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를 잃어버렸다.

우리 지원 언니 보러 갈까? 가서 언니 놀래켜주자. 우리 계속 비밀로 만나고 있었다고.
현우는 다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가기다. 그렇게 웅얼거렸다. 이상하지. 너에게 상처를 줄 때면 사랑이 살아나. 나는 조용히 가슴에 두 손을 얹어보았다. 슬픔이 차오르는것 같은 자리에, 사랑이 지나가는 것 같은 자리에 슬픔을 감지한 사랑이 오리발을 신은 수영 선수처럼 물살을 가르는 것 같았다. 사랑 곁에는 언제나 슬픔이 있는데 나는 어쩌면 그것만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랑받고 싶던 사람이 선택하는 차선은 사랑하기이다. 사랑받기 위해서 사랑을 한다. 사람은대체로 자신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이를 밀어내기란 쉽지 않다. 닫힌 문 뒤, 나만의 세상이 빈약했던 나는 그 한 가지의 스킬을 문에 걸었다. 속이 비었으면밖이라도 갈고 닦겠다는 마음으로, 타인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먼저 호감와 애정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다.

멍한 오후에 사무실에서 업무 메일을 쓰다가 문득 팔뚝을 뒤집어보면 피부 위에 잎맥처럼 비치는 핏줄의 끝을 우물우물 씹고 있는 피망이가 보였다. 그럼 쟤는 내 피를 먹는 건가 아니면 습관처럼 나뭇잎을 먹는 흉내를 내는 건가, 진짜로 피를 먹진 않겠지 그렇다면 빈혈이 왔을 테니까,
하고 생각하다가 곧 다시 팔뚝을 뒤집어 쓰던 메일을 이어 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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