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대가족의 종부(宗)로서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을 저지르셨다. 먼저 오빠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한 어머니는 어느 날 나까지 데리러 와 집안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공들여 빗겨 준 내 종종머리를 싹둑 잘라내고 뒤통수를 허옇게 밀어붙이는 단발머리로 만들어 놓았다. 해괴한 머리 모양에 울상이 된 나를 어머니는 서울 아이들은 다 그런 머리를 하고 있다고 윽박질렀다. 그 머리로 사랑에 들어가 할아버지한테 하직 인사를 올리니 할아버지는 "허어, 해피한지고, 뒤통수에도 또 얼굴이 달리다니" 큰소리로 일하시고 나서50전짜리 은화를 한 닢 먼저 주셨다. 은화가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와 할아버지의 일갈은 최초로 모욕당한 기억으로 내 자존심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내 마지막 몇 달을철없고 앳된 시절의 감동과 사랑으로장식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찬탄을 보내고 싶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 주는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영혼 깊숙이 새겨 두고 싶다.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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