단단해졌어요. 내가 단단해지면누가 쉽게 상처를 줄 수 없더라고요"라고 강조했다. - P38
화장실을 가는 것도 일이라 물도 잘 안 먹고 밥도 조절해서 적게먹었어요. 옛날 화장실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남자들은 바지만내리면 어디서든 용변을 보던 시절이니 그게 부럽기도 했죠. 또 여성의 경우 생리를 하니까 그게 너무 불편했어요. 산부인과에 가서아이도 다 낳았으니 자궁을 적출하면 생리를 안 하지 않겠느냐고한 적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무식한 소리를 하느냐고호통을 치더라고요. 생리만 안 하는 게 아니라 몸 전체가 바뀌는일이라고 저를 말렸어요. 대신 생리를 억제할 수 있는 미레나 시술을받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셔서 시술을 받았죠. 피임이나 다른 목적이아니라 오로지 현장에서 편하게 일하려고 받았어요. - P47
20년 동안 식당 찬모로 일하던 그가 먹매김을 시작한 건 여고 동창의소개 때문이었다. 처음 ‘먹매김‘ 일을 들었을 때는 자신이 할 수 있는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어려워지면서 가장이 된 그는 ‘여자인 내 친구도 하는데 나라고못할 게 뭐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 공사 현장에 발을 들였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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