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 언니는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난다. - P293
그때 나는 서른세 살이었는데, 한 번 사는 인생을 더 넓은 세상에서 근사하게 살아보지 않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던 당시의 내게 기회의 땅 뉴욕은 가장 걸맞은 도시처럼 느껴졌다. - P297
"엄마 꿈이 교수였거든." "그렇다고 언니가 교수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럴 순 없어." - P301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하면 나는 세탁소의 유리문 너머를 영화 스크린 보듯 바라보며 조용히 it‘s starting to rain이라거나 it starts snowing이라고 발음해보곤 했다. 묘한 슬픔이 뒤섞인 우월감을 느끼며 많은 이들이 그렇게 자기의 부모를 딛고새로운 세계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 P303
"사랑?" "응, 사랑 얼마나 낭만적일까." - P307
개리가 칭찬을 기다리는 소년처럼 말했다. 이 "응, 정말 굉장하다." - P314
중환자실에서 많은 이들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걸 목격하는 동안 시간이 무심히 흘러 어느덧 나는 그 시절의 언니 나이가되었다. 언니의 나이가 되어, 처음 정규직으로 일했던 병원에서친하게 지낸 동료 간호사의 출산을 축하해주기 위해 다시 뉴욕에있다니.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우리를 때때로 뜻하지않은 시간대에 뜻하지 않은 장소로 데려다놓는 인생이 갈수록 신기하게 느껴진다. - P317
불빛처럼 형형색색으로 반짝이게 만드는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무는 이런 생각들은 한 번도 자신만의 욕망을 가져본 적 없던 언니가 그때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걸 내게 마침내 깨닫게 했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이미 오래전 지나왔으나, 그런 시기가 틀림없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언제 누구에게 찾아오든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 P320
일부를 보여주고 있는고 싶어 소설을 쓰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내가 정말로 알기 원하는 것은 수없이 쓰고 지운 문장들 사이에서만 비로소 발견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P323
잘 다듬어진 아름답고 투명한 이야기가 좋은 소설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그런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소설 관습에 충실했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익숙함, 거기서 오는 쾌적함, 그리고 그 쾌적함 속에 머무르며 온갖 층위의 난잡하고 까다로운정치적 문제들에서 잠시 면제될 수 있을 듯한 안온함이 아닌가. 거기에는 재미도 없고 관심을 끌지도 못하는 그러면서도 용납할수 없는 것이 끼어들지 않는가.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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