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아와 함께 살았다. 솔아의 팔이 나의 집이었다. 팔 한가운데에 짧은 다리로 잘 딛고 서 있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전에 공룡으로 살아본 기억이 없지만, 이것이 성공한 공룡의 삶이구나 하는 감각이 들었다. 그곳은 포근하고 아늑했다. 부드러운 요람 같았고 너른 평원 같았다.

나는 눈꺼풀에 사는 동안, 솔아가 일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보는 모든 것을 함께 봤다. 그런 구경은 신기했다. 비로소 솔아를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었다. 솔아는 이런 살아 있는 그물 같은 관계 안에서 사는구나. 그리고 솔아가 집으로 돌아와 잠에 드는 밤에, 눈꺼풀 속에 누워 그들의 표정을 복기했다.

그래서 나는 선캐처에 달라붙기로 했다. 내 절취선 같은 까만 선들은 이미 첫 이동 때 사라졌으니 파랑 초록 노랑의 빛으로만 달라붙으면 되었다. 나는 솔아가 듣는 소리와 솔아가 받는 빛, 그것들이 넘어 드는 창가, 그곳에서 빛을 색으로 굴절하고 변형시키는 유리 조각의일부가 되었다. 유리 속은 단단하고 따뜻했다. 나는 일정한 거리에서 솔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솔아의 얼굴, 앉은 자세, 걸음걸이까지. 내가 여기에 없다고, 사라져버렸다고 솔아가 믿는 동안에도 나는 솔아와 함께 있었다. 솔아가 나를 생각하지 않을 때에도 솔아를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과 그 마음에 가장 열렬한 시기에도 시차가 있다. 늘 같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혼자인 것 같고 외로워지고,

답장을 다 쓰고 고개를 들어 다시 부채를 봤을 때, 부채에 푸른 물이 든 걸 발견한 솔이는 그걸 펜에서 번진 잉크가 묻었다고 생각할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솔아는 이미 그게 나인 것을 안다. 솔아의 글을 읽고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창문 근처 내가 살던 섬세하게세공된 작은 유리 조각을 본다. 삽시간에 완전히 저문 하늘. 멀리서 너를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필요해서 소설을 읽고 쓰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다. 읽고 있는 소설에서 친구가 되고 싶은 인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을 발견하면 무척 든든하고 좋았다. 여기에는 없지만 거기에 있구나, 하는 마음이 되어서 책을 펼치면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책을덮으면 순식간에 혼자가 되는 것. 현실은 숭덩 잊어버리고 몇 초 사이에 하나였다가 여럿이었다가 하는 경험이 마법 같았다.
친구가 없다가 친구가 생기고 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사건 혹은 흐름 혹은 나날 들을 매번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온 것 같다. 항상충격이고 항상 신비로웠다. 그것이 되풀이되는 삶 자체는 더욱 충격이고 더욱 신비롭다. 이유 없이 훌쩍 다가가고 싶었거나 내게 다가와던, 제각각의 이유로 나를 떠났거나 내가 떠나보낸 친구들을 생각한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지. 하고 곱씹는 것은 나의 오랜 취미다.

누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 마음은 슬프고 안쓰럽다. 누가 누구를 덜 좋아하는 마음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고, 가끔 삶을 사는 방식이 더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덜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기우뚱거리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을 때가 있다. 어쩐지 소설은 그럴 때 쓰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 이 마음 마음 옮겨다니다보면, 그 궤적이 소설에 남으면 제법 뿌듯하고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하게 된다.
2023년 여름,
김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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